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청소 아줌마'가 교직원 '과장님'이 된다면?

[노회찬 정치학교를 가다] 노회찬이 꿈꿨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희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선생님, 혹은 '아줌마' 정도로 불렸죠. 그런데 이제 저도 '과장님'이라 불립니다. 우리 청소노동자들도 학교에 직접 고용된 교직원이니까, 저는 OO대학교 청소과 과장님인 거죠."

-허우진 OO대학교 청소과 과장 (가상 인터뷰)

청소 아줌마가 청소과 과장이 된 세상이 열렸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아니다. '청소과 허 과장'의 이야기는 2019년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으로부터 13년, 2021년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으로부터는 11년, 그리고 2022년 현재로부터 10년 후인 2032년의 미래를 그린 가상의 인터뷰다.

해당 가상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평등학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노회찬 정치학교 기본과정 3기의 7주차 수업 날로, 인터뷰는 정치학교 강사인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가 진행한 참여형 워크숍의 일환이었다.

노회찬 정치학교에선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의에 더해 수강생들이 사회적 의제를 탐색하고, 그 해결 방안까지 직접 모색해보는 참여형 수업(워크숍)이 함께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팀을 이뤄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를 탐색하고, 정부·시장·시민사회가 쌓아온 해당 문제에 대한 대응 및 논의 양상을 조사한다.

이날 진행된 워크숍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서 수강생들은 지금껏 조사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각자 맡은 사회문제에 대응한 가상의 사회적 합의 기구를 결성, 해당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며 그래서 어떤 사회가 만들어졌는지를 발표하는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강생들 각각이 청소노동자 당사자, 시민사회 대표, 학교와 정치권 측 대표 등의 역할을 맡아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워크숍에서 청소노동자 문제 사회적 합의 기구 가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수강생들 ⓒ노회찬재단 제공

"화장실에서 쉬고, 계단 아래에서 쉬고 이런 건 옛날 얘기입니다. 우리도 이제 휴게실이 생겨서 쾌적하게 지내고 있어요."

"옛날엔 우리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고용승계도 안 해주고, 우리를 엄청 괴롭혔죠. 지금은 우리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 허우진 수강생(가상 인터뷰 청소노동자 역)

직접고용, 휴식 공간, 노조 탄압, 노동자 차별 문제 등은 2022년 현재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 및 기업 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쟁점들로 꼽힌다. 청소노동자 문제를 프로젝트 주제로 정한 노회찬 정치학교 워크숍 1조 수강생들은, 문제가 해결된 '내가 꿈꾸는 나라'를 구현해 보는 것을 넘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청소노동자 차별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근 10년 동안 학교 계약직에 대한 세제혜택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대학 측이 재정 부담을 많이 덜게 된 덕분에, 직접고용이나 시설 문제 해소에 긍정적인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차별 해소와 같은 문제는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전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고,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김종훈 수강생(가상 인터뷰 OO대학교 총무팀장 역)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권을 압박해 '비용이 없다'던 학교 측에 세제 혜택을 주는 대안을 마련했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언론 노출을 늘려 그러한 정치의 필요성을 어필했습니다."

-서유승 수강생(가상 인터뷰 시민사회 대표 역)

"(청소노동자 문제에 대한) 이번 사회적 합의는 노동 분야에서 굉장히 의미가 깊은 사건입니다. 특히 '노동자와 소속 사업장 간에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노동 형태'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저는 이를 (다른 사업 분야에도) 어느 정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각 작업장이 1년 이상 정기적으로 근무한 노동자에 한해 의무 (직접)고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박정현 수강생(가상 인터뷰 합의기구 소속 국회의원 역)

이날 워크숍엔 1조 수강생들의 프로젝트 주제인 청소노동자 문제 외에도 북한 이탈주민 문제, 홈리스 문제 등이 가상 인터뷰 무대에 올랐다. 2조 수강생들은 남북 간 민간교류 확장과 적극적인 교육 프로세스를 통해 이탈주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3조의 수강생들은 홈리스를 지역사회 일자리와 연결하는 대안을 발표했다.

▲워크숍 가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노회찬 정치학교 수강생 ⓒ노회찬재단 제공

▲팀 회의를 진행하는 노회찬 정치학교 수강생 ⓒ노회찬재단 제공

워크숍을 진행한 오진아 강사는 해당 활동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지"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를 감각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바라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의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 그럼으로써 그 의제를 자신의 '정치'로 구체화하는 것이 이 가상 인터뷰의 목적인 셈이다.

이러한 참여형 수업의 방향성은 현장의 정치를 강조한 고 노회찬 대표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노 대표의 2012년 연설 이후 노회찬 정신의 상징으로 남은 6411번 버스는 정치학교 1조 수강생들이 자신들의 '현장'으로 선택한 청소노동자 문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 대표는 매일 새벽 5시 반 해당 버스를 타고 새벽 출근을 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이 사회의 "투명인간"으로 호명하며 현장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고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중 일부

한편 이날 정치학교 수업에선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가 강사로 나선 '복합위험의 시대, 복지의 새로운 접근' 강의가 펼쳐지기도 했다.

김 교수는 전환기 한국사회가 처한 복합적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새롭게 짜여야 할 미래의 복지 모델을 수강생들에게 제시했고, 수강생들은 강의 내용을 토대로 "성장을 전제하지 않는 복지는 가능한가?" "기본소득과 복지국가는 함께 갈 수 있는가?" 등의 화두를 던지며 토론을 진행했다.

▲노회찬 정치학교 7주차 수업에서 참여형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오진아 소셜 디자이너 두잉 대표 ⓒ노회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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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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