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검증대' 오른 윤석열, '이재명 때리기' 태세 전환

'미 점령군' 발언에 "귀를 의심케 하는 주장", 이재명 겨냥 첫 비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美) 점령군' 발언에 "이념에 취해 국민 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이 지사의 언행은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고강도 공세를 퍼부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은 국민들의 성취에 기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지사가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나"라고 했던 발언을 나흘 만에 윤 전 총장이 '정통성 논쟁'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이 지사의 발언을 "셀프 역사 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며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냐"며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도 했다.

그의 비판은 '미 점령군' 발언 당사자인 이 지사와 문재인 대통령, 정부여당을 싸잡아 비판해 보수 표심을 자극하는 이념 공세의 전형적 경로와 일치한다.

이 지사의 발언이 알려진 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막말"(황교안 전 대표), "이 지사가 대한민국을 친일세력과 미점령군이 만든 지배체제로 더렵혀진 나라라고 이야기했다"(원희룡 제주도지사), "통합진보당식 역사 왜곡"(하태경 의원), "반미, 반일 몰이로 표를 얻으려는 계산"(유승민 의원)이라며 비판했다.

'이재명 때리기'에 가세한 윤 전 총장의 태도는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이 지사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 지사와는 24년 전에 성남지청에서 근무할 때 자주 뵀다. 열심히 하시고 변론도 잘했다"고 덕담했던 모습과 크게 달라졌다.

장모 구속 사건으로 도덕성 검증대에 오른 윤 전 총장이 보수층에 올라탄 이념 경쟁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대한민국 정통성 논란으로까지 비화시킬만한 소재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 전 총장의 비판에 앞서 이 지사는 3일 페이스북에서 "승전국인 미국 군대는 패전국인 일제의 무장해제와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였으므로 '점령군'이 맞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군 스스로 포고령에서 '점령군'이라고 표현했고, 한반도를 피해국 아니라 패전국 일본의 일부로 취급했다. 이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1945년 9월 7일 발표된 '맥아더 포고령'은 "(미)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일본의)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권 및 종교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 것을 보장받는다"면서 6가지 "점령조항"을 발표했다.

포고령을 근거로 이 지사는 자신의 '미 점령군' 발언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기 전 미군정기의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이라며 "역사적 몰이해 때문에 '그럼 점령군 주한미군을 몰아낼 것이냐'는 마타도어마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주한미군은 독립정부의 공식적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한 군대"라며 "독립된 한국 정부와 패망 후 점령당한 일제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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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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