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잉크, 특허 기술만 빼먹고 '먹튀'하다

[작은책] 하이디스노조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이유

한때 2000여 명에 이르던 노동자들이 13년이 지난 지금 4명만 이 남은 회사가 있다. 극심한 경영난은커녕 2014년도 흑자만 약 850억 원이고, 2024년까지 5000억 원 수익이 예상되는 평판 패 널 디스플레이(LCD) 전문 기업, 하이디스테크놀로지(이하 하이디스)가 그렇다.

하이디스는 1989년 현대전자 LCD 사업본부로 출발, 2003년 중국 BOE로 매각되고 2006년 부도 처리됐다. 2008년 대만 이잉크 그룹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 1200여 명 만 남는다. 그런데 이잉크는 생산 부문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고 경영난을 이유로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 지금은 특허·설비 담당 직원 4명만 남았다.

하지만 수차례 반복된 회사의 퇴사 강압에도 이를 거절한 노동자 73명이 있다. 이들은 2015년 3월 31일 해고당한 날부터 지금까지 복직과 먹튀 기업 처벌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이들은 왜 퇴사를 거부하고 남아 있는지, 그리고 먹튀의 내막은 무엇인지 듣기 위해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이상목 지회장(45세)과 박희경 씨(32세)를 만났다. 조합원들은 국회가 나서서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 천막에서 90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하이디스 지회. ⓒ작은책(정인열)

"시무식한다고 해서 직원들하고 세미나실에 모여 있는데, 관리자가 울먹이면서 '공장 문 닫는다'는 거예요. 어리둥절했죠. 이게 무슨 말이야? 진짜야? 믿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2013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난 남아서 일해야지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박 씨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노조 임원이던 이 씨도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공장 닫는다고 하기 몇 달 전만 해도 대표이사가 직원들하고 직원 가족까지 불러서 디너 파티를 했어요. '그동안 고생했다', '앞으로 회사 잘될 거다', '걱정 말아라' 하면서 말이죠."

경영난을 이유로 공장 폐쇄를 발표한 회사는 이후 석 달간 세 차례의 희망퇴직 시행 공고를 냈고, 377명 노동자 중 대부분은 회사의 강압에 못 이겨 퇴사했지만 79명은 이를 거부하고 노사 교섭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한 제안을 했다.

"회사 구조 조정 비용이 360억 원이래요. 377명 노동자 2년 치 월급이니까, 우리가 4년 동안 임금 절반만 받고 버티겠다고 했어요. 순환 휴직도 제안하고. 그 전부터 회사 어렵다고 할 때마다 저희는 고통 분담했어요. 상여금 반납도 해 보고, 복지 삭감, 순환 휴직도 해 봤고요."

그렇다면 실제로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을까? 아니다. 이잉크 그룹이 인수할 당시인 2008년에는 1161억 원 적자로 출발하였지만, 점차 적자가 감소하면서 2014년에는 840억 원 흑자를 달성했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FFS(광시야각) 기술 특허 수익으로 이뤄낸 것이다.

FFS 원천 기술은 1998년 현대전자 LCD 사업본부 시절 개발됐는데, 화면의 컬러 정확도가 높고 넓은 시야각을 제공해 중소형 전자 기기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이 됐다. 2012년부터 거의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이 기술이 사용되면서 막대한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FFS를 포함해 현대가 보유한 LCD 관련 특허 기술은 4331건이었다. 그러나 2003년 중국 BOE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특허 기술도 소유했다. BOE는 곧바로 한국 엔지니어 150여 명을 데려가 중국에 LCD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했다. 2006년 BOE는 곧바로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했다. 특허 기술만 빼먹고 튄 '먹튀'가 발생한 것이다.(BOE는 이 기술을 보유한 후 지금은 대형 TFT-LCD 시장에서 업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대만 이잉크 그룹에 매각될 때 노동조합은 먹튀 재발을 막기 위해 81일 파업 후 '하이디스 소유의 고유 기술들을 다른 곳으로 매각하지 않을 것'을 회사와 합의한다. 하지만 대만 이잉크는 법인을 매각하지 않는 대신 샤프, 이노룩스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에 FFS를 제공하며 특허 기술료 수익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지회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해고를 강행했다.

그런데 이 특허 기술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지난 6월 16일 해고 무효 판결에서 법원은 판결문에 '근로자들의 오랜 생산 활동의 집약된 성과물'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26년 노동자들의 성과물을 대만 자본 이잉크가 훔쳐 간 셈이 된다. 게다가 생산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박 씨가 말했다.

"항상 최저임금에 걸렸어요. 입사 1년 차나 7, 8년 차나 비슷했어요. 입사 5∼8년 차는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으니까 임금 인상을 거의 안 해 줘요. 최저임금에 걸리는 사람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만 올라갔고요. 저희는 상여금 빼면 최저임금 수준이에요. 그 상여금도 회사 어렵다고 할 때마다 반납했으니…."

24시간 가동 공장이라 3조 3교대로 심야에도 주말에도 일했다. 특히 2013년 이후 2년이 가장 힘들었다.

"840명이 하던 일을 300명이서 하니까 죽겠는 거예요. 그런데 공장은 풀가동 됐고요. 너무 스트레스받고 힘들었어요."

ⓒ작은책(정인열)

2015년 1월 정리해고 발표 후 지회는 곧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해 5월 4일 전인수 대표는 당시 지회장이었던 배재형 씨와 이상목 씨를 따로 면담한 자리에서 노동절 휴무로 인한 '100억 원 상당 손해 배상 청구 등 민·형사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노동절은 근로기준법과 노사 합의서에도 보장된 유급 휴일이다.)

일주일 후 배재형 지회장은 '끝까지 잘 싸워서 이겨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설악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20년 지기 동료이자 노동조합 동지를 하루아침에 잃은 노동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지회장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고(故) 배재형 열사의 죽음이 회사의 무리한 구조 조정으로 발생했다'는 발언을 했고, 이것이 언론에 기사화되자 회사는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 5월 18일 이 지회장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밖에 2건의 손배 소송 금액까지 합하면 청구금액은 모두 26억7000만 원에 이른다. 이 지회장의 집에는 온갖 민·형사상 고소 고발로 인한 등기 서류가 쉴 새 없이 날아왔고, 이 지회장의 아내는 집에서 등기를 받는 게 일이 되었다. 아내 명의로 된 전세 보증금 가압류 결정문도 아내가 받았다.

"와이프가 '요즘은 등기가 안 오니까 불안하네, 뭐 큰 거 한 방 터트리려나?' 하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조만간 뭐 하나 날아올 거야' 했더니, '그럼 그렇지' 하더라고요."

조합원 평균 근속 연수 15년, 평균 나이는 39세. 공장에서 청춘을 보내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일했다. 그러나 해고 투쟁 3년, 일터가 사라지자 일상이 깨졌다.

"아이가 셋이에요. 고3, 중3, 초등학교 5학년. 아직 제 역할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아무것도 못 해 주고 있어요. 퇴직금 다 까먹고 빚도 졌죠.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깨진 가정만도 열아홉이에요."

이 지회장이 말했다. 박 씨도 남편을 주말에만 만나고 있다. 사내 커플인 박 씨와 남편은 처음 1년간을 함께 투쟁했다. 그러다가 생활고 때문에 박 씨의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두 달 전부터는 고향 대구로 내려가 보험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도 만만치 않아 생계는 여전히 어렵다. 그들 사이에는 초등학교 5학년 자녀가 있다.

"투쟁이 길어지고 생활이 힘드니까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죠. 남편하고 돈 문제로 싸우기도 하니까. 그런데 아 이 소원은 저와 남편이 하이 디스에서 다시 일하는 거래 요. 그때가 좋았다고. 그래서 약속했죠. 투쟁 끝나면 소고 기 실컷 먹자고."

▲ 하이디스 해고자 이상목 지회장과 박희경 씨. ⓒ작은책(정인열)

끝이 안 보이는 투쟁, '회사가 여기 하나뿐이냐는?' 물음에 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젊은 편에 속하는데도 이제는 어느 회사를 가든 정규직 일자리는 없더라고요. 저희는 10년 넘게 정규직 생활을 했잖아요. 투쟁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생활하는 것도 보고 처우도 보니, 저희 정규직한테는 당연했던 것들이 비정규직한테는 당연하지 않고 얻어 내야 하고 싸워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당연한 건데, '비정규직은 정말 아니구나' 생각했죠."

이 지회장은 투쟁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잘 나가던 회사를 대만에서 기술만 빼가고 우리 일자리 빼앗고 도망가려고 한다'고요. 그래서 투쟁을 그만두지 못하는 거라고."

외국 투자 자본의 기술 유출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 대처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작 최전선에서 발로 뛰는 것은 해고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그들이 하루빨리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당장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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