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도제학교, 도제담당교사는 왜 극단적 선택을?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⑦] 도제학교 선택한 이명균 군

<프레시안>은 작년 11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이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뒤섞인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둘러싼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에 이어 특성화고 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특성화고에 입학하게 됐는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기획연재 바로가기 : 반복된 학생의 죽음)


인문계 가서 성적 깔아줄 바에는 차라리 공고가 낫다

중학교를 전라북도 전주에서 졸업한 이명균(가명, 19) 군. 그는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내신이 좋지 않았다.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대부분 시간을 PC게임 하면서 보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는지라 늦잠 자기 일쑤였다. 자연히 공부도 등한시했다. 이 군이 지금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다.

집안에서도 이 군에게 특성화고를 적극 추천했다.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모두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기능장인 큰아버지는 자신의 공장도 직접 운영했다.

"어차피 그 성적으로 인문계 가봤자 다른 애들 (성적) 깔아주는 것 밖에 안 된다. 차라리 공고를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게 이득이다."

이 군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둘째 큰아버지 아들이 인문계를 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에 갈 때 큰아버지와 많이 싸웠어요. 큰아버지는 공고를 가라고 하고 형은 인문계를 간다고 고집을 부렸죠. 결국, 형은 전주의 모 대학교까지 나왔는데, 졸업 후에는 딱히 취업할 곳이 없다보니 가게 점장을 했거든요. 그렇게 취업하고 나서 그럭저럭 생활을 했는데, 그 형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죠. 결혼을 하면 자기 혼자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전에는 혼자 생활하니 가게 점장 월급으로도 감당이 됐는데, 결혼을 하니 그게 안 됐어요. 아기도 태어나고... 결국, 고민하다 큰아버지 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때 형이 제게 그런 말을 했어요.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면 인문계 가지 말고 공고에 가서 기술 배워라'고. 자기 경험에 따른 결론을 제게 말해준 거였죠."

그렇게 들어온 특성화고에서 이 군은 '도제학교' 프로그램을 이행 중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기업체 현장실습을 하지만, 도제학교 학생들은 2학년 1학기부터 학교와 기업체를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는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이 제도는 2017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당해 기준 전국 198개교가 도제학교를 운영 중이다.

허드렛일 하기도...이럴거면 왜 도제학교를 하나

ⓒ프레시안(허환주)
이 군이 도제학교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빨리 취업할뿐 아니라 병역특례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 대신, 취업한 기업에서 3년간 일하면 병역이 면제된다. 주변에서도 이를 독려했다. "쓸데없이 군대에서 시간 보내느니,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버는 게 낫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도로 중앙선 가드레인을 만든다. 정확히는 철을 용접해 가드레인으로 조립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이 군도 용접을 '배우고' 있다. 이 군이 하는 용접은 전기용접. 산소 등으로 하는 특수용접이 아니라 전기로 할 뿐만 아니라 간편하게 도구를 들고 다니기에 위험은 다소 낮다.

이 군의 업무는 가드레인 내부 용접. 아무래도 용접이 서툰 이 군이기에 군더더기 없이 용접해야 하는 외부는 숙련된 직원들이 담당한다.

기업에 가는 날은 일주일에 두 번, 나머지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회사에서 이 군을 담당하는 사람은 현장 반장인데, 그렇다고 일하는 내내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반장은 반장대로 바쁘다. 용접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직원들이 틈틈이 지적을 해준다. 어떻게 하면 잘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이다.

"학교에서는 책에 나오는 기술만 가르쳐주잖아요. 용접할 때 무릎 각도는 어떻게 하고, 손 모양은 어떻게 하고...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임들이 직접 용접하면서 배운 기술을 알려줘요.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이에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이곳에서 배운다. 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공장 내에서 직원들은 이 군에게 함부로 일을 시키지 못했다. 미숙련자인 이 군이 행여 일하다 사고라도 날 경우, 책임은 온전히 기업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일을 안 하거나 허드렛일만 하는 날도 많았어요. 솔직히 도제학교하면서 느낀 건데, 이런 것(허드렛일)은 도제과정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굳이 도제과정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안 해도 달라지는 건 없는데... 하지만 이런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도제학교를) 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빨리 취업을 하려 했기 때문이죠."

지금의 회사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이 군이 다니는 회사에는 16명의 직원이 일한다. 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총 여덟 군데에 면접을 봤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를 제1지망으로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제2지망으로 써낸 회사가 현재 다니는 회사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회사는 노동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도제학교에 산학협력을 맺는 기업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아쉬울 게 없는 중견기업이 굳이 도제학교 등을 통해 특성화고 학생을 받을 이유가 없다. 건실한 중견기업은 너도나도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자연히 인력수급이 잘 안 되는 중소기업이 도제학교에 몰리는 구조다.

이 군은 현재 회사에서 병역특례 기간을 마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려 한다. 이 군은 지금의 회사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5년 뒤, 이곳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단다. 여기서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병역특례 기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이기에, 지금보다 조건이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큰아버지 공장에 취업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찌됐든 20대까지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 군의 현재 목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특례로 3년 동안 일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 도제학교의 취지인 '선취업, 후진학'의 일환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25살에 대학교 졸업장, 그리고 용접 관련 경력 및 그간 모은 월급 등이 이 군 손에 쥐어진다. 하지만 이는 '계획대로 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게 자격증 취득이다. 전공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 병역특례 자격이 주어진다.

이 군은 총 여덟 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렀으나 모조리 낙방했다. 공부를 못 해 특성화고에 온 이 군에게 자격증은 멀기만 한 존재다. 공부와 담 쌓은 '습관'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 이 군이 5년 뒤, 자신이 계획한 방향대로 가고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8월 도제학교를 운영 중인 특성화고를 방문, 학생들의 실습모습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도제학교, 결과는?

도제학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1월 스위스 베른의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뒤, 도입됐다. 독일·스위스의 중등단계 직업교육 방식인 도제식 교육훈련을 한국식으로 바꾼 게 도제학교다.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도제학교와 제휴를 맺는 기업이 영세하다는 게 문제다. 도제학교를 담당하는 전라북도 모 특성화고 교사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중견기업(50~300명)의 경우, 병역을 마치고 현장 경험을 가진 대졸 경력자를 선호한다"며 "그렇다 보니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이들 중견기업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 교사는 "반면, 정책적으로 스펙을 쌓아야 하는 대기업은 고졸을 채용하지만 이들은 공부 잘하는 마이스터고 출신을 주로 뽑는다"며 "결국, 남는 것은 인력 수급이 필요한 중소기업이기에 그들이 대부분 도제학교와 제휴를 맺는다"고 말했다.

자연히 도제학교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16년 하반기 서울시 도제학교 10곳, 16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이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설문조사 결과, 실습교육 내용과 사업체에서 교육훈련의 연관성이 없다는 응답이 43.8%(70명)에 달했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전공 관련 업무가 아닌 청소, 잡일 등 한 것으로 나왔다.

안전관리도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응답이 65.8%나 됐지만, 안전장비로는 목장갑, 작업복 등 단순 작업도구만을 지급한 경우가 다수였다. 자신이 산업재해를 당했거나 함께 일한 친구가 산재를 겪은 경우도 10%에 달했다.

도제담당 교사의 고민도 깊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학교가 직접 도제학교에 참여할 업체를 발굴하고 학생과 연결해줘야 한다. 또한, 이를 매년 평가해 예산에 반영하기에 학교별로 관련 실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도제담당 교사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 지난해 9월 8일 강원도 소재 한 공업고등학교 도제업무 담당교사가 학생을 받아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도제학교의 애초 취지인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는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된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은 갈피를 못 잡고 괴로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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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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