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퇴진' 대신, '애도의 마음' 드러낸 작은 촛불

[현장] '촛불 대 맞불' 열린 19일, 시민사회는 이태원에서 작은 촛불을 들었다

"참사가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사이, '추모하겠다'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눠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박성현 4.16재단 나눔사업1팀 팀장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을 둘러싸고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 대 맞불'의 진영대결이 펼쳐진 가운데, 시민사회는 이태원 사고 현장 인근에서 '애도의 마음'을 강조한 작은 촛불집회를 열었다.

19일 오후 참여연대는 서울 지하철 녹사평역과 이태원역 사이 작은 광장에 소규모 '시민 추모 촛불' 발언대를 마련했다. 촛불을 들고 모인 100여 명 규모의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애도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며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와 위로의 발언을 전했다.

▲19일 녹사평역 인근에 모인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날 같은 시간대 광화문 일대 도심지에선 진보·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각각 촛불집회와 맞불집회에 돌입하면서 참사 책임을 둘러싼 진영대결의 양상이 펼쳐졌다.

숭례문 앞 태평로 일대에선 진보성향 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주최로 경찰 추산 3만여 명, 주최 측 추산 20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대규모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반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선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성향 단체의 주최로 역시 3만여 명이 모여 대규모 맞불집회를 개최했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등의 구호를 내걸었고, 맞불집회에선 "이재명, 문재인을 구속하라"는 등의 구호가 연호됐다.

이태원 인근에 모인 '작은 촛불'들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정부 책임에 대한 분노와 결의' 또한 확실히 했지만, 그것이 '정쟁의 일종으로 소비되진 않길' 바랐다. 참가자들은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다양한 양상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털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참사 이후 "뉴스나 유튜브를 보기도 쉽지 않아졌다"는 신유진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이태원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보면서 잠시 멀미가 났다"고 토로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는데, 많은 세계가 사라지고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는 "눈물이 눈물을 닦아낸다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먹먹한 순간들에" 최대한 연대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발언하는 신유진 청년참여연대 활동가 ⓒ프레시안

현장에서 즉석 발언을 신청해 무대에 오른 시민 하승수 씨는 "(참사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못 내는 분들도 계시고, 혼자 조용히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아파하는 분들이 혼자만 아프지 않길 바란다"는 그는 이태원 일대의 외국인 시민들과도 마음을 나누고 싶다며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내가 당신의 곁에 있겠다"는 말을 영어로 전하기도 했다.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사회 곳곳의 참사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생존자들과 일선 경찰과 소방관들 등 참사와 관련된 "모든 피해자를 피해자로 호명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대 발언을 위해 현장을 찾은 박성현 4.16재단 나눔사업팀장은 "이 세상을 떠난 158명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이 현장에서 살아온 이태원의 주민들,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한 소방관과 경찰들, 돌아왔지만 돌아온 게 아닌 참사의 생존자들 모두를 우린 '피해자'라 부른다"며 "그들을 피해자라 정의하고 그 '피해'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나가는 것이 2차 가해를 막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19일 시민 추모 촛불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땅에 놓인 피켓 주변에 추모 촛불을 놓고 있다. ⓒ프레시안

주최 측은 "참사의 진상과 책임에 대한 규명, 그를 통한 사법적 처벌, 재발방지대책의 마련, 법제도 보완 등"이 마침내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총장은 "정부 차원에서 진상을 설명하거나 유가족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 이에 많은 유족들이 답답함과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언론이나 댓글을 통한 2차 가해에 대한 고통과 공포에 대해서도 호소하셨다"라며 "참여연대는 유족들을 포함한 참사의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과 책임 규명을 위한 감시 및 촉구 활동,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시민 모니터링과 법률적 지원 등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는 이태원 참사 당일 112에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된 시간인 '6시 34분'에 촛불을 일시 소등하는 추모 행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촛불과 함께 놓인 피켓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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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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