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오석준, 이숙연. 사법부의 대선 개입 논란에 조희대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대법관들이다. 세종호텔지부의 정리해고를 판결했기 때문이다. '800원 횡령 해고'를 판결한 오석준은 윤석열의 결혼식과 취임식까지 참석한 '윤석열 사람'이다.
세종호텔에는 윤석열이 장인이라 부른다고 알려진 비선실세 김충식이 있고,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양승태 사법부의 황태자였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세종호텔의 실세인 주명건의 사돈이다. 서울행정법원과 대구지검 부장판사를 지냈던 주명건의 아들 주대성 이사까지, 세종호텔은 수많은 권력과 얽혀 있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 대양학원의 수익사업체다. 교비 횡령 의혹으로 세종대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주명건 씨는 이사장에서 물러났다가 이명박에게 4대강 운하를 제안한 공로로 인수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더니 세종호텔 회장으로 돌아왔다. 사립학교법은 그렇다. 비리를 저지른 재단 인사가 언제든 또다시 학교로 되돌아오곤 한다.
주명건은 정규직 비율이 높은 세종호텔에 용역업체를 들이려 했으나 노동조합의 반대가 컸다.그러나 시기적절하게도 복수노조법이 시행되고 세종호텔에는 또 하나의 노조가 만들어졌다. 로비 점거를 통한 세종호텔지부의 첫 파업 후 업무에 복귀했을 때 팀장은 내게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같은 팀에서 같은 노조로 가야지, 다른 배를 타고 직장생활 제대로 하겠느냐"는 팀장의 협박이 불쾌해 "노동조합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면 노조위원장을 부르겠다”고 답했다. 덕분에 나는 20년 일한 교환실에서 쫓겨나 객실 청소업무에 강제 전환 배치됐다.
6년 동안 디스크와 족저근막염, 어깨 회전근개 파열을 안고 객실 청소 노동을 하던 중 코로나가 나를 구했다. 사측이 객실 청소를 용역회사에 넘긴 것이다.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하기도 하고 코로나 병동으로 호텔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세종호텔만은 호텔을 살리려고 애쓰지 않았다. 관광객 없음을 핑계로 객실청소팀과 시설팀에 용역업체를 넣고 식당이나 커피숍 등 식음료 업장을 폐지했다. 남는 정규직을 잉여 인력이라며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육아휴직자를 포함해 우리 조합원만!
업장을 폐지해 호텔 등급이 4성급에서 3성급으로 추락해도, 정리해고 1년 후부터 흑자 전환되었음에도 호텔은 정리해고한 조합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호텔은 은행 대출이 많다며 월급을 10년 넘게 동결시켰다. 우리노조보다 인원이 많아진 연합노조가 해마다 임금 동결에 합의해줬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노조는 1년에 30%씩 삭감할 수 있는 성과연봉제에도 합의했고 이에 월급이 반토막이 돼 회사를 떠나는 조합원도 있었다.
'세종호텔 탈출도 지능 순'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오갔다, 사측과 연합노조의 농간에도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억울한 바보들만 남은 셈이다.
억울함은 오래 계속됐다. 미래에 올 수 있는 경영상의 위기로도 정리해고할 수 있다는 과거의 판례는 세종호텔지부의 발목도 붙잡았다. 지방노동위원회가 세종호텔지부의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지난 3년의 천막농성과 법률투쟁으로는 복직이 불가능함을 세종호텔지부는 확인했을 뿐이다. 주명건에게 항의할수록 그의 얼굴도 못 본 채 예배방해죄로 고소당할 뿐이다.
지난해 세종호텔지부는 더 큰 사회적연대와 투쟁을 만들기 위해 고강도 투쟁을 논의했다. 나의 삭발과 고진수 지부장의 단식투쟁 논의를 할 무렵이었다. 회의는 길어지고 대화는 격해졌다. 특히 단식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대가 컸다. 사람이 매일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는 의견들이었다. 한 조합원이 다른 제안을 했다.
"지부장, 차라리 올라가!"
333개의 객실에 21명의 정규직과 용역회사가 운영하는 기이한 호텔. 야간 당직자가 1명이라 화재 등 사고에 대비할 수 없는 위험한 호텔. 프론트 직원이 체크인을 받으며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호텔. 한때 명동 최초의 5성급 호텔이었던 세종호텔의 현재 모습이다.
지난주 폭우 속 세종호텔 앞 지하차도 위에서 고진수 지부장이 김장 비닐을 덮은 지붕에 빗물이 스며들자 비를 맞으며 정비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이번 봄은 장마 같은 폭우가 너무 자주 온다. 5월임에도 유난히 차가운 아침저녁 날씨에 식사와 종합감기약이 올라간다. 땅에 있는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아프다는 표현도 잘 안 하는 고진수 지부장이라 더 걱정이다.
23일은 고진수 동지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100일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회사에 교섭공문을 보낸다. 사측은 여전히 만남조차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30년 가까이 장기근속한 각별한 애정으로 특별히 길에서 들은 '고객의 소리'를 호텔에 전하려 한다.
"꽤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관리를 너무 안 해."
"휴지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프론트 혼자라고 직접 가지러 내려오라고 합디다."
"코로나 지난지 언제인데 노동자들과 대화해야지."
"주차 어디로 가요? 안내는 없나요? 호텔 영업하는 거 맞아요?"
"벨맨 없어요? 짐 들어줄 사람?"
해고노동자들은 복직해 호텔에 오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다. 세종호텔의 단골들이 더 이상 당황하지 않게 정상영업을 시작되길 가장 바라는 것은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된 우리들이다.
세종호텔은 호텔경영학과가 있는 세종대재단이 노사 상생하여 함께 성장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그러니 다시 한번 외친다.
"세종호텔은 정리해고 철회하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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