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장, 유족과 청소노동자 만나 '노동조건 개선', '갑질 해결' 약속

유족 "제 아내와 동료가 당한 갑질 뿐 아니라 갑질이 일어나까지의 과정 자세히 살펴달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A씨의 유족과 동료를 만나 노동조건 개선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했다.

고인의 남편 이모 씨는 총장이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인 데 감사를 표한 뒤 이번 갑질 뿐 아니라 갑질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달라고 당부했다.

오 총장과 유족,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간담회는 5일 서울대 행정관에서 열렸다. 애초 이 자리에는 생전에 고인이 가입했던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학생들도 참석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이 이를 거부했다.

▲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열린 청소노동자, 유족 등과의 간담회에서 숨진 청소노동자의 남편인 이모씨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건 개선, 갑질 해결, 서로 존중하는 직장 만들기 위한 노력 약속한 오세정 총장

유족과 청소노동자 앞에 앉은 오 총장은 "자리를 일찍 마련하려 했으나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결과가 나온 뒤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며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 총장은 "지난 2일 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앞으로 우리 대학에서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하도록 신경 쓰고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서울대 기숙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고용노동부 행정지도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TF도 조속히 꾸리겠다고 했다.

이 씨는 "이런 자리가 없었어야 하고 누구도 바라지 않는 자리였을 것 같다"며 "유쾌하지 않은 자리가 될 걸 알면서도 자리를 마련한 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 자리가 소나기를 피해보려는 자리가 아니길 바라고 저도 (총장이) 그렇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갑질뿐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난 과정 전반과 서울대가 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돌아봐달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이날 서울대가 아내의 사망 사건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않는 사이 일어난 일로 인한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씨는 "이런 자리가 조금 더 빨리 마련됐으면 저희 가정이 우격다짐으로 뭔가를 얻어내려는 불쌍한 사람들로 비치지 않았을텐데 (노동부의) 조사결과를 기다리느라 기간이 길어져 개인적 아픔이 있었다"며 "직원 중 한 명이 전화를 해 제가 싫다며 조의금을 돌려달라고 해 눈앞이 깜깜해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런 자리도 마련돼 앞으로는 이와 같은 2차 가해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있다"며 "용기를 내 증언한 제 아내의 동료들에게도 어떤 불이익이 없도록 학교가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오 총장은 "서울대가 앞으로 좀 더 근무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장소가 되도록 필요한 조치나 제도를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 5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근본적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노조, 학생 "학교, 책임회피 말고 인력 충원, 차별적 고용구조 해소 나서야"

이날 간담회에 앞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요구 연서명 전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서명에는 8305명의 개인과 321개 단체가 참여했다.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학교에 △ 이 씨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사공동조사단 구성 △ 직장 갑질 행위자와 책임자 징계 △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노사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서울대 기숙사 측이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임금 삭감을 야기할 수 있는 ‘인력 충원 없는 주말근무 폐지’를 노조와 협의 없이 추진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초하 비서공 집행부원은 "기숙사는 청소노동자의 주말근무를 폐지하고 대신 학생들이 직접 쓰레기를 버리게 하는 조치를 담은 설문조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며 "이는 학생의 불편을 초래할 뿐더러 노동자의 휴일근무수당을 삭감하는 결과를 불러올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정 부원은 "이는 대학 본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학생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처사"라며 "서울대는 더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 인력 충원,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를 둘러싼 차별적 고용구조 해소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노동자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소노동자 A씨는 지난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과 유족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죽음이 필기시험, 복장 점검 및 품평 등 서울대 기숙사 관리자가 청소노동자에게 행한 갑질과 과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필기시험과 복장 점검 및 품평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난 2일 오 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 발생 38일만에 고인과 유족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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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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