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모욕감'보다 관리자 '의도' 무겁게 여기는 '서울대 사람들'

[기자의 눈] '시험, 복장 갑질'...사람이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차별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사람은 법적 규정이나 생물학적 사실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받는 대접에 의해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성원권(成員權)'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때 성원권은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자리와 장소를 갖는 것'이다. 자리와 장소에는 공간 뿐 아니라 지위와 직위가 포함된다.

이 개념을 비정규직 문제에 적용하는 활동가를 본 일이 있다.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에서 오래 일한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말하며 고용형태, 처우, 노조 할 권리 등에 더해 성원권을 꼽았다.

예컨대, 현대차 간접고용 노동자는 공장 출입증을 받지 못한다. 대학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는 다른 구성원과 달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없다. 부당한 대우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꿔달라는 비정규직의 요구는 쟁의행위 등을 하지 않는 한 일상적 소통 구조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쉽게 묵살되곤 한다.

요컨대, 회사 안에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역시 비정규직에게서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고, 이런 것들은 임금 수준이 나아진다거나 노조 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에 따로 짚어 알고 있어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기숙사에서 청소노동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이후 제기된 중간 관리자의 갑질 의혹을 보며 그 활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 지난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을 꼭 쥔 채 서 있는 서울대 청소노동자들. ⓒ연합뉴스

오랫동안 노조 활동을 한 직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갑질'

서울대 청소노동자 다수는 2018년 10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간접고용 노동자에서 직접고용 노동자가 됐다. 다른 한편, 서울대 청소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해왔다.

지금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는 임금, 수당 등 경제적 문제를 빼면 정규직과 비슷하다. 정년이 보장된 직접고용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고 노동조합을 통해 학교 측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극은 일어났다.

A씨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지난 6월 새 관리자 B씨 부임 이후 서울대 기숙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B씨는 청소노동자에게 기숙사명을 영어로 쓰라는 등 필기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를 공개했다. 미리 공지한 회의시간 드레스코드를 맞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B씨에게 '평가점수 감점'이라는 말을 들은 청소노동자도 있다.

노동강도도 강해졌다. B씨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제초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한 청소노동자가 '제초작업까지 하는 건 힘들다'고 하자 '임금을 깎아 외주업체에 주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청소 검열도 시행됐다.

적어도 어떤 청소노동자들은 B씨의 조치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모욕감을 느꼈다. 지난 15일 민주당 산재TF 소속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소노동자 C씨가 한 말이다.

"저는 새로 오신 관리자가 현장을 겪고 직원 말을 듣고 하면 좋았을 것 같아요. 너무 급하게 쓰나미처럼 (변화가) 밀려오니 어려웠어요. … 본인(관리자)이 생각한 프로그램에 의해 짜여진 대로 (일을) 하는구나. 그러면 우리는 말 그대로 기계가 돼요."

C씨에 따르면, A씨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A씨는 청소 검열이 강화된 가운데 지적을 받지 않으려 이전보다 많은 일을 했다. C씨에게 회의시간 복장 지적을 받았다며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데 돈 모아서 정장 한 벌이라도 사야겠다'고 하기도 했다.

C씨는 또 A씨와 '이야기하면 뭐해 들어주지 않는다. 어쨌든 지켜보자. 도저히 안 되면 건의하자'와 같은 말을 나누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이 되고 3년이 지났지만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임금을 깎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듣지 않고 관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터는 먼 이야기였던 셈이다.

B씨 개인의 일탈? 서울대는 청소노동자에게 그래도 되는 곳

B씨의 행위를 악한 중간 관리자의 개인적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B씨는 어디까지나 기숙사 조직의 일원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사건 이후 드러난 사실을 보면,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듯 서울대에도 청소노동자를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 않고 그들이 받은 모욕을 가볍게 여기는 차별적 시선이 있다. B씨의 행위는 이같은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서울대에서는 '청소노동자에게 그렇게 해도 되니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민주일반노조가 공개한 자료에는 B씨의 업무 지시를 개인적인 것으로만 보기 어려운 정황증거가 나온다. B씨는 청소노동자들이 본 시험을 "교육훈련"이라고 적어 상부에 보고했다. 시험 장소에는 "근무성적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적힌 PPT가 큰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청소 검열도 행정실장 등 4~5명이 함께 했다. 이같은 일들에 대해 기숙사 측에서 문제를 감지했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외려 B씨가 아닌 다른 관리자가 청소노동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한 일도 있다. B씨가 청소관리 업무를 맡기 전인 지난 5월 한 관리자는 '일이 많아 힘들다'는 A씨의 문자에 "늘 억울하시겠네요^^", "OOO OOO 일 안 하고 놀고 있는데 선생님만 고생하시네요^^"라고 답했다. 청소노동자를 같이 일하는 동료로 생각했다면 쓰기 어려운 표현이다.

기숙사가 아닌 서울대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족과 노조가 사건을 공론화하는 기자회견을 연지 하루만인 지난 8일 구광모 행정대학원 교수는 '필기시험은 업무교육의 일환', '회의시간에 드레스코드를 지정하고 '감점을 말한 것은 농담'이라며 갑질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이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인 남편 이모 씨 등 유족에 대해서는 '원래는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이리라 믿는다'고 했다. 청소노동자의 조직인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외부세력', '노조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후 언론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몇몇 서울대 관계자 사이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앞서 이야기한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성원권이 없는 사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기술하며 "그들은 더 작은 명예를 지니며, 더 쉽게 모욕당하고. 그러면서 그 모욕의 무게를 평가절하 당한다. 그들은 불완전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다"라고 적었다.

구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일부 관계자들은 의식의 저울 속에서 청소노동자의 모욕은 가벼운 것으로, 관리자의 의도는 무거운 것으로 취급했다. 백보 양보해 그들이 말하는 관리자의 의도를 인정한다고 해도 필기시험 등의 조치에 대해 의도와 달리 청소노동자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무시됐다.

만약, 교수에게 '시험과 점수 공개', '회의시간 드레스코드 지정 뒤 복장에 대해 감점 발언'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업무 강도가 강화된 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교수가 나오고 갑질 의혹이 제기돼 교수노조가 이를 공론화했어도 하루만에 같은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어째서 대학 청소노동자는 대학에서 다른 구성원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일까.

▲ 지난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고인의 유족 이모 씨. ⓒ연합뉴스

서울대가 청소노동자도 '정말 좋은 곳이야'라고 말하는 곳으로 거듭나려면

서울대 안의 청소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오래 유지된 간접고용에 의해 강화된 면이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회사 안에서 사람으로서의 지위는커녕 법적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노동조건이나 부당한 대우를 개선해달라고 이야기할 때 '너를 고용한 회사에 가서 이야기해라'는 말을 듣는다. 간접고용 시절 서울대 직원은 청소노동자가 대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그 시절의 잔재를 지우기에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서울대에서는 청소노동자가 직접고용됐다.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람의 자리를 갖기 위한 토대만은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 면도 있다. 지난 13일 발표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입장문에서 '청소노동자에게 일어난 일은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니 업체를 관리감독하겠다'는 식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극의 재발을 위해 청소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노동조건을 점검하는 주체도 다른 누가 아닌 서울대로 명시됐다.

하지만 오 총장의 입장문에서는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의 지위가 온전히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난다. 오 총장은 학내 기관인 서울대 인권센터에 A씨 사망사건의 조사를 맡기겠다고 했다.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조사하기로 한 서울대 인권센터에는 청소노동자의 자리가 없다. 교수와 직원,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의 자리가 있을 뿐이다. 조사 결과와 별개로 이같은 조사 구조는 청소노동자가 사람의 자리를 갖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서울대 안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람의 자리를 갖는 일을 서울대에 기대서만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약자의 권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면이 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가능하게 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뒤에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었다. A씨의 유족과 노조도 이미 서울대에 노사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공은 다시 서울대로 넘어갔다. 서울대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진정으로 종식하고자 한다면, 청소노동자들이 받은 모욕과 그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다른 구성원과 동등한 무게감을 부여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나 A씨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에 청소노동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힘겹게 싸우고 있는 유족과 노조에 서울대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화답하길 바란다. 그래서 청소노동자에게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고, 유족의 말처럼 청소노동자도 '서울대는 정말 좋은 곳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는 출발점에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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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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