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체르노빌만 기억하지 말라"…이번엔 '탈원전' 뒤집기

"월성 원전 압력으로 총장 그만뒀다…탈원전 반드시 수정"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탈원전을 의제로 들고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을 비판하며 정권교체가 되면 이를 되돌리겠다는 뜻을 밝힌 것.

윤 전 총장은 5일 서울대를 찾아 이 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주한규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주 교수는 문재인 정부 탈핵 정책을 앞장서 비판해온 인사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이른바 '핵발전 마피아' 인맥의 핵심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윤 전 총장은 주 교수가 "(탈핵은) 잘못된 정책이니 바뀔 것"이라고 말하자 "당연히 바뀌지 않겠느냐"고 화답했다. 윤 전 총장은 이어 "원전(핵발전)이라는 것이 저비용 친환경 에너지인데 국민들이 안전성에 대해 조금 걱정을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해 "(국민들이) 오해가 많다"고 일축했고, 윤 전 총장은 "초기에는 저도 마찬가지이고 국민들이 인식을 못 하다가 점점 지나면서 이제는 인식을 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주 교수와 만난 이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면서는 "졸속 탈원전(탈핵) 방향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며 "체르노빌 사건만 기억할 것이 아니다. 에너지 저비용 생산은 우리 산업에 경쟁력이 생기게 하고 일자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탈핵 정책이) 국민의 합당한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추진된 것인지 의구심이 많다"고도 했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책 추진이) 이뤄져 많은 법적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가 검찰총장직을 그만두게 된 것 자체가 월성 원전(핵발전소)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다. 제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정치 참여 선언을 하면서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탈핵)"을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 사례의 하나로 들었다.

당시 윤 전 총장의 첫 정치적 메시지는 "무도한 행태", "권력 사유화", "국민 약탈" 등 수위 높은 표현을 동원한 문재인 정권 비판이었고, 이 자리에서 그는 "종부세 전면 재검토",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현안의 그랜드바겐(일괄타결)" 등을 주장했다.

이어 지난 2일에는 여당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SNS에서 현대사 논쟁을 벌였고, 이번에는 사실상 '민생 행보'의 첫 일정으로 핵발전 문제를 들고 나온 셈이다. 윤 전 총장은 다음날인 6일에도 대전 카이스트를 찾아 핵발전 관련 일정을 이어간다. 윤 전 총장 측은 카이스트 방문이 '민생 행보'의 첫 공식 일정이라고 밝혔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사태 이후 본격 쟁점화된 탈핵 문제는 한국 시민사회에서 대립이 첨예한 이슈다. 지난 1월 한국갤럽 여론조사(1.26~28, 1004명 대상)에서 핵발전 확대/축소/유지에 대한 의견은 각각 응답자의 25%, 29%, 36%였다. '현행 유지'가 가장 높긴 했으나, '핵발전 축소'가 '확대'보다 다소 높았다.

당시 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진보층에서는 핵발전 축소 50%, 확대 18%, 유지 28%였고, 보수층에서는 축소 15%, 확대 38%, 유지 40%였다. 중도층은 축소-확대가 각 27%로 같았고 '유지' 의견이 39%였다.

정당 지지 성향별로 보면, 국민의힘·국민의당 등 보수정당 지지층에선 확대·유지 의견이 유의미하게 높았던 반면(국민의힘 축소 8% 확대 44%), 민주당·정의당 지지층에서는 상대적으로 '축소' 의견이 높았다(민주당 축소 46% 확대 13%, 정의당 축소 39% 확대 20%).

윤 전 총장이 서울대 방문에 앞서 주말 SNS에서 제기한 역사 논쟁 역시 전형적인 진보-보수진영 간 쟁점 이슈다. 이재명 지사가 광복 직후 미군정과 구 친일파의 합작을 지적한 데 대해 윤 전 총장이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정치적 비난을 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일 장모 최모 씨가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후 나온 윤 전 총장의 행보는 이처럼 모두 보수층 표심을 자극하는 것 일색이다. 김염삼·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방문 일정도 2일 오후 공개됐다. 다만 이는 지난달 중순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찾은 데 이어진 행보이기는 했다.

한편 윤 전 총장 측은 당초 이날 광주 5.18 묘역 참배를 계획했다가 5월 단체 내에서 의견이 갈려 일정이 무산됐다는 기독교방송(CBS) 보도에 대해 "캠프 내에서 5.18 구속부상자회와 연락을 취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부인하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방송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의 민생 행보의 첫 일정은 원래 핵발전 문제가 아니라 광주행이었으나 5.18 구속부상자회 측에서 '윤 전 총장이 진정성도 보이지 않고 내용도 없다', '그림을 만들기 위해 진정성 없는 쇼를 하려 한다면 오산'등 반발이 있어 결국 취소됐다고 한다.

<프레시안>은 당초 윤 전 총장이 광주 방문을 이날로 계획했던 것은 사실인지, 민생 행보의 첫 일정이 광주행이었는지 등을 확인하려 했으나 윤 전 총장 측 이상록 대변인은 "CBS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만 했을 뿐 계획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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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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