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ruth Social을 통해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substantially reduce)"하라고 지시했다. 기다렸다는 듯 기대가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온 종전과 평화체제 논의 제안까지 연결해 조만간 조미대화가 열리고 한반도 정세가 평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기대보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과 평화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는 일은 다르다. 정책은 소망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까지 포함해 냉정하게 봐야 한다. 트럼프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평양이 이번 지시를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보다 트럼프 특유의 정치적 제스처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트럼프도 스스로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훈련을 취소한 것도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줄일지도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미 준비된 훈련은 시작된다. 조선이 민감하게 보는 것은 미국 대통령의 호의적인 말보다 실제 군사행동이다.
불과 며칠 전 조선은 UFS를 미·일·한 군사협력과 결합된 위협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수준의 억제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평양에 트럼프가 갑자기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라고 말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책변화로 받아들일 이유는 많지 않다.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평양은 오히려 "말로는 우호, 행동은 그대로"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의 글에서 내가 오히려 더 흥미롭게 보는 대목은 따로 있다. 그는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말한 직후 스스로 "다소 관련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이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한국 대통령에게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비핵화에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지만 한국 측이 "No thanks!"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정말 관련 없는 이야기라면 왜 굳이 넣었을까. 이 한 문장 때문에 이번 결정을 김정은에게 보내는 유화적 신호 하나로만 읽기는 더 어려워진다. 트럼프에게 한미연합훈련은 한반도 안보정책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훈련비용에 대한 오래된 불만,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충분히 호응하지 않는다는 거래적 불만,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가 한데 섞여 있다.
글의 순서대로 따라 읽어보면 보면 더 분명하다. 한미연합훈련은 돈이 많이 들고 미국이 많은 비용을 부담한다. 조선에는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 자신은 김정은과 관계가 좋다. 그런데 한국은 이란 문제에서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트럼프의 계산법에서는 하나의 장부에 올라갈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일에는 협조하지 않으면서 미국이 많은 돈을 들이는 연합훈련은 계속해야 하나."
트럼프가 실제로 이런 계산 끝에 훈련 축소를 결정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이란 문제가 UFS 축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자신이 굳이 두 사안을 한 글 안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지시가 정교하게 설계된 한반도 평화전략의 결과라기보다 비용과 동맹에 대한 불만,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 한국에 대한 거래적 감정이 뒤섞인 결정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 글 한 편을 8·15 경축사와 직선으로 이어 '평화국면 전환'이라고 읽는다면 정세분석이라기보다 너무 많은 의미를 우리가 대신 만들어 넣는 셈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평양 쪽에 있다. 지금의 조선은 2018년의 조선이 아니다. 2018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전략적 보상이었다. 당시 조선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제재완화와 새로운 외교공간을 만들어야 할 필요도 컸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조선은 핵보유를 법률과 헌법, 군사교리에 내재화했다. 핵무력을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국가의 불가역적 지위와 생존전략으로 규정한다. 러시아와는 군사·안보 협력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졌고, 중국과의 관계도 다시 조정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서방 대립이 격화되면서 조선이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도 2018년과 달라졌다.
워싱턴과 서울을 상대로 당장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성도 과거보다 낮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고 말한다고 김정은이 이를 큰 외교적 성과로 받아들이며 대화장으로 나올 이유가 많지 않은 이유다. 오히려 평양은 미국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조선이 트럼프의 발언을 완전히 무시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평양이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주는 최소한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일종의 '비용 없는 최소 긍정 신호(costless minimal acknowledgment)'다.
김여정이나 외무성 정도에서 "훈련축소 발언 자체는 주목한다.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여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정도의 반응이면 충분하다. UFS가 실제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덧붙이며 "미국의 진의를 지켜보겠다"고 해도 된다.
조선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고 트럼프의 체면은 조금 세워줄 수 있다. 자신들이 대화의 문을 닫았다는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핵무력 강화와 군사력 증강은 그대로 계속할 수 있다. 미국이 앞으로 실제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까지 상대에게 넘길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여정이 정말 "주목한다. 행동을 지켜보겠다" 정도 한마디 하면 또 언론에는 '조미대화 청신호'라는 제목이 넘쳐날지 모른다. 한미연합훈련의 일부 축소와 8·15 경축사, 조선의 짧은 반응을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북미정상회담까지 상상하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
신호등이 초록색이라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 한반도에서는 신호등 색깔이 실제로 바뀌었는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평화는 대통령 한 사람의 좋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훈련 하나를 줄인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이 반복되며, 반복이 상호 신뢰와 제도로 쌓일 때 비로소 평화의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제안한 종전과 평화체제 논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한반도에서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들겠다는 방향 역시 중요하다. 그런 정책일수록 트럼프의 즉흥적 한마디에 지나치게 기대서는 안 된다. 한국의 평화정책이 미국 대통령의 기분이나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에 기대기 시작하는 순간 평화의 주도권 역시 다시 워싱턴과 평양 사이로 넘어간다.
평화에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만으로 정세를 읽기 시작하면 희망은 곧 희망회로가 된다. 평화를 바라는 것과 평화가 오고 있다고 믿는 것은 다른 일이다. 희망은 가져도 좋다. 자기희망을 정세분석과 전망이라고 부르지만 말자. 그건 희망이 아니라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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