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소유 캄보디아 공장…해고 피하려 입덧 숨기는 비극이 넘쳐났다

[한국 기업의 캄보디아 여공, 8년의 절규] ① 부당해고된 캄보디아 여공들의 지난 8년

지난해 9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세 명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한국인 소유 현지 공장에서 일하며 감내해야 했던 7년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임신부 해고 관행과 반복적 단기계약을 참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당했고, 법원이 부당해고 판결을 했음에도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두 편의 기사로 이를 전한다. 첫 편에는 세 노동자와의 인터뷰,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쓴 편지, 캄보디아 노동중재위원회 판정서와 법원 판결문, 국제시민사회단체가 작성한 팩트시트 등을 바탕으로 CIK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복기했다. 편집자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인근에 자리한 4번 도로는 도심과 외곽을 잇는 물류의 대동맥이다. '프놈펜 경제 특별구역'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단지도 도로변을 따라 입지해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외국투자기업이 쉴 새 없이 공장을 돌린다. 꽤 많은 수는 섬유·봉제 공장이다.

한때의 한국처럼 지금 의류업은 캄보디아 경제의 기둥이다. 지난해 캄보디아 의류 분야 수출액은 약 120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45%를 기록했다. 전태일이 일했던 1970년대 청계천 일대와 마찬가지로 이 산업을 떠받치는 노동자 열에 아홉은 젊은 여성이다.

휴먼라이트워치가 작성한 '캄보디아 의류업 노동권 침해' 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12시간이 넘는 초과노동을 밥 먹듯 수행하고, 200달러(약 30만 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쥔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이 나이키, 아디다스 등 화려한 국제 의류기업의 로고를 달고 우리 옷장에 닿는다.

해고 피하려 입덧 숨기는 비극이 공장 안에 넘쳐났다

올해 41살이 된 소 찬티아 씨도 미싱 앞에서 청춘을 보낸 캄보디아 여공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일한 회사의 이름은 'CIK 캄보'. 수백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롯데쇼핑 보나핏, 이마트 다이즈, 게스 등에 옷을 납품하던 한국인 소유 기업이었다.

27살이던 2011년 그곳에 취업한 소 씨는 취업 초 CIK를 좋은 회사로 기억했다. 직전에 다닌 다른 의류공장보다 사내 분위기가 좋았고 관리자들도 친절했다. 경영진이 매달 감독관, 팀장, 조장들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며 노동자들의 기여에 감사를 표하는 훈훈한 풍경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4~2015년경 새로운 한국인 관리자가 부임하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법 위에 군림하며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경영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협력적 노사관계도 무너져 갔다.

먼저 바뀐 것은 고용계약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를 한 명씩 불러내 3개월 단기계약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쓰게 한 캄보디아 노동법을 무시한 조치였다. 그러면서도 하루 생산목표량은 전보다 늘려갔다.

가장 참기 힘든 일은 임신부 해고였다. 캄보디아 노동법에는 '1년 이상 일한 노동자가 임신하면 90일 출산휴가를 주고, 50%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공장 안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사측은 3개월로 맺어둔 고용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임신한 노동자를 해고하기 시작했다.

해고를 피하기 위해 입덧을 숨기고 불러오는 배를 감추는 비극이 공장 안에 넘쳐났다. 소 씨가 아는 것만 20~30명의 노동자가 임신 사실이 알려진 뒤 공장 밖으로 내몰렸다.

▲한국 정부에 부당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당부하는 편지를 쓴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

임신부 해고 막으려 노조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그 비극을 멈추려 2017년 소 씨는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33살이었던 동갑내기 탭 스레이 씨, 아직 10대였던 17살 커트 소크니 씨와 함께였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CIK에서 일했던 노동자 거의 전원이 노조 가입에 동의했다고 이들은 회상했다.

힘을 얻은 소 씨와 동료들은 2017년 4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사에 노조 임원 선거 계획을 알리고 당당하게 후보자 명단을 제출했다. 임신한 동료를 지키고, 법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동자들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회사는 곧장 보복에 나섰다. 먼저 소 씨와 탭 씨 등 노조 설립에 앞장선 세 명을 한 달여 간 베트남 공장으로 파견했다. 갑작스러운 강제 이송 앞에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세 명의 창립 멤버는 선거일이 되기도 전인 2017년 5월 6일부터 22일 사이 모두 해고됐다. '주문 감소'도 해고의 명분으로 등장했지만, 사실상 노조를 만들려던 이들을 겨냥한 '표적 해고'였다. 실제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하겠다는 경고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노조에 가입한 이 중 10여 명의 해고됐다'고 세 노동자는 증언했다.

이 역시 법을 어긴 것이었다. 캄보디아 노동법은 '노조 지도자와 후보자가 선거 전후 45일 해고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고를 하려면 캄보디아 노동감독관의 허락이 필요하다. CIK는 이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법적 다툼에서 완승했지만,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임신부를 해고하지 말라고, 가족과 떨어져 이국에서 일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저 법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막막한 현실. 그럼에도 소 씨와 동료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해고의 부당함을 인정받기 위해 곧장 법적 절차에 나섰다.

이어진 법적 다툼에서 이들은 완승했다. 2018년 캄보디아 노동부 중재위원회는 사측이 세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해고일부터 복직일까지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임신부들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라는 내용도 함께였다. 그러나 CIK는 이조차 이행하지 않았다.

소 씨와 동료들은 CIK가 중재위 결정을 집행하게 해달라며 이번에는 법원 문을 두드렸다. 2020년 2월 1심 법원은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에 복직과 해고 기간 임금 손실 보상을 명령했고, CIK가 역으로 제기한 10만 달러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그럼에도 CIK의 불복종은 계속됐다. 항소 의사를 밝히더니, 항소 절차 개시에 필요한 8만 2500리엘(약 3만 원)의 수수료는 내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며 의도적인 지연 전략을 쓴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상황이었다.

실제 고작 3만 원가량의 수수료가 납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은 2년 넘게 멈춰 섰다. 납부 기한이 만료된 2023년 10월이 되어서야 회사의 항소 제기는 효력을 잃었다. 장장 7년여 만에 적어도 법정에서는 소 씨와 동료들의 싸움이 종결된 것이었다.

잠시 부풀었던 마음은 금세 다시 쪼그라 들었다. CIK는 법원의 최종 결정마저 묵살했다. 심지어 지난해 7월에는 CIK가 폐업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설비와 인력을 이어받은 '믹스앤매치(Mix&Match)'라는 기업이 간판과 주인을 바꿔 사업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였다.

▲굳게 닫힌 CIK 캄보 공장 정문.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과 한국 정부의 침묵

법을 어긴 것은 한국인 기업주인데, 7년 동안 무너진 것은 세 여공의 삶이었다. 그 사이 소 씨와 동료들은 그간 익힌 의류업 기술을 바탕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려 시도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노조 활동을 한 이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가 발목을 잡는 듯 했다.

기약 없는 싸움 속에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는 은행 빚으로 메꿨다. 그 사이 병에 걸린 커트 씨의 어려움은 더했다. 지금도 커트 씨는 매달 60달러(약 90만 원)를 약값으로 지출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간간이 일용직으로 일하지만, 돈이 부족한 달은 약 복용량을 줄인다.

벼랑 끝에 매달려 동앗줄을 잡는 심정으로 CIK 노동자들은 지난 9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이들은 "민주적이며 법을 잘 준수하고 현명"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노동자인 우리가 정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인터뷰에서도 세 여공은 "한국 회사가 법을 지키도록 설득할 힘이 없다고 느낀다"며 "한국 국민들이 회사가 올바른 일을 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K-드라마에서 변호사와 국회의원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봤다"며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정의가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에 더해 캄보디아 현지 노조 활동가와 한국 시민사회 활동가들도 '한국 정부가 고용주와 노동자들이 만날 수 있는 교섭 자리만이라도 열어 달라'고 호소 중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 전태일이 노동청 문을 두드리던 그날처럼, 한국 정부는 답이 없다.

한편 <프레시안>은 CIK 사업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진 믹스앤매치 측에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잘 모르는 일"이라는 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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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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