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민영화 적폐' 수서발KTX에 '관피아' 낙하산이 투하됐다

[기고] 차기 정부, '민영화 적폐' 수서발KTX' 다시 통합 해야

한국철도 개혁의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보수 정권 9년 동안 철도는 효율성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다. 비효율 속에서 적자를 양산하는 철도에 대한 개혁이 철도 정책의 모든 것이었다. 비효율의 원인은 무엇인지, 적자는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의도적으로 무시됐다.

악의 근원은 국영 독점체제였고 철도공사가 출범한 이후는 독점체제였다. 이 같은 진단에 처방은 간단했다.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철도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 속에 이명박 정권 말기에 수서발 고속철도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박근혜 정권 때는 SRT(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가 출범했다. 경쟁체제의 효과는 벌써 드러나고 있다. 2016년 코레일(철도공사)의 영업손익이 1539억 흑자였지만 2017년에는 1682억 원의 적자예산으로 편성되었다.

당장 지방 적자선의 운행편수가 감축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적자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비효율적 철도공사는 계속 구조조정 압박을 받게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철도공사의 기능을 분야별로 쪼개서 누군가 사이좋게 나눠 갖게 될 것이다.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 방향이 제시하는 길이다. 여기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은 재벌이고, 고위직 관료들,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준 속칭 철도 전문가들이다.

적폐란 단어를 철도에 적용했을 때 가장 상징적인 일은, 국정농단 정권 출범 초기 최대과제의 하나로 밀어 붙였던 수서고속철도를 철도공사로부터 분리시킨 것이다.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얘기했지만 실상은 수도권 동남부지역의 고속철도 수요를 독점하는 체제를 못 박았다. 수익보장이 검증된 국가기간 인프라를 국토부 산하의 위장기업으로 만든 프로젝트였다.

최근 SRT 사장으로 선임된 이승호 씨는 국토부 고위 관료 출신(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으로 퇴직 20일 만에 투입된 낙하산이다. 박근혜 정권의 인사 방침이 합리성이나 최소한의 양심을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대행 정권 말기에 이처럼 노골적으로 국토부의 알박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관료체제 대수술의 필요성을 웅변할 뿐이다.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철도산업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전후 복구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교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로 불리는 자동차 세상으로의 전환이다. 도로 교통이 주력 이동 수단이 되었다. 고속도로가 지역을 잇고 도시가 확장될수록 자동차는 더 늘었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도로를 만들게 되는 순환계에 들어갔다.

현관문 앞에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이른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가능한 편리함을 필두로 자동차가 주는 편의성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도 따라올 수 없었다. 이런 연유로 철도 이용률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용률이 감소하자 운행편수가 줄거나 운행을 중단하는 일이 생겨났다. 철도운영기관의 수익도 떨어졌다.

결국 철도산업의 역사는 사양화에 대응해 가는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역사이기도 했다. 정부는 철도가 발생시키는 익숙한 문제인 '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세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매진해야 했다. 수세적인 구조조정이라 함은 기존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이른바 합리화 조치의 반복이었다. 이미 주력 교통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철도에 투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는 자동차 산업의 이해관계와 끊임없는 도로 건설로 수익을 챙기는 토건족의 과두체제가 되어버린 정부부처와 업계의 동반자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조건은 철도를 더욱 낙후하는 길로 몰아가게 된다. 개선되지 못하는 철도시설은 정체된 현실 자체로 부실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노후화되는 장비와 시설은 제때 정비되거나 보수되지 못한다. 이것은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데 이는 또다시 인건비 증가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정부가 철도산업의 높은 인건비 비중을 성토하는 데 철도는 세계적으로 그 어떤 산업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산업이다. 또한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미 80년대부터 자동차 제작 공장에 로봇이 도입된 것에 비하면 철도에서는 아직도 곡괭이가 쓰이고 있다.

철도산업에 대한 수세적 대응 방식의 최정점은 영국철도 민영화였다. 신자유주의의 여제 대처 영국총리는 정부의 역할을 시장에 대거 위임하는 정책을 펼쳤다. 철도산업은 소명을 다 한 것으로 이제 정부의 울타리에서 내쫓겨 살벌한 시장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신세가 되었다.

끊임없이 추락하던 철도가 다시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도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도로교통이었다. 환경오염, 국토파괴, 교통혼잡비용, 사고처리비용, 에너지위기 등 자동차 산업이 정점에 오르면서 발생시킨 사회적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계 각국은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에서 강제로 차량 운행을 금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행사를 치를 수 없는 조건에 이르렀다. 여기에 고속철도의 등장은 철도의 부흥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었다. 이제 철도는 근대 산업화 시대의 낡은 유산이 아니라 안전한 고속이동을 보장하는 현대인의 친구가 되었다.

철도는 정시성, 친환경성, 안전성을 구비한 미래 산업의 지위를 확보했다. 도심의 지하철이나 광역철도는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교통수단이 되었고 고속철도는 간선 철도와 더불어 지역 균형발전과 통합을 선도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제 철도 정책은 유망산업으로 진화한 철도산업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구조조정 정책으로 바뀌었다.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화(Marketization) 정책이다.

한국의 철도정책은 위에서 언급한 수세적 구조조정과 적극적 구조조정 사이 어디쯤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적 특성이 부가되어 선민의식으로 오염된 관료들의 부처 패권주의와 정치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부족, 이권연합으로 결탁한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황금비율로 섞여 있다.

국민이 철도에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값싼 철도다. 이것은 어떤 특정지역 특별한 시민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비등했던 철도민영화 주장을 막은 것은 간단한 원칙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네트워크 산업의 무분별한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철도는 대표적인 네트워크 산업이다. 그물망이 되어 사회를 받치는 기간산업이다. 이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특징은 통합적 구조로 상호 보완과 협력의 체제로 유지될 때 그 건실함이 지켜진다는 점이다. 적폐를 청산하는 철도정책은 경쟁체제란 이름으로 갈가리 찢어진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다시 엮는 일이다. 공공철도는 통합의 기초위에 설 때 든든해진다. 철도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코레일과 SRT의 통합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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