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에 '어깨띠' 건네 받지 못한 채 룰라 브라질 대통령 취임

보우소나루는 수사 피해 美 플로리다로…불복 시위 계속되며 '통합' 첫 과제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브라질 대통령이 전 정권의 "국가 파괴"에 대한 "재건"을 내걸고 취임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67) 브라질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 불참했다. 선거 불복 시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룰라 정부는 시급한 통합의 과제를 안고 출범하게 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일(현지시각)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취임 연설에서 룰라 대통령은 전 정권이 코로나19 및 빈곤 확산으로 "국가 파괴"를 자행했다고 비난하고 "재건"을 약속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새 정부의 초점이 빈곤 퇴치에 맞춰져 있음을 밝히며 "우리의 첫 번째 조치는 3300만 명을 굶주림에서, 그리고 1억 명을 빈곤에서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전 정부의 "국가 파괴 프로젝트의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은 그가 "브라질에 보내는 메시지는 희망과 재건"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룰라 대통령은 2003~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브라질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다. 

룰라 대통령은 또 코로나19로 인한 "70만 명의 희생"을 "대량학살(제노사이드)"로 칭하며 이에 대한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조사돼야 하고 처벌받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관련해 전 정권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선거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퍼뜨린 뒤 낙선하자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두 달 넘게 시위를 벌이고 이는 상황에서 룰라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승리자"라며 "투표의 자유에 대한 가장 폭력적인 위협과 거짓과 증오로 가득한 극도로 절망적인 선동을 극복해 냈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채 "개인적 이념에 국가를 예속시키려 했던 이들에 대한 복수심은 없다"면서도 "오류를 범한 이들은 법적인 방어권을 보장 받은 상태에서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룰라 대통령은 가난한 가정에 매달 지급되는 보조금 법령에 서명했다.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아마존 기금도 재개될 예정이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군사독재가 끝난 뒤 지속됐던 평화로운 권력 이양의 상징인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어깨띠를 넘겨주는 의례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아닌 원주민·장애인·흑인 등으로 구성된 "브라질 국민" 대표단이 수행했다. 쓰레기 수거인인 흑인 여성 알린 소사(33)가 룰라 대통령에게 브라질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구성된 어깨띠를 직접 걸어줬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취임식 이틀 전 나라를 떠나 미국 플로리다로 향해 적어도 이달 말까지 플로리다에 머물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을 향한 수사의 향방을 가늠하며 1~3달 간 플로리다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익명을 요구한 보우소나루 가족과 가까운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선거 불복 시위가 이어지며 이날 취임 행사는 보안인력 8000명 가량을 동원한 가운데 이뤄졌다. 경찰은 취임식 당일도 경찰은 칼과 폭죽을 들고 행사장에 진입하려던 한 남성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브라질리아 공항 근처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려 한 보우소나루 지지자가 체포되기도 했다. 대선 결과에 대한 군의 개입을 유발할 목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주장한 이 남성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퍼뜨린 선거 부정 주장에 감화돼 시위대에 합류했다고 진술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총기 규제 완화로 총기를 소유하게 됐다고 진술한 그는 이후 총기 구입에 16만헤알(약 3800만 원) 이상을 들여 다양한 무기를 사들였다. 룰라 대통령은 1일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아마존 보호와 더불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이은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중남미의 온건 좌파 집권 정치 흐름)' 물결 향방 등 룰라 정부는 대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민심 통합이 우선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독립매체 <브라질리언 리포트> 설립자인 구스타부 히베이루는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룰라 대통령이 갓 취임 뒤 '허니문 기간'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본다. 많은 이들이 그를 정당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알자지라는 "룰라 대통령이 물려 받은 나라는 매우 분열돼 있고 그의 많은 도전 중 하나를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불과 1.8%포인트 차로 보우소나루 후보를 눌렀다.

<AP> 통신은 이에 더해 지난해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룰라 대통령 본인이 부패 혐의로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데다 노동당 주요 인물들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아 당의 신뢰성이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퇴임 때 지지율이 80%를 넘겼던 지난 임기와는 달리 이번 임기 지지율이 50%를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고 마우리시오 산토로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 정치학 교수를 인용해 전망했다. 룰라를 평생 지지해왔다고 <AP>에 밝힌 클라우디오 아란테스(68)도 룰라가 "이전에는 통합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분열이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AP>는 룰라 대통령이 원자재 가격 상승의 덕을 봤던 이전 집권기에 비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제적으로도 더 어려운 상황에 집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취임식 직후 지지자들에게 하트 모양를 만들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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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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