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대량해고, 그리고 우리 안의 '비겁'과 마주하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구조조정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부평의 어느 늙은 노동자 한 분이 천막으로 찾아왔습니다. 나 같이 늙은 노동자가 나가야 군산의 젊은 노동자들이 부평에 넘어올 수 있다면서, 오늘 사직서 쓰고 오는 길이라더군요. 힘내라면서 봉투를 주고 가셨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군산 살자고 늙은 노동자들 나가는 거 바라지 않습니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지난 2월 23일, 부평역 광장이었다. 한국GM지부의 김재홍 군산지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연설을 쏟아냈다.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지 꼭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이 연설 내용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주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 경제>는 오늘 감히, 논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희망퇴직 = 사회적 비용 회피 노력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항상 인력 구조조정의 1단계로 활용되는 것은 '희망퇴직’이다. 정리해고 이전에 ‘해고 회피 노력’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리해고로 직행할 경우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어 자본 역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자본은 희망퇴직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퇴직 위로금 몇 푼만 챙겨 스스로 걸어 나가도록 만든다. 정리해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로 간다"는 협박을 극대화 하면서 말이다.

노사 합의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구조조정 사업장에서는 그런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어느 사업장에서나 다양한 이유로 이직이나 퇴직을 준비하는 1~2%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조조정 사업장의 경우 자본가들은 이 정도 인력이 나가는 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당연히 노사 합의는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자본이 일방적으로 희망퇴직 시행을 강행한다. 노동조합은 인위적 구조조정에 동의할 수 없기에 일방적 희망퇴직 실시에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대중조직을 책임져야 할 지도부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자본의 희망퇴직 강행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평조합원들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우선 노조를 무시한 일방통행이므로 당연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구조조정을 온전히 막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회사가 정말 정리해고까지 강행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 결단을 하지 않으면 위로금도 못 받고 쫓겨나지는 않을까….

ⓒ연합뉴스

희망퇴직 과정에서 속삭이는 마음의 목소리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을 품게 된다. "만약 이번 희망퇴직에 많은 노동자들이 응한다면 정리해고 없이도 구조조정이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비슷하긴 하다. 자본은 인력 구조조정 목표를 정해놓는다. 이를테면 2009년 쌍용차의 경우 2646명이었다. 희망퇴직으로 1600여명이 나간 뒤에 정리해고 인원은 1000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맞다 하더라도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 하나 살자고 어떻게 동료들에게 나가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런 생각은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다른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조용히 지켜보기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 이직이나 퇴직을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던 1~2%의 노동자들은 흔쾌히 희망퇴직원을 작성한다.

회사는 이를 빌미로 현장에 엄청나게 부풀려진 소문을 낸다. 누구 누가 나갔다더라, 이직한다는데 조건이 좋다더라, 퇴직 1~2년 남았으면 지금 나가는 게 금전적으로도 훨씬 이익이다 … 이러면서 노동자들의 가슴과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다른 때 같으면 대화도 별로 안하는 관리자들이 집까지 찾아오기도 하고, 술도 먹자고 하며, 갑자기 스킨십이 잦아진다.

사실 대부분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희망퇴직을 고민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아니, 이게 비단 평조합원들만의 얘기일까? 난다 긴다 하는 활동가들이나 간부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번쯤은 희망퇴직을 고민해봤을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용기와 기개를 갉아먹는다.

희망퇴직 결과에 대한 상반된 반응

그렇다면 희망퇴직 결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올까? 예를 들어, 구조조정 목표치가 100%라고 했을 때 희망퇴직으로 60~70% 인원이 나간다면? 이론적으로는 정리해고를 해야 할 인원은 애초 100%에서 30~40%로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지금 한국GM이 겪고 있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희망퇴직 한 번으로 무려 2,500명의 노동력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를 비롯한 인위적 구조조정 숫자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느끼지 않을까? 아니다. GM은 이제 6000명 구조조정 설을 언론에 유포하며 불안과 공포를 더욱 조장한다.

반대로 희망퇴직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론적으로는 회사의 구조조정 목표치, 즉 정리해고를 해야 할 인원이 거의 줄지 않게 된다. 그럼 노동자들은 더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회사는 거의 모든 인원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달려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압도적 다수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지침에 따라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것이니 단결의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기 때문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전망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어깨 걸고 함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결의한 동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반응은 어떨까? 희망퇴직을 거의 하지 않으면 그냥 정리해고로 가면 되니 아무 상관없는 것일까? 쌍용차에서 1000명이 아니라 2646명을 정리해고 하는 상황을 상정해보면 된다. 1000명 정리해고를 강행하는 것조차 노동자들과 거대한 전쟁을, 그리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결국 쌍용차는 거대한 전쟁을 치러야 했고, 노동자들의 거대한 저항과 시민들의 연대가 결합되어 정권과 자본은 정리해고를 100% 강행하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해고자 복직을 놓고 쌍용차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이 인원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회사 입장은 난처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한국GM에서 지난 2월에 희망퇴직원을 제출한 이들 대부분이 지난주 근무까지를 마지막으로 3월 31일자 퇴사 처리되었다. 이른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에서, 정규직 노동자들도 퇴직 후엔 다시 전쟁터로 내몰린다. 얼마나 지옥같은, 불안한 삶이 펼쳐지겠는가? 벌써 2명의 희망퇴직자들이 퇴사하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도 미래의 불안함은 여전하다. 2500명이 희망퇴직으로 나갔지만 GM은 여전히 구조조정이 더 필요하단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희망퇴직·정리해고 절차가 더 필요하다는 둥, 노조가 더 양보하지 않으면 4월 20일에 부도 신청하겠다는 둥 협박의 강도를 더 높였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려 달라. 수치로, 명확한 근거로 말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얘기를 해주면 당장 희망퇴직 쓸 테니까 말이다."

수많은 동료들이 희망퇴직원을 작성했다. 매일같이 고민이다.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묻기를 반복하다가 내린 결론이란다. 어느 사무직 조합원의 얘기이다.

그렇다. 나가는 이들도, 남는 이들도,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가는 이도, 남는 이도, 기분은 정말 더럽다.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 바로 그들이다. 2500명을 절망퇴직의 길로 안내하고도 아직 부족하다며 추가 구조조정을 말하는 바로 당신들 말이다.

부평 2공장에서 생산 중인 캡티바의 수명이 올해로 마지막이란다. 그래서 또 1교대 전환을 운운하고 있다. 창원공장에서 생산 중인 스파크, 그중에서 유럽 수출물량은 내년 상반기가 마지막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중인데, 연말이 되면 이곳에서도 1교대 전환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군산공장에서도 똑같았다. 2014년 초에 주간조만 작업하고 야간조는 휴업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형태만 2교대지 사실상 1교대나 다름없었다. 당분간만 이렇게 가자고, 그렇게 본사에 우리 노력을 보여주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짭다운(생산량 축소)에 합의하고 비정규직을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내보내고 정상근무가 이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휴업이 늘어났다. 또다시 야간조만 휴업하는 사실상의 1교대가 시행되었고, 신차를 배정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요를 이기지 못해 1교대를 합의해 주었다. 또 비정규직이 내쫓겼다. 그 대가로 신차를 받았지만 1년 만에 공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 이런 일이 다른 공장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비정규직 우선해고가 벌어질 때에도

구조조정이 벌어질 때 정규직을 향해서는 희망퇴직이 1단계이지만, 사실 사업장 전체로 보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다. 비정규직을 향해 계약해지·업체폐업 등의 공격이 벌어질 때,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 역시 매우 복잡하다.

비정규직 공격의 다음 차례가 정규직이라는 점이 분명하기에 회사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나서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나만 다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찬가지로 내뱉기 힘든 마음을 품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나가면 그래도 정규직 고용은 탄탄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면 그게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어줄까? 정반대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훨씬 강한 고용불안 심리에 빠져든다. 비정규직 해고에 한 번 눈감기 시작하면, 자본은 그걸 빌미삼아 한 번 더 눈감으라고 요구한다. 눈감지 않으면 정규직에게 직접 공격을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쳐서 고용을 지켜낸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회사가 비정규직을 내보내는데 실패했으니 이제 무조건 정규직을 공격하겠구나’ 이러면서 움츠려들까?

이것 역시 정반대이다. 대다수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기에 고용불안은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비겁과 연대

▲ 김재홍 군산지회장. ⓒ오민규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걸출한 지도자부터 평범한 노동자들까지, 모두의 가슴 안에는 비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위기의 신호가 울리면 비겁은 가슴 속에서 이렇게 떠든다. 희망퇴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나가준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나가준다면~ 나만은 살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비겁한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고, 노동자들끼리 연대해야 한다고, 공자님 말씀을 반복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인사이드 경제>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강철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이가 아닌 이상, 저런 비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지 않은 노동자가 있을까? 그걸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대안이 되어야 한다.

이런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얘기할까? 아니다. 그런 마음을 그대만 품은 게 아니라 동료들 모두가 품고 있으니 두려워말자. 처음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제대로 얘기를 해보시라. 동료들이 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자네도 그랬는가, 나도 그랬는데…" 아마 모두가 똑같은 반응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비겁을 떨쳐내자고 얘기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똑같이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사실부터 먼저 솔직하게 말하자는 거다. 겁이 난다는 말을 동료들 앞에서 해버리면 오히려 겁이 사라진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경험해보자는 것.

2월 23일, 부평역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재홍 군산지회장의 연설에는 늙은 노동자 얘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연설에 포함된 이 얘기야말로 그날 듣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우리 안의 비겁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때, 비로소 뜨거운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1교대 전환하자고 할 때, 비정규직들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눈 질끈 감았습니다. 결국 비정규직들이 쫓겨났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나도 이렇게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한때 세계 자동차산업을 쥐락펴락 하던 GM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유럽과 남미의 각국 정부를 흔들며 협상을 벌여온 승부사들이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모두가 비겁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거기서 각자의 부족을 채워주는 연대가 시작된다고 <인사이드 경제>는 확신한다. GM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노동자들의 자각과 연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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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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