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경쟁 체제의 기가막힌 실체

[기고] SRT 사장 인터뷰가 보여준 언론의 민낯

100미터 육상 트랙 출발선에 가벼운 런닝복과 전용 운동화를 신은 선수가 서있다. 이 선수는 경쟁 선수가 출발선에 서자 전력 질주해 압도적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 했다. 기다리던 기자는 선수에게 다가가 승리의 비결을 묻고 기자와 선수는 하나가 되어 뒤쳐진 선수를 비웃는다. 그런데 뒤 떨어져 달려오는 선수의 모습이 이상하다. 수 십 킬로그램이 나갈 만한 배낭을 뒤에 지고 있다. 더구나 이 선수는 이미 육상트랙 전 구간을 몇 바퀴 돈 뒤에 승자와 대결을 펼쳤다. 텔레비전 중계 화면은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결승선을 끊는 승자의 모습만 클로즈업하고 신문은 경쟁이 불러온 신기록이라며 변죽을 울린다.

필자는 얼마 전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이 쓴 '일본철도관련 기사'에 대한 문제점을 쓴 바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일본의 천만원짜리 기차표, 우리의 장밋빛 미래인가?) 중앙일보 기자의 기사는 일본철도의 성공을 칭송하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특파원이라도 일본 철도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현상만 보고 쓸 수 있는 기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SRT(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개통 6개월을 맞아 9일 보도된 SRT 이승호 사장과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는 언론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인터뷰를 빙자한 노골적인 사장의 회사 홍보에 기꺼이 기자의 이름을 걸 수 있는 것은 기자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굳건한 동맹자로서의 역할 분담이고 임무 수행이다. 중앙일보가 꿈꾸는 사회는 SRT같은 회사가 많아지는 것이다.

앞서 든 육상트랙의 예는 SRT와 코레일을 비유한 것이다.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이야기 하지만 이미 경쟁자체가 의미 없는 프레임이다. 결과만 가지고 경쟁의 효과라고 국민을 속이는 정부부처와 운영기관, 연구기관, 언론이 하나가 된 현실은 한국사회의 개혁이 얼마나 힘겨운 과정이 될 것인지 가늠하게 한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새 대통령의 다짐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도처에 널려있다.

필자는 박근혜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SRT 설립의 결과 중 하나는 국토부 고위 관료들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다. SRT 이승호 사장은 SRT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국토부 고위 관료 출신이다. 황당한 것은 이승호 사장이 국토부를 그만 둔지 20일 만에 SRT의 사장자리를 꿰찼단 점이다. 이런 사례가 관피아가 아니면 무엇이 관피아 일까?

최소한의 양심도 찾아 볼 수 없다. 파렴치한 일을 서슴없이 해치우는 사람들이 공직자 시절에는 국민의 편에 서서 일을 했을까? 퇴직금과 매월 수 백 만원의 공무원 연금을 평생 보장 받게 되었으면서도 퇴직 후 20일 만에 사장자리에 등극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될까? 국토부 고위 관료들의 놀이터가 된 산하기관은 비단 SRT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 기자는 대 놓고 멍석을 깔아주고 이승호 사장은 맘껏 춤을 춘다. 기자가 경쟁 효과가 요금 인하와 KTX에 전원 콘센트 설치한 정도인가 묻자 사장은 KTX운영사인 코레일과 함께 쓰는 발매시스템을 곧 독자적으로 구축해서 본격 경쟁에 나서겠다고 답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중복비용에 따른 세금 낭비이다. 통합 구조에서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이다.

사장은 획기적인 서비스 계획도 발표했다. 주중 남는 좌석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부녀회가 야유회를 간다면 직접 버스로 모시러 간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 철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본인은 스티브 잡스처럼 신개념을 도입했다고 자아도취에 빠져있을지 몰라도 철도 서비스를 이런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국토부의 교통정책을 담당했던 전문가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기자의 추임새가 또 들어갔다. "개통 초기 진동 문제는 코레일 측 책임이 큰 것 아닌가?" 이승호 사장은 장단에 맞췄다.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 측에 강력하게 하자 보수를 요구해야 했다" 이 질문과 답이 수서고속철도 경쟁체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째서 SRT의 진동문제가 코레일의 책임문제와 연결될까? SRT는 운행만 담당하면서 수익을 가져가고 유지보수나 차량정비는 코레일의 몫이다.

잘게 쪼개져 민영화 된 영국철도에서 떼돈을 번 세력 중의 하나는 철도회사들의 소송을 대행해준 로펌들이었다. 사고나 문제가 생겨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보니 법정 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코레일과 SRT는 선로배분권 등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이 남아있다. 누군가는 승자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싸움에 등터지는 것은 시민들이다.

이승호 사장은 SRT의 장점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8%라며 코레일의 38%에 비하면 얼마나 효율적인 회사인지 자랑했다. 참고로 인건비 비중이 8%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철도 회사가 될 것이다. 국토부가 개혁 모델이라며 수입하겠다는 독일 철도의 매출액대비 인건비 비중은 조사 방식과 연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28%~35% 수준이고 철도 선진국 중의 하나인 프랑스는 39% 이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가 30~50%대 사이에 들어있다. SRT의 8%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치다. 과연 이것은 경쟁체제의 효과이자 사장의 경영능력이 뛰어나서 얻어진 결과일까? 만약 비효율의 온상이라는 코레일의 고속철도 부분을 떼어 내고 이중에서 시설과 차량의 유지보수 부분도 제외 한 뒤 기관사와 일부 지원인력의 인건비를 고속철도 매출액과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기자의 마지막 질문은 대미를 장식했다. "벌써부터 SR을 코레일에 통합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승호 사장은 답한다. "통합하는 순간 우리 철도산업은 끝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굴 의미하는 걸까? 마피화한 관료들과 철도로 돈을 챙기고자 기회를 엿보는 재벌들, 이들의 든든한 파트너 중앙일보 같은 언론이 지탱시키는 철도산업이 아닐까?

중앙일보의 사시에는 "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의 책임을 다함"이라는 내용이 있다. 공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흉기는 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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