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기자 A 씨는 6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자 지망생 시절이던 지난 2011년, 정 전 의원이 호텔로 불러내 키스를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A 씨가 정 전 의원을 처음 만난 때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 2011년 11월이었다. '나꼼수' 애청자였던 A 씨는 2011년 11월 1일, 친구와 함께 K 대학에서 열린 정 전 의원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난 후 A 씨와 친구는 정 전 의원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정 전 의원은 A 씨에게 "어느 대학에 다니냐"고 물었고, A 씨는 "S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자 정 전 의원은 "곧 S 대학에서도 강연을 한다. 그때 또 보자"며 명함을 건넸다. 정 전 의원은 명함 케이스를 들고 다니며 다른 학생들에게도 명함을 돌렸다. 그러면서 "나는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니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젊은층에게 인기있는 유명 정치인과 그의 팬 A 씨 사이의 '소통'은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됐다. A 씨는 "정치인 연락처를 처음 받아봤는데 정말로 답장을 하는 게 신기해서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A 씨에게 S 대학 강연 홍보를 부탁했고, 예고한 대로 얼마 후인 11월 14일 S 대학에서 강연이 열렸다.
"강연에서 처음 한 이야기가 '나는 몇십억 빚이 있는 부자다'였어요. 낙수효과의 부조리 등에 대해 얘기했던 것도 기억나요. 강연 내용에 공감했고, 그래서 더 '정치인 정봉주'를 지지하게 됐어요."
정 전 의원은 강연을 들은 학생들 수십여 명과 함께 S 대학 근처에서 뒤풀이를 했다. A 씨도 친구들과 뒤풀이에 참석했다. 자연스러운 뒤풀이 자리를 통해 A 씨와 A 씨 친구 서너 명은 정 전 의원과 친해졌다.
그날부터였다. 정 전 의원은 A 씨에게 수시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A 씨는 처음엔 큰 거부감이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호의로 느꼈다고 했다. A 씨는 "자기도 월간지 <말>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니 제 글을 봐주겠다며 이메일로 글을 보내라고 했다"고 했다.
호의는 점점 부담으로 변해갔다. "바쁘냐", "뭐 햐냐"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전화, 문자 메시지 내용은 점점 끈적이는 느낌으로 바뀌어갔다. A 씨는 정 전 의원이 항상 휴대전화 두 대를 들고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A 씨에겐 공식적으로 쓰는 휴대전화가 아닌 다른 한 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이 번호로 연락하라'고 했다. A 씨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정 전 의원으로부터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정 전 의원은 이번엔 A 씨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정 전 의원은 A 씨 친구 B 씨에게 밤에 전화했다. B 씨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문자를 보냈다. 'A는 요즘 뭐 하고 지내기에 연락이 안 되냐', 'A는 방송 일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코 수술만 하면 좋을 것 같다', 'A랑 친한 C도 예쁘고 좋은데 너무 세보여서 좀 그렇다', 'A가 가장 순해 보인다'는 식의 이야기도 했다. B 씨는 "당시 정 전 의원의 문자를 받고 '멘붕'이 와서 A에게 이런 연락이 왔다고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A 씨도, A 씨 친구들도 정 전 의원을 피하자 연락이 차츰 뜸해졌다. 그러다가 2011년 12월 22일, 정 전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 전 의원은 다시 A 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했다. '감옥 들어가기 전에 한 번만 얼굴을 보고 가고 싶다'고 했다(정 전 의원은 2011년 12월 26일 수감됐다). A 씨는 "망설였지만 동정심이 생겼다. 맞는 말을 했는데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해야 하는 그가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만나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정 전 의원은 A 씨에게 여의도 렉싱턴 호텔(현 켄싱턴 호텔) 1층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A 씨에 따르면, 날짜는 구속 수감되기 사흘 전인 12월 23일이었다. 예약자는 정 전 의원도 A 씨도 아닌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A 씨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만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호텔 카페 직원은 A 씨를 룸으로 안내했다. 그 자리에서 한 시간 쯤 앉아있자 정 전 의원이 들어왔다.
"헐레벌떡 들어와 앉아서는 '보고 싶었다', '남자친구는 있냐', '내가 너에게 코도 (성형수술) 해주고 다른 것들도 많이 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감옥에 들어가게 돼서 미안하다', '종종 연락하겠다' 등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저는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겠다'고 하고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어요."
A 씨가 일어나자, 정 전 의원도 따라 일어섰다.
"갑자기 제 쪽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자며 저를 안더니 갑자기 키스를 하려고 얼굴을 제 앞으로 들이밀었어요."
놀란 A 씨는 정 전 의원을 밀치고 룸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룸 밖에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정 전 의원이 뒤따라오지는 않았다.
"그 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택시 탈 돈은 없는 학생이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바로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A 씨는 TV에서 구속 전 아내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정 전 의원의 모습을 봤다. 신문, 인터넷 곳곳에는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정 전 의원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났다.
"저 사람들은 정봉주가 이런 이중적인 사람인지 알까, 힘없고 뭣 모르는 대학생을 상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성적으로 다가오는 그 뻔뻔함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의 연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 25일 만기 출소한 뒤에도 정 전 의원은 여전히 A 씨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해왔다. 그땐 A 씨도 A 씨의 친구들도 모두 기자가 된 상태였다.
정 전 의원은 '정치인 대 기자로서 해줄 이야기가 있다'며 만남을 요구했다. 정 전 의원은 A 씨에게 다른 친구와 함께 보기로 했다고 했다. 약속을 잡은 뒤 A 씨는 해당 친구에게 확인했지만, 그는 정 전 의원으로부터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정 전 의원에게 만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정 전 의원은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약속을 취소하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 이후로 A 씨는 그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했다.
"저한테 그렇게 더러운 짓을 했으면서 그 다음에도 연락하고 심지어 친구들한테까지 연락한 걸 보면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았나 봐요."
A 씨가 가슴 속에만 담아뒀던 7년 전 일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정 전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런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 일을 맡길 수 없잖아요.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요."
A 씨는 본인 외에 피해자들이 또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A 씨는 "주변 기자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봉주 전 의원이 대학 특강 다닐 때 어린 여대생들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다"며 "혹시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함께 용기를 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최근 일련의 미투 사건에서 2차 가해를 겪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A 씨는 "피해자는 왜 여지를 줬고, 왜 피하지 못했냐는 식의 반론이 나오는데, 왜 초점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맞춰지는지 안타깝다"며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가해자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겪은 일을 비롯해 많은 성추행, 성폭력 사건은 힘을 가진 이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면서 시작된다"며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의 나쁜 의도에 집중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변할 이유가 없다"며 "명예훼손 등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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