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정치의 시대, 진보는 선언이 아니라 성찰에서 온다"

[인터뷰] 김형탁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그리움은 결핍에서 기인한다.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고 추모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가 내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그리움은 다소 공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알았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적인 욕망을 채워줬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정치인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정치인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겠죠."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정치인 노회찬'이 바로 그런 존재라고 말한다. 노회찬재단은 지난 4일부터 고 노회찬 의원의 4주기 추모주간 '노회찬의 시선, 2022'를 진행하고 있다. 김 총장은 "노회찬의 지난 삶과 정치"가 지금 우리 시대 정치의 결핍을 찌르고 있으며, 그래서 정치인 노회찬에 대한 추모는 그리움이나 사랑을 넘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 총장은 1990년대 노동운동을 하면서 당시 <매일노동뉴스> 편집인이었던 노 의원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진보신당에서 노 의원은 상임고문을, 김 총장은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무대를 공유했다. 올해엔 "제2, 제3의 노회찬을 배출"하기 위한 노회찬 정치학교 교장을 맡아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4주기 추모주간이 한창인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이하 노회찬재단)' 사무실에서 김 총장을 만났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노회찬의 시선'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노회찬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프레시안(한예섭)

프레시안 : 고 노회찬 의원의 4주기 추모주간을 시작했다. 노회찬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어떤가.

김형탁 : 많은 국민들이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좋아했고, 지금 또 그가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 왜일까. 노회찬과 같은 정치인을 국민들이 많이 보질 못했었고,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일관적인 사람이다.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그가 밟아온 정치적 행보로서의 의미다. 그는 꾸준히 진보정당의 생성과 집권을 추진했고, 그를 통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약진할 수 있길 꿈꿨다. 또한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단히 대중적인 면을 가졌었다.

정치로든 말로든 글로든 대중 곁에 서 있길 원했다는 것, 그것이 정치인 노회찬이 지금 시대에 가지는 가장 큰 함의다.

프레시안 : 지금 시대에 가지는 함의라는 말은, 그것이 지금 시대 정치에 부족한 요소라는 말도 된다.

김형탁 : 맞다, 노 의원의 정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를 용기와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X파일 사건처럼 기득권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했던 일이 용기를 보여주는 사례라면, 그 유명한 6411 버스 연설은 노회찬의 '성찰'을 보여주는 사례다.

노 의원은 연설을 통해 6411 버스에 탄 노동자들을 "이 사회의 투명인간"이라며 가시화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해당 연설에서 더 핵심적이었던 건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들 곁에 있었는가" 묻는 성찰이었다. 진보정당도 투명정당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에게 진보정치란, 우리 진보정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묻는 성찰이야말로 노회찬이 강조한 진보정치였다.

ⓒ노회찬재단 제공

프레시안 : 그런 성찰의 정치가 부족하다는 평인가.

김형탁 : 소위 팬덤정치의 시대라고 하지 않나. 정치인들 스스로도 선거 제도나 정치 구조적으로도 '내 편을 얻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니 편 내 편 가르고 "내가 맞다"고 증명하는 정치가 난립한다.

노 의원은 내 편을 만들기 보단 모든 사람을 보편적 언어로 설득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내 편이 아닌 너'를 탓하기 보단 정치가 미숙함을 탓했다. 촌철살인의 문장을 날리면서도 날선 언어를 지양했다. 그래서 노 의원의 말을 '촌철활인'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지난 7월 마무리된 재단 사업 '노회찬 정치학교'에서도 노 의원의 그런 말하기 방식이 주요 화두가 됐었다.

김형탁 :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 의원의 핵심 가치인 '소통'이 바로 정치학교의 모토였다. 가령 정치학교를 개설하는 취지부터가 소통의 활성화를 위해서다. 보통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혹은 자기 또래의 사람들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그러나 세대도 다르고 활동 영역도 다른 사람들과는 그렇지가 않다. 정치학교가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세대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합의의 정치, 공감의 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다양한 이해관계를 경험해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평가하나.

김형탁 : 놀랄 정도로 그랬다. 사실 지금 설명한 모토에 대해 따로 수강생 분들께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내가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정치학교에선 수강생 간의 토론 외에도 홈리스, 청소노동자, 북한이탈주민 등 내가 몰랐던 '타인'이 되어보고, 그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가지는 시간도 많았는데, 그 과정에 실제로 많이 몰입했다는 후기가 많았다.

타인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고, 그걸 통해 "많이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경험, 나는 그것이 소통이자 소통의 목적인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정치학교는 성공적이라 평가한다.

물론 공감 이후 그 후속이 더 중요하다. 이번 기본과정 3기 이후 이미 수강생들 간의 후속 공부모임이 생기고 있다. 강의를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임이 지속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재단은 그런 모임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그렇게 하나의 '망'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그런 후속 활동을 더 활성화할 수 있는 비용구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노회찬 정치학교 기본과정 3기 입학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형탁 사무총장 ⓒ노회찬재단 제공

프레시안 : 정치학교를 보면 재단의 사업은 단순히 추모나 그리움을 넘어, 노 의원이 꿈꿨던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목적처럼 보인다. 이번 4주기 추모주간에도 비슷한 의미가 담겨있나.

김형탁 : 맞다. 특히 이번 4주기부터가 본격적으로 그렇다. 가령 재단 차원에서는 "3주기까진 추모의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면, 4주기부터는 노회찬의 정치 혹은 정신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해 나가자"는 의견들이 있었다. 재단을 후원하는 분들께도 '노회찬을 그리기 위한 후원'이 아닌 '노회찬의 정신을 이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가기 위한 후원'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추모주간에 열리는 여러 사업들도 그런 차원에서 기획한 건가.

김형탁 : 12일 정책토론회 '제6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공화국으로' 같은 경우가 상징적인 사업이다. 노 의원이 생전 얘기했던 '제7공화국'을 주제로 87체제 이후를 상상하는 자리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완성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구체적인 전략들을 모색한다. 이후엔 재단 차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노동, 국제, 기후 등 각 분과를 개설해 전문적인 세미나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노회찬의 말과 글'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린다. (추모토론회 <지금 다시, 노회찬의 말과 글>, 오는 2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된다.편집자)

김형탁 : 재미있는 기획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내 것을 증명하고 내 편을 만들려는' 정치적 문화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공부다. 노 의원은 보편의 상식에 기반해,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공감과 설득을 이끌어 내던 사람이지 않나. 전문 수사학자들과 함께 노회찬의 말과 글을 수사학적으로 분석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를 통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치의 언어는 왜 이런가?" 혹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프레시안 : 결국 '노회찬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이어졌다.

김형탁 : 사회의 다양한 면면에 눈을 돌리고, 그 모든 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는 일. 그게 바로 노회찬의 정치이며 ‘노회찬이 보던 것’이다. 지금 시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시선이기도 하다. 이번 추모주간의 제목이 그래서 ‘노회찬의 시선’이다. 물론 의미가 정해진 제목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다만 그 모든 것들도 결국 '공감'이란 말 속에서 뭉칠 수 있지 않을까. 공감이 사라지고 공감의 정치가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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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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