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지금 '꺾고 있는' 것들

[기자의 눈] 사회적 약자 앞에 선 대통령의 마음이 '지지율 올리기'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을 지난 8일 저녁 만난 자리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커다란 울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선수들이 들어올린 태극기에 적혀 있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른바 '중꺾마'를 인용한 것이다. 

'중꺾마'의 유래는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약칭 LOL. 롤) 선수로 프로리그 데뷔 10년만에 세계대회 '롤드컵'에서 우승한 '데프트' 김혁규다. 2022년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패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기자가 요약한 것이 '중꺾마'였다. 롤드컵 우승으로 자신의 말을 실현해 낸 김혁규는 인스타그램에 소감을 적으며 직접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썼다.

윤 대통령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인용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근 그의 몇 가지 행보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에 겹쳐진다. 먼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지키기'다. 이태원 참사 9일 뒤인 지난달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거회의에서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이 장관 해임을 거부했다. 대통령의 입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해임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 11일 야권 공조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해임건의안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이틀째 침묵으로 거부 의사를 표하고 있다.

다음은 '화물연대 짓밟기'다. 화물연대의 지난 6월 파업 당시 정부·여당은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확대 등을 논의한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라'며 화물연대가 11월 다시 파업에 나서자 윤 대통령은 강경 대응에만 매진했다. '지지율 상승'을 맛본 탓일까. 파업을 풀면 대화에 나설 것처럼 굴던 정부는 파업이 끝나자 '안전운임제 폐지'까지 거론하며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가 주52시간제 약화,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 개악'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의 맞은편에 선 이들에게도 '꺾이지 않는 마음'은 있다. 지난 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출범식에서 이정민 협의회 부대표는 "왜 벌써부터 갈라치기를 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인가. 이게 정부가 할 일이고 책임있는 여당이 할 일인가"라고 아파했다. 출범식 도중 통곡하다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 간 유가족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 대통령의 사과 △ 책임자 처벌 △ 정쟁을 배제한 진실 규명 △ 유가족 소통공간 마련 △ 희생자 추모공간 마련 등을 담은 창립선언문을 읽고 "이상민을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같은 날, 대우조선해양 파업 당시 철골구조물 안에서 31일 동안 농성했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13일째 단식 중인 유최안 씨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소회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노조 한다고 했을 때 모두 잘릴 거라고 생각했다. '너희 것들은 안된다'고 조롱했다"며 "'뭐 얻었냐, 뭐 바꿨냐, 뭐가 좋아졌나' 묻냐면 나는 바뀌었다. 내가 속한 계급, 노동자를 사랑할 줄 아는 노동자로 바뀌었다"고 썼다. "오늘까지만 딱 아프고 함께 웃자", "고생했다. 사랑한다"는 위로도 건넸다.

윤석열의 마음과, 이정민·유최안의 마음. 이들의 마음이 부딪치는 광경을 보며 사회적 약자들의 앞에 선 '대통령의 마음'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절규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피해자 앞에 선 대통령의 마음이 측근 지키기와 약자에게만 엄격한 법치주의, 혐오 정서에 기댄 지지율 올리기 같은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세월호 참사 구조 소홀'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 간부들을 대거 기소했고, 대선후보 시절에는 "정치하는 사람은 노동자 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이다. '내로남불'에 맞선 정의로운 검사이고자 했지만 또한 약자에 대한 동정과 관용 또한 가졌던 인물이라고 판단했기에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이나 막 정치를 시작했던 시절 가졌던 '초심'이야말로 윤 대통령의 안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남아주기를 기대한다.

'꺾이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다짐 앞에 혹여라도 마음이 꺾인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노동자들에게는 '백절불굴(百折不屈. 백 번 꺾이더라도 굽히지 않음)'이라는 사자성어가 다소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 바람이 불면 한때 꺾였다가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먼저 웃는" 풀은 민초(民草)의 상징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볼트래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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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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