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미투' 사건에 관하여

[기고] 응답하라, 정봉주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프레시안>은 그의 기고문을 가감없이 싣습니다.편집자

<프레시안>과 정봉주 전 의원 사이에 난데없는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둘 중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아직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머리를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대강은 짐작할 게다. 맞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다. 문제는 어느 쪽도 제 주장을 확증할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사실을 놓고 양측이 팽팽히 맞설 때,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제 주장의 옳음을 확정적으로 입증하거나, 상대의 주장을 확정적으로 반박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아니,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할까?

내게 거짓말을 해 봐

이런 경우에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한 가지 절차가 있다. 즉,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의 간접적 증명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운 '귀류법'을 생각해 보라.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일단 그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하고, 그 경우 그 명제가 필연적으로 난센스로 전락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그 명제가 참임을, 더 정확히 말하면 참일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사실의 증명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불가능할 때, 한 번쯤 이 수학의 절차를 경험적 사실의 판단에 응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게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로서는 그 여성 피해자('안젤라')의 폭로가 진실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녀의 폭로가 일단 거짓이라고 가정하고, 그로부터 어떤 사태가 귀결되는지 보는 거다. 일단 그녀의 폭로가 거짓이라면, 먼저 왜 그녀가 거짓말을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의 설명은 여기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실을 말해도 험한 꼴을 당하는 판에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 꼴을 당해야 할 이유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폭로가 거짓이라는 가정을 계속 유지하려면, 없는 '이유'라도 억지로 만들어 내야 한다. 실제로 없는 이유를 억지로 지어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왕성한 문학적 상상력, 즉 음모론적 판타지다.

예를 들어 음모론 좋아하는 김어준의 '공작적 사고'에 따르면, 익명의 폭로여성은 보수진영에서 '미투' 운동을 틈타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위해 발굴하고 마련해 둔 폭로의 무기일 것이다. 비슷한 사고는 그 반대편에도 있다. 홍준표 대표의 '공학적 사고'에 따르면, 서지현 검사는 진보진영에서 보수진영의 씨를 말라기 위해 미리 발굴하여 준비해둔 폭로의 무기란다. 상상해 보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태스크포스가 비밀리에 상대진영의 정치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할 여성특공대들을 물색한다. 적절한 후보가 발견되면 비밀리에 접촉하여 금전적, 혹은 그 밖의 대가를 약속하며 폭로에 나서게 만든다. 백주 대낮에 이게 가능한 일이라 믿는가?

아무튼 정봉주와 김어준은 피해여성의 폭로를 각각 허위라고, 공작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왜 거짓 폭로를 했을까? 정봉주 전 의원이 창작해낸 이유는,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의 보도가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황당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대체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이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함으로써 얻을 게 뭐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시장선거를 좌초시키는 게 피해여성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란 딱 하나, 그녀가 실제로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뿐이다. 오직 그 경우에만 여성은 성추행 가해자로서 그의 공직출마를 막아야 할 구체적 동기를 갖게 된다.

결국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에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막아야 할 '내적' 동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동기는 '외적'인 것, 즉 밖에서 주어진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누군가가 그들에게 금전적, 혹은 그 밖의 대가를 주기로 약속하고 거짓폭로와 허위보도를 하도록 뒤에서 사주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폭로와 보도를 할 동기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주를 누가 했을까? 당연히 정봉주의 출마 여부에 이해관계가 걸린 이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용의자들은 곧 있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정봉주와 경쟁하게 될 후보들이리라. 이들 중에서 누가 그런 못된 짓을 꾸몄을까? 박원순 시장? 박영선 의원? 우원식 의원? 아니면 이미 사퇴한 민병두?

물론 그의 낙마를 원하는 세력이 당의 안이 아니라 밖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참 하기에 민망한 가정이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에서 정봉주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36.7%, 박영선 14.1%, 우상호 7.8%, 정봉주 7.7%. (조원씨앤아이 2월 13일) 그런데 야당에서 가장 유력한 여당후보(박원순)를 제쳐두고 하필 최하위 후보를 낙마시키려 공작을 꾸민다? 이게 얼마나 합리적 가정일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주자. 그럼 당장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야당의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불행히도 자유한국당에는 아직 서울시장 경선후보가 없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자가 정봉주를 낙마시키려 여성과 언론을 사주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야당에는 바른미래당도 있다. 하지만 거기도 아직 서울시장 후보가 없어, 안철수의 출마를 종용하는 상황으로 안다. 굳이 출마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안철수가 정봉주를 미리 견제하기 위해 여성과 언론에 거짓폭로를 하도록 사주했다? 이 가정도 우습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결국 이렇게 따져 보면 대한민국에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할" 정치적 주체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왜 그는 누군가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하려 한다는 망상에 빠졌을까? 정말로 그는 자신을 낙마시키려 공작을 꾸미는 세력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걸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 않는데, 말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정봉주의 말대로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이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폭로를 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봉주의 주장이 말이 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괴한 가정을 해야 한다. 즉, 피해여성이 7년 전에 먼 훗날 정봉주가 사면을 받고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을 미리 예상하여, 남자친구에게 있지도 않은 성추행 사실을 기록한 허위메일을 보내놓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있지도 않은 성추행 사실에 관한 허위고백을 뿌려놓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이 놀라운 예언의 은사를 가진 분은 오직 두 분, 허경영과 김어준뿐이다.)

이처럼 정봉주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가정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박영선 의원이, 혹은 우원식 의원이 정봉주를 견제하기 위해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에 거짓폭로와 허위보도를 하도록 사주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한국당 후보가 아직 뽑히지도 않은 민주당 후보를 견제하려 했다? 혹은 출마할 생각도 없는 안철수가 억지로 출마했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손을 써두었다? 나아가 피해여성이 무려 7년 전에, 정치권으로부터 이런 검은 거래의 제안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해, 친구와 남자친구에게 성추행의 조작된 증거를 미리 심어 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제정신 갖고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봉주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우리는 부조리에 빠지게 된다. 이 부조리를 피하는 길은 단 하나, 그의 주장을 허위로 간주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정봉주의 주장이 허위라고 가정할 경우 적어도 논리적으로 이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 정치인이 자신을 존경하는 한 여대생을 호텔 카페의 룸으로 불러내 키스를 하려 했다. 정치적 존경을 이성간 애정으로 착각하거나, 혹은 강제로 전환하려 드는 것.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 상처에 아파하던 여성이 확산하는 '미투'에 용기를 얻어 7년 만에 성추행 피해사실을 고백했다. 여기에 이상하거나 부조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고로 거짓말 하는 쪽은 정봉주 측이라 보는 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이렇게 큰 그림을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하지만 정봉주는 이 큰 그림을 흐려 버리려 하다. 사소한 디테일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사람들의 논리적 주의력을 흩트려놓는 것이다. 사실 이건 뭐 새로운 술수도 아니고, 옛날부터 길바닥 야바위꾼들이 즐겨 사용해 온 고전적 수법이다. 박보장기 판에서 야바위꾼들은 그 현란한 혀로 행인들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유도한다. 거기에 홀려 이 수, 저 수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그 게임 자체가 당신이 이길 수 없게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판 속의 말들의 움직임에 몰두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판 전체를 메타적 관점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과연 이 게임이 내가 이길 수 있게 디자인된 건가?

정봉주가 '내가 렉싱턴 호텔에서 키스를 하려 한 게 몇 시 몇 분이었는지 특정하라'고 바람을 잡을 때, 그 판에 따라 들어갈 필요는 없다. 왜? 성추행이 일어난 시간을 특정하지 못한다고 있었던 성추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남에게 분 단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정봉주 자신도 성추행이 있었다는 그 시간의 알리바이를 못 대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객관적 증거라야 달랑 2시 52분에 찍은 사진 한 장뿐. 그의 어머니가 입원실로 올라갔다는 오후 1시와 명진 스님과 같이 사진을 찍은 오후 2시 52분 사이라면, 병원에서 나와 여의도 들러 홍대까지 가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 두 사건 사이에는 거의 1시간 50분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지울까?

방법은 밑장 빼기다. 일단 그는 자신이 1시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병원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물론 증거는 없다. (민국파는 그가 병원에서 "점만 찍고" 나왔다고 증언한다.) 이로써 그는 몇십 분을 번다. 또 12월 23일은 금요일에 크리스마스 직전이라 길이 막혔단다. 이로써 다시 몇 십 분을 번다. 역시 증거는 없다. 주말에 차로 미어터지는 홍대도 그 시간엔 안 막힌다. 게다가 요즘 크리스마스가 어디 있고, 설마 이틀 전부터 막히겠는가. (민국파는 외려 그날 드라이버가 시간에 쫓겨 서둘러 운전을 했다고 증언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명진 스님을 만난 게 2시 30분경이라 주장한다. 역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사진에 찍힌 게 2시 52분이니 무려 20분을 번 셈. 그리고 하는 얘기가,

'고로 렉싱턴 호텔에 들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봉도사, 너무 거저 드시려 한다. 세 번의 밑장빼기를 무효로 한다면, 오후 1시와 오후 2시 52분 사이에 렉싱턴 호텔에 들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굳이 그가 제안하는 '초치기', '분치기'의 패싸움에 들어갈 필요 없다. 패싸움의 승부가 갈리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승부가 안 날 수도 있다. 상황을 그렇게 논리적 교착상태로 가져가는 게 정봉주의 전략이고, 그 전략은 (이 패싸움을 중계하는 재미에 빠진 대한민국의 머리 나쁜 기자들 덕분에)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귀퉁이의 패가 아니라 중앙의 대마. 그에게 큰 물음을 던지자.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게 자신의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공작이란다. 그렇다면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은 '왜' 그의 출마를 방해하려 하는가?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나 '동기'가 무엇인가? 진실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대답해야 한다.

'그들이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내 상상력의 한계일까? 아니면 그의 논리의 한계일까?

(이 글은 원래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지만, 하루가 넘도록 게재가 보류가 되더니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오마이뉴스>에서는 나의 양해를 구했고, 나는 <오마이뉴스>의 난처한 처지를 이해하여 내 글을 내리는 데에 동의해 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먼저 내 글을 내린 후 나의 동의를 물어왔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봉주 전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내게 증거를 보여 줘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철학에서는 '진리'의 정의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대응설'이다. 거기에 따르면 진리란 사실에 부합(대응)하는 주장이다. 둘째는 '정합설'이다. 즉, 진리는 주장을 이루는 요소들이 수미일관하고 논리 정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합의설'이다. 거기에 따르면 진리는 사회성원들 대다수에 의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합의설은 그리 신뢰할 만한 기준이 못 된다. 중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그게 어디 그때뿐이겠는가? 황우석이나 심형래 사건이 보여주듯이 지금도 아주 가끔은 사회성원 대다수가 믿는 게 허위일 수 있다.

반면, 두 번째 정합설은 꽤 신뢰할 만한 기준이다. 앞의 글에서는 귀류법을 이용해 안젤라(피해여성)의 주장과 정봉주의 주장 사이에 어느 쪽이 더 논리정연한지 살펴보았다. 결론은 정봉주의 주장이 옳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조리한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피해여성 안젤라, <프레시안>의 서어리 기자, 미권스 카페지기 민국파가 모여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공모를 했다.' 왜? 뭘 얻으려고? 혹은 '그 누군가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저지하러 세 사람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누가? 박원순이? 아니면 출마도 안 한 안철수가? 아니면 이제 겨우 출마한 이석연이?

물론 정합설도 그 위력에서 대응설을 당할 수는 없다. 즉 문제의 시간에 정봉주가 렉싱턴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앞에서 귀류법까지 동원해 내가 한 모든 얘기들은 그냥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 경우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그 황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즉, 안젤라와 서어리와 민국파가 (혹은 그들의 배후가) 정말로 그를 음해하기 위해 공모를 한 것이다. 이 경우 범행의 동기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히게 될 것이다. 아무튼 문제가 되는 시간에 그가 거기에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만 제시된다면, 나부터 나서서 무고한 이를 음해한 저 사악한 자들을 준엄히 꾸짖을 것이다. "떽, 서어리 기자! 감옥 가고 싶어?"

사실 정합설의 관점에서 보면 정봉주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기 짝이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일까? 정봉주 변호인단에서 새로이 '물증'을 내놨다. 어느 사진기자가 당일 정봉주 의원을 쫓아다니며 찍은 780장의 사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찍었다니 거의 '라이프로그'(life-log) 수준이다. 그 사진 몇 장만 공개하면 굳이 경찰이나 검찰이나 법정으로 갈 것 없이 진실게임은 바로 끝날 것이다. 정봉주 변호인단에서는 정봉주가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로 그 사진들을 경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로써 게임은 끝났다. 아니, 끝난 것으로 보인다.

정말 끝났나? 아니다. 아직 우리는 변호인단이 제출했다는 그 '증거'가 진짜 증거인지 모른다. 변호인단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검찰이나 법원에서 다 '증거'로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봉주 측에서 뭔가를 경찰에 제출하고, 그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증거라 '주장'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사실 정합설과 대응설의 결론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 정합설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을 믿기 전에 꼼꼼하고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그 주장은 날조 혹은 허풍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정봉주의 변호인단에서는 780장의 사진들을 검찰에 제출하며 언론에 딱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나꼼수 녹음을 끝내고 찍었다는 그 사진에는 '11시 54분'이라 찍힌 핸드폰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걸 보며 나는 정봉주 의원이 변호인단부터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 사진이었을까? 상대측에서 성추행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시간은, 그의 어머니가 병실로 올라갔다는 오후 1시에서 명진 스님과 같이 사진을 찍은 오후 2시 52분 사이다. 생각해 보라. 11시 54분에 나꼼수 녹음실에 있었다는 사실이 오후 1시와 오후 2시 52분 사이에 그가 렉싱턴 호텔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가? 그럴 리 없다. 그런데 왜 하고 많은 사진 중에서 딱 한 장을 고른 게 하필 그 놈일까. 대중을 기만하려 한 게 아니라면, 변호인으로서 무능한 것이다.

내가 정봉주의 변호인이라면 언론에 11시 54분이 아니라, 오후 1시부터 2시 52분 사이에 찍은 사진들을 제시하겠다.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찍었다니,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출발해 명진스님을 만난 합정동에 도착할 때까지 노정을 찍은 사진들도 있을 게다. 증명은 한두 장으로 충분하다. 뭐 하러 780장이나 필요한가? 주변인들의 진술도 충분히 받아놨다는데, 이 또한 불필요한 일이다. 주변사람들 번거롭게 할 게 뭐 있나? 그냥 1시부터 2시 52분 사이의 사진들에 당일 그 시간에 찍혔음을 증빙하는 기록만 첨부해 제시하면 될 일을. 그러면 모든 게 깔끔하게 끝난다. 그런데 왜 쓸데 없이 '사진이 무려 780점이나 있다'는 둥, '주변인들의 진술도 받아 놨다는 둥 블러핑을 하는 걸까?

입증한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정봉주는 벌써부터 자신의 알리바이가 입증됐다고 말하고 다닌다. 왜 그럴까? 심지어 자신에게 의혹을 제시하는 이들을 가리켜 '타진요' 같다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1시부터 2시 52분 사이에 자신이 렉싱턴 호텔에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도 계속 의혹을 제기한다면 그때 '타진요'라 욕해도 늦지 않는다. 그는 "무슨 근거를 제시해도 거기에 대해 반박을 낸다"고 투덜거리는데, 내가 아는 한 그는 정작 문제가 되는 그 시간의 행적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한 바 없다. 지난번 회견에서는 문제가 되는 시간이 지난 "3시와 5시" 사이의 알리바이를 제기하더니, 이번 회견에서는 문제가 되는 시간에 앞서 11시 54분의 알리바이를 내놓는다. 공교롭게 딱 그 시간만 피해간다. 왜 그럴까?

'정봉주법'을 주장하던 그가 <프레시안>을 고소한 것 역시 자가당착 혹은 자기부정으로 보인다. 언론의 보도로 피해를 입었을 때 취하는 절차가 있다. 즉, 보도가 허위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보내며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언론사에서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의뢰하고, 거기서도 조정이 안 될 경우 그때 검찰이나 법원으로 달려가면 된다. '증거'만 제시하면 <프레시안>에서 정정보도를 안 할 이유가 없다. 증거를 본 상태에서 허위보도를 고집한다면 법적으로 더 큰 처벌을 받으니까. 그런데 왜 그는 이런 절차들을 다 건너뛰고 바로 최후의 수단인 고소로 날아갔을까? 이제라도 그 780장의 사진을 공개하면 모든 일이 끝나는데, 왜 언론에 사안과 관계없는 뻥카 한 장만 달랑 내놓고 '증거'를 경찰에 갖다 주는가?

사실 정봉주가 고소해야 할 이들은 따로 있다. 정말로 그를 상대로 한 '미투'가 공작이라면, 최초에 거짓폭로를 한 안젤라와 허위증언을 한 민국파를 고소해야 한다. <프레시안>은 이들의 증언을 신뢰한 죄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에 대한 고소가 무혐의 혹은 불기소 처분되리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알 게다. 그러면서도 정작 단죄해야 할 두 사람, 단죄할 수 있는 두 사람은 고소하지 않았다. 왜? 미투 여성을 보호하려고? 그럼 민국파를 고소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가 제시하는 알리바이에 정작 결정적 시간만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작성한 고소장에는 공교롭게도 정작 고소당해 마땅한 이 두 사람의 이름은 빠져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점은 변호인단에서 잘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므로, 그 내용이 허위라도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처벌하지 않는다. 즉 언론사 고소 건에서는 굳이 보도의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진실의 확인을 꺼리는 쪽에게 부담이 적은 셈이다. 반면, 안젤라나 민국파에 대한 고소는 다르다. 그때는 검찰에서 카드를 까게 된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쪽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이들을 직접 고소하려면 그들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했다가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애먼 <프레시안>만 고소한 것은 변호의 관점에선 합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대중에게 (대응설적) 진리의 확인을 꺼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도 실제로는 진리의 확인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 '진실한' 주장은 외적으로 사실에 부합하며(대응설) 내적으로 수미일관하다는 특성이 있다(정합설). 따라서 정봉주 의원의 주장이 진실성을 인정받으려면, (1) 1시에서 2시 52분 사이에 렉싱턴 호텔이 아닌 곳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2) 안젤라와 서어리와 민국파가, 혹은 그들의 배후에 있는 그 누군가가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저지함으로써 획득할 이익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이루어지면, "여론도 결백을 확신하고 있다"고 억지로 바람 잡지 않아도 사회의 대다수 성원이 자연스레 그의 주장을 진실로 인정해줄 것이다(합의설). 그러나 정봉주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추기

나는 봉도사가 겉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냉철한 머리에 따뜻한 가슴, 험악한 상황도 웃음으로 마무리할 줄 아는 풍부한 유머 감각. 한 마디로 그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매우 매력적이다. 그에게 수십만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따라다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게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날, 그와 함께 한 마지막 녹화를 마치고,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축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의 홍보팀 카메라 앞에서 나는 정봉주 예비후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서울시 유권자들에게 그를 적극 추천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의 선거캠프에서 그 영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가 밉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사안에 관해서는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으려 하는 걸까? 그도 허투루 살아온 인생이 아닐 텐데, 감옥 생활까지 해가며 민주화를 위해 살아온 그 귀한 삶 전체를 판돈으로 내걸고 이 위험한 진실게임의 도박판을 벌이는 걸까?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고, 모든 이들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 그가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하나의 거짓말을 하게 되면, 결국 그걸 유지하기 위해 세계 전체를 날조해야 한다.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치명적인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그릇된 방식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가 이제라도 올바른 길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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