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권고도 무시? 한국, 인권브리핑에서 '성소수자' 내용 제외

제4차 UPR, 17개국 '차별금지법' 요구 … '비동의 강간죄' 언급도

26일(현지시각) 열린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한국권고 자리에서 다수 국가들이 '성소수자 인권 강화'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 3차 UPR 당시부터 이어진 권고였지만, 한국은 공식 브리핑에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유엔(UN) 회원국들은 이날 오후(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4차 UPR 한국권고를 진행했다. 법무부·외교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 10개 관계부처 합동 정부대표단(수석대표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자리에 출석해 한국의 인권 상황을 브리핑하고 질의응답에 나섰다.

4년 6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서 대상 국가는 지난 회차 UPR에서의 권고사항을 바탕으로 자국의 인권상황을 브리핑한다. 이날 한국은 여성·아동, 장애인, 난민, 외국인, 군(軍) 등 국내 각 분야의 인권정책을 회원국들에 소개했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의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진행된 제3차 UPR 한국권고 당시엔 30여개 국가가 30여개 국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등 성소수자 인권 관련 권고를 한국정부에 전달한 바 있다.

유엔(UN) 사회권규약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은 UPR 이외 정기 국가보고서 심의 등에서도 '한국이 포괄척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권고해왔다. (관련기사 ☞ '권고 또 권고' … 유엔 국제조약기구 "한국,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성서수자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권고는 이날 4차 UPR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98개 회원국 중 미국, 영국, 아일랜드,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 총 17개 국가가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뉴질랜드는 동성결혼의 법제화를, 멕시코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권고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단일의제들도 줄을 이었다.

해당 권고를 들은 정부대표단은 △국회에 4개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돼 있는 등 차별금지법 관련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 헌법이 차별금지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 정부는 사회 전반에서 평등원칙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다만 "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대표단의 설명엔 논란이 예상된다. 국내 차별금지법 논의는 지난 2007년 이후 16년 동안 별다른 진전 없이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설명과 같이 국회엔 장혜영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인숙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4개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해당 법안들은 법제사법위원회 안건 상정 과정에서 번번이 탈락해왔다.

지난해 12월 7일엔 차별금지법안의 법사위 안건 상정에 찬성해온 야당 위원들의 주도로 토론 형식의 법사위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이에 반대하는 여당 측 위원들이 전원 퇴장하면서 제대로 된 토론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관련기사 ☞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면서 … 차별금지법 토론조차 거부한 국민의힘)

▲지난 2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 참석한 정부대표단 ⓒ법무부 제공

국내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시민사회 연대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7일 성명을 내고 "평등원칙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정부대표단의 입장에 "과연 그러한가?" 되물었다.

이어 이들은 "차별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정부가, 사회 전방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한국 정부가 우리 사회 평등원칙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단연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꼬집었다.

인권단체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도 같은 날 논평을 내고 "권고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라며 비판 입장을 전했다.

이들은 "지난 3차 심의 때 이루어진 성소수자 인권 권고에 대해 한국 정부는 모두 불수용(noted) 입장을 밝혔었다"라며 "이번 4차 심의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새롭게 나온 이 권고들에 대해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회원국들은 한국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과 관련해 국내 성차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앞서 사전질의를 통해 국내 △젠더폭력 △성별임금격차 △공공부문 고위직에서의 여성 대표성 부족 △노동 성차별 문제 등에 대해 질문한 영국은 현장 질의를 통해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가 거론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저항이 어려울 정도의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전환하는, 소위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에 대해서도 권고가 있었지만 대표단은 '해당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하고 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당일 한국에선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 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법무부 및 여당 인사들의 반대로 여가부가 해당 입장을 즉시 자진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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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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