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공천 잔혹사로 돌아본 尹의 '오래된 미래'

[분석] '친위 체제' 무리수가 부른 '공천학살' 흑역사…나경원 사태, '윤심 총선' 프리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총선을 두 번(2008년, 2012년) 치렀다. 두 번 모두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여당의 입법부 점령 효과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 간, 압도적인 보수 우위의 정치체제가 이어졌다.

1987년 개헌 이래 가장 오랫동안 펼쳐진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대통령의 국정이 그리 순탄하게 운영되지는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집권기를 마감한 민주당이 오랜 정체를 겪는 사이, 여당 지붕 아래에서 동거하는 '실질적 야당'이 골칫거리였다.

정치적 앙숙처럼 서로를 견제했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기에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은 번갈아 여당이자 야당으로 충돌했다. 자해적인 계파 갈등이 공천 과정마다 기승을 부렸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박근혜).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열린 2008년 '허니문 총선'을 코앞에 두고 한나라당은 극심한 '공천 학살' 파동을 겪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총선 의중은 '상왕'으로 통한 이상득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으로 흘렀다. 친이계가 휘두른 '공천 학살' 칼날에 '관리형 대표' 역할에 머문 강재섭 대표의 조정력은 극히 제한됐다.

"살아서 돌아와 달라"(박근혜)는 생환 기원과 함께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탈당해 만든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가 총선에서 기염을 토했다. 결국 26명에 달하는 탈당 친박이 당선돼 여당의 '이명박 친위체제' 구축은 완성되지 못했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핵분열이 일어났다. 집권 공신인 정두언 전 의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이상득 공천 철회'를 촉구한 '55인 파동'이다. 항명은 실패로 끝났다. '상왕'은 그대로 출마해 당선됐고, 정 전 의원은 그 이후 권부에서 밀려났다.

집권당 내부의 제 살 깎아먹기식 분열은 이명박 정부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선 강력한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 칼자루를 쥐었다. 이번에는 친이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여당 내 주류와 비주류의 처지가 뒤바뀐 '보복 공천'으로 평가됐다.

공천 잔혹사는 이후에도 무한 반복됐다. 2016년 총선에선 친이계를 향한 청와대발 '살생부'가 새누리당에 떨어졌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추천장에 직인 날인을 거부한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그해 총선에서 패해 여대야소를 마감했고, 친박계에 유리하도록 경선에 개입한 박근혜는 훗날 이 혐의로 실형을 확정받았다.

7년 전 여당의 공천 난맥을 상징하던 "옥새 들고 나르샤", "진박 감별사" 용어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국에 다시 등장했다. '나경원 사태'의 본질을 2024년에 벌어질 공천 파동의 전조로 보는 관측이 많다.

'친윤', '비윤', '반윤'이 뒤엉킨 경쟁구도 속에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 의중은 '친윤 당권' 구축을 통한 여대야소 회복에 맞춰져 있다. 연초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나는)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 결과에 윤석열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고 보는 위기감과 승부욕은 지난해에 "내부 총질" 문자에서 드러난 '이준석 찍어내기'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어 국민의힘이 당대표 경선 룰을 '100% 당원투표',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바꾼 것은 민심에서 우세한 '유승민 출마 봉쇄' 목적이 작용한 결과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심에서 우세를 보이자 이번엔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출마를 차단했다.

국민의힘 역시 민심과 당심보다 '윤심'으로 기울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50명은 나 전 의원을 향해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여당 내에서도 "집단적인 린치"(윤상현 의원), "깡패들도 아니고 그게 뭐냐"(이재오 상임고문)는 탄식이 나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윤심'의 좌표는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 힘싣기'로 선명하게 맞춰졌다. 전당대회 '판짜기' 과정에 주도적인 목소리를 낸 장제원 의원은 김기현 의원이 대표에 오르면 사무총장 기용설이 나온다. 2008년 '관리형 대표(강재섭)와 실세 사무총장(이방호)' 진용을 떠올리게 한다.

김무성 상임고문이 26일 김기현 의원에게 "정당 민주주의 확립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천제도 확립"을 당부하며 "민주적 상향식 공천 외에는 다른 답이 없다"고 한 언급에서도 2016년 '옥새 파동' 경험이 엿보였다.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이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까지 남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은 안철수 의원이다. '나경원 사태' 이후 여론 흐름은 안 의원이 나 전 의원 지지층을 흡수하며 김기현 의원을 빠르게 추격하는 양상이다.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김 의원은 "다음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얼굴로 치르는 선거"라며 "대통령과 갈등하거나 대립하는 강한 긴장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차기 대선주자인 안 의원을 겨냥해 "대선에 나가겠다는 분들이 공천 과정에서 사천(私薦)이나 낙하산 공천을 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는 2016년 총선을 앞둔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 서청원 의원이 경쟁자인 '비박' 김무성 의원을 향해 "차기 대권에 나올 사람이 당권을 맡으면 인사권, 당권 모두 장악할 것"이라고 압박했던 장면과 겹친다. 그러나 당시 전당대회는 '선거인단 투표(70%)와 여론조사(30%)' 경선 룰에 힘입어 민심에서 앞섰던 김무성 체제가 등장했다.

'여당 내 반대세력'을 불허하는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겹겹이 방어막을 친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심이 통할지, 그렇게 국민의힘에 '친윤 체제'가 등장하면 내년 총선에서 여대야소를 되찾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윤석열 얼굴'로 치르게 될 내년 총선 시간표는 집권 3년차다. 임기 중 총선을 두 번 치른 이명박 전 대통령도 3년차에 또 한 번 전국단위 선거를 치렀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50%를 상회했고 천안함 사태 여파로 '북풍'이 일었음에도 2010년 지방선거 결과는 여당의 패배였다. 특히 수도권 6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15곳만 건진 여당은 46곳을 민주당에 내줬다.

▲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 초청 오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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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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