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반올림과 연대하던 미디어뻐꾹(필명) 활동가가 2018년 미국 내 전자산업 산업재해 피해자를 만났다. 반올림이 이들의 증언을 정리해 차례로 공개한다. 미국 반도체 공장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로미 마난(Romie Manan)의 구술을 네 번째 글로 싣는다.
필리핀의 노동운동 조직가
제 이름은 로미 마난(Romie Manan)입니다. 저는 1979년에 필리핀에서 이 나라로 왔어요. 필리핀에서 제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조금 말씀드리자면, 저는 필리핀에서 통신 산업의 노동운동 조직가로 일했어요. 1979년에 필리핀을 떠날 때까지 그 일을 했고, 같은 해에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일했죠.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다수, 정말 많은 수가 필리핀 사람들이었어요. 당시 저희 동료들에게 전자산업이라는 건 꽤 새로운 분야였어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는, 예를 들어 스톡턴(Stockton)에서 온 노동자들이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농장 노동자들이었는데, 그 지역을 떠나 산타클라라나 산호세 쪽, 그러니까 베이 지역으로 와서 전자산업에서 일했어요.
당시에는 전자산업이 호황이었고, 온갖 종류의 일자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죠. 물론 그때 임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시간당 2달러 85센트밖에 안 됐어요. 저도 그렇게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오퍼레이터였어요. 바이폴라(bipolar) 부서의 생산 오퍼레이터였죠. 저희는 그걸 웨이퍼라고 불렀어요. 그게 주된 생산품이었어요. 처음에는 이 자재들을 세척하고 닦는 일을 했어요. 어떻게 하냐면, 작업장에 싱크대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이 자재들을 화학물질에 담그는 거예요. 황산이나 불산 같은 물질들에요.
그다음에는 이 자재들을 세척한 뒤에 또 다른 공정으로 넘어가요. 여러 기계에 자재를 넣는 거죠. 한 예로 에피택셜(epitaxial) 장비가 있어요. 이 에피택셜 장비에서는 온갖 종류의 화학물질과 가스를 사용해요. 제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는 가스가 하나 있는데, 디클로로실란(dichlorosilane)과 아르신 가스(arsine gas)예요. 그 공정에서 사용하는 주요 가스가 이 두 가지였어요. 이런 것들은 위험해요. 정말 위험하죠.
불산으로 손가락을 다친 사고
불산(HF)을 다루다가 사고가 났어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아마 장갑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틈으로 불산이 새어 들어온 거죠.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어요.
사실 불산은 피부를 바로 녹이는 게 아니에요. 산에 데었다는 걸 느끼기까지 몇 시간이 걸려요. 그날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밤에 이미 침대에 누워서야 손가락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 전화했어요.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보안 책임자에게 이야기했죠. 산에 화상을 입었고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보안 책임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눈에 보이는 피 같은 게 있어야 우리가 조처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니까 (외부) 병원에 가야 한다고요.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저를 진료한 의사나 병원에서도 산에 의한 화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이곳 전자산업의 모든 것이 아마 굉장히 새로운 일이었을 테니까요. 병원에서도 산 화상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거죠.
교육이라고 해봐야 "눈에 화학물질이 튀면 15분 동안 씻으세요" 정도였어요. 당시 우리가 받았던 교육은 그런 것들이었어요. 아주 단순한 절차였고, 아주 단순한 단계만 알려줬죠.
화장실에서 우연히 본 전단
가장 큰 차이는 필리핀에는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었고, 저는 통신산업에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지역 노동조합의 간부 중 한 명이었어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노동조합 조직화 활동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화장실에서 우연히 전단지한 장을 본 것이었어요. 전단을 읽어보고 UE(United Electrical Workers) 조직위원회에 가입하게 됐죠. 사람들이 화장실에 그런 자료들을 갖다 놓았어요. 그래서 그 주에 데이비드 베이컨(David Bacon)에게 이 일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우리 공개적으로 합시다. 화장실에 전단만 놓고 가지 말고요"라고 제가 말했죠.
그때부터는 노동자들에게 직접 전단을 나눠줬어요. 노동자들이 차를 세우고 출입구로 들어올 때 바로 그곳에서요. 노동조합에서 만든 읽을거리를 나눠준 거죠.
저는 시간당 2달러 85센트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같은 해인 1979년에 조직위원회에 참가하면서 회사에 항의했어요. 노동자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그렇게 한 거죠. 그래서 생활비 인상분으로 시간당 35센트를 올려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몇 달 뒤에 또 35센트를 올려줬어요. 아마 이 문제를 좀 잠재우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시간당 2달러 85센트는 정말 낮은 임금이었거든요.
1992년에 내셔널 세미컨덕터가 모든 부서를 폐쇄했어요. 우리가 내셔널 세미컨덕터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때 회사가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텍사스로 옮겼어요.
회사에서 압박이 들어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 같은 필리핀 출신 조직가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죠. 제가 생각하기에 회사가 저를 그렇게 해고하고 싶어 하면서도 해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많은 필리핀 노동자가 저를 지지해 줬기 때문이에요. 데이비드와 함께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노동조합 가입서에 서명한 사람 중 상당수가 필리핀 사람들이었어요.
노동조합이 없어서 노동자들을 대표할 사람이 없었다는 게 늘 큰 문제였어요. 사람들은 회의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요. 부서마다 각 부서를 담당하는 인사 담당자가 따로 있었어요. 모든 게 부서별로 나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부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부서 안에서만 처리됐어요. 회의가 열렸을 때에야 비로소 상사의 폭언이나 부당한 대우, 노동조건, 작업장이 얼마나 안전한지 같은 문제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연대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제 건강은 아주 좋지 않아요. 샤르코-마리-투스병(Charcot-Marie-Tooth, CMT)이라고 하는 병이에요. 다발신경병증(polyneuropathy)인데, 말단, 그러니까 다리와 손의 힘이 아주 약해요. 어느 방향으로든 넘어질 수 있어서 지팡이를 사용해야 해요. 당뇨도 있고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회사인 내셔널 세미컨덕터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주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30년 전이든 40년 전이든 그때 일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에 노출됐잖아요. 그때 우리가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됐든, 그 결과를 느끼는 건 바로 지금이에요. 전자산업에서 일하고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다루며 일했던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거죠.
저는 필리핀에서 노동조직가로 일했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투쟁을 향한 저의 연대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노동자로서 반도체 산업의 이런 부당한 회사들과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해요.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면서 병들지 않고 자신의 몸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 아래 링크에서 영어 구술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sharps.or.kr/english/?bmode=view&idx=17318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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