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피아' 놀이터 된 SR...KTX 쪼개기 5년의 민낯

[기고] 철도경쟁체제 도입 5년, 무슨 일이 있었나

2013년 12월, 수 천 명의 경찰병력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건물을 둘러쌌다. 수서발 고속철도 분리를 반대해 파업에 들어간 철도노조원들이 건물 안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철도노조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해머를 든 경찰들이 출입문 대형 유리창을 깨는 장면이 생중계 됐다.


출범 첫 해 박근혜 정권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가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는 흔들림이 없었고 일부 언론들은 이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난리 속에 '주식회사 수서 고속철도'가 출범했다. 국토부는 115년 철도독점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자화자찬했다. 국토부발 보도자료를 멋지게 포장하는 일 역시 일부 언론들이 앞장서 맡았다. 정부부처와 언론 보도만 보면 수서 고속철도 설립으로 한국철도는 발전할 일만 남은 듯 보였다.


곧 개통할 듯 보였던 수서발 고속철도는 16년 12월에야 'SR'이란 회사이름으로 고속열차를 운행하게 되었다. 깨끗한 열차, 고객편의성을 높인 시설, 새로운 서비스가 비로소 경쟁체제로 구현되었다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뒤편 그늘에는 스멀스멀 부정과 비리가 똬리를 틀었다. 지난 정권 대통령이 국정에 무감하고 측근들이 널을 뛰는 행태는 청와대에만 있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남들도 다했고 그래도 됐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SR 출범이 독점의 안이함에 찌든 코레일을 자극해 효율화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국가 철도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철도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경박했는지 알려주는 말이었다. 세계 철도산업의 흐름이나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조금만 살펴봐도 철도가 떠안은 문제를 알 수 있다. 주력교통수단의 지위를 도로에 내어준 뒤 제대로 된 투자나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한 철도 산업의 사양화는 거의 모든 철도 보유국이 겪은 문제였다.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는데 처방을 엉뚱하게 한 결과가 SR 출범이었다. 그리고 SR이 출범하자 고속철도 분리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제기했던 문제들이 보란 듯이 차례로 머리를 내밀었다. 고위 관료들의 좋은 낙하산 자리가 될 것이란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교통물류실장은 국토부 퇴직 20일만에 SR 사장자리를 차지했다. 누가 가도 흑자를 내는 조건을 가진 철도 회사 수장 자리는 이제 국토부 퇴직자의 몫이라고 선언하는 듯 했다.


SR은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2017년 400억 원대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코레일은 4년만에 적자로 전환되면서 5267억의 영업적자를 냈다. SR출범 경쟁효과로 코레일 적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던 한국교통연구원의 전문가들과 과거 국토부 철도정책 담당자들의 미래 전망을 듣고 싶다.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쳤던 이들은 SR출범이 부정과 비리를 없애 코레일 개혁을 이끌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부정과 비리는 신생기업 SR에서 맘놓고 저질러졌다. 나는 지난해 봄 한통의 제보 편지를 받았다. SR직원으로부터 익명으로 보내진 편지에는 SR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비리들이 담겨 있었다. 어떤 내용들은 설마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제보자는 대한민국의 번듯한 회사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제보내용을 기자들에 전달하며 취재요청을 하면서도 제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안하무인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보 내용은 경찰수사 결과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SR은 철도 운영회사이기에 출범초기부터 경력직원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코레일에서 많은 인력이 이직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은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SR에 자리를 잡았다. 채용청탁 대가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모 노조위원장은 코레일 KTX 기장 출신이다. 이 모 씨는 코레일 재직시절인 2005년, 노조 승무지부장을 맡으면서 승무원 가방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2013년 5월에는 자판기 수입금을 편취해서 또 징계를 받았다. 직원들 복지를 위해서 쓰여야 할 기금이 노조 지부장에 의해 유용됐다. 당시 이 모 씨가 기금 중 일부를 상납한 대상은 이 모 씨 소속사업소장인 박 모 씨라고 알려졌다. 철도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SR출범에 맞춰 코레일을 떠났고 한 사람은 노조위원장을 다른 이는 영업본부장을 맡았다.


SR노조위원장 이 모 씨는 이미 코레일을 떠나기 전부터 새로 출범하는 수서고속철도 노조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깔려있었다. 이런 사실 자체가 범죄 행위 일 수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모 씨 등을 포함해 노조간부 명단까지 나돌았다. 노조위원장은 해당 조합원의 자유의사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조위원장을 뽑을 직원도 채용되기 전에 노조위원장이 내정되었다는 것은 사측의 노조에 대한 부당한 지배개입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근로기준법위반이고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미 회사에 의해 기획된 노조가 노조 본연의 역할을 할 리 만무하다. 회사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노조가 비리의 몸통이 되었다.


SR이 제대로 된 인력 검증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출범 당시부터 문제가 있는 인사들을 채용하지 않았거나 설사 채용했더라도 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 사장인 김복환씨도 비리에 연루되어 불구속 입건됐다. 사장부터 노조위원장까지 많은 이들이 한통속이 되어 거리낌 없이 비리를 저질렀다. 이런 문제들은 철도경쟁체제란 허울 좋은 구조를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으려는 국토부의 묵인과 방조 속에 꽃피웠다.


정글로 불리는 취업경쟁에 나선 청년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이권을 챙기는 이들이 만드는 철도 선진화는 과연 무엇인가? 고위관료 낙하산에 학연으로 엮인 철도마피아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SR, 그리고 이에 연루된 코레일 고위 간부들에 대한 일벌백계는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라고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대륙으로 달릴 열차를 꿈꾸는 시대다. 60킬로미터 남짓한 고속 분기선을 빌미로 고속철도 회사를 나눴던 어리석은 정책은 폐기하자. 하나로 통합된 고속철도가 하나로 통일될 남북을 기원하며 달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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