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 우울 진단 테스트에 분노하다!

[작은책] '독박 육아'에 갇힌 여성을 '우울'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다니…

한때 나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 놓고는 각종 포털과 구글에서 '산후 우울'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검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화가 정수리까지 차올라서 핸드폰을 패대기친 적이 있다. 산후 우울을 설명한 글 아래 곁들여진 이미지가 나를 더 우울에 빠트렸다.

사진에서 여성은 넓고 깔끔한 거실의 매우 안락해 보이는 소파에 옆으로 살짝 기대 누워 있었다. 한쪽 팔을 길게 빼고 그 위에 머리를 살포시 얹었고, 온몸에 힘을 쭉 빼고 '퍼져 있었다'. 화장 곱게 하고 세상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 블라우스에 남색 펜슬스커트를 입고 있는 그녀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아~ 나 오늘 너무 우울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조차 없었다. 이미지만으로는 '팔자 좋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산후 우울을 설명하는 본(本) 글에서는 우울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임신과 출산, 처음 겪는 초창기 양육의 스트레스는 실로 심각하다고 남편과 가족의 적극적 도움을 요구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모든 글의 의미가 한방에 무너졌다. 사진이 나에게 쏘아붙이던 말들은 "팔자가 좋아 집에서 여유를 부리니 별 시답잖은 기분까지 맞춰 줬으면 좋겠지?"였다. 나는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산후 우울' 설명에 곁들여지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와 유사했다. '산후 우울'은 여유로운 와중에 찾아든 나쁜 감정, 시간 속에 퍼져 버린 여성에게 찾아든 감기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혹은 여성이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는데, 저 뒤로 아이가 방치된 이미지도 많다. 여성이 '의무'를 방기한 채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극단에 이르렀다는 해석을 전한다. 아니면 아이를 보고 행복해하는 엄마의 이미지도 있다. 이렇게 예쁜 아기가 있는데, 그 정도 희생을 참지 못하냐고 면박을 주는 것만 같았다.

간혹 남성들이 "집에서 살림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편하지 않으냐?"고 찔러보듯 물을 때가 있다. 아기 낮잠 잘 때 잠도 같이 자고, 애들은 보람을 주지 않느냐 덧붙이면서 말미에는 "나도 전업주부로 살아 봤으면…" 한다. 그 힘듦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이 말은 '편하다'라는 인상 위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산후 우울'은 평안한 집, 느긋한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의 배경 속에서 경험한다. "믹스커피 타 놓고 미지근하게 마신 게 도대체 며칠째인지 모르겠어", "너는 그나마 뜨거운 물 부어라도 보는구나. 나는 일주일 내내 가루 털어 넣은 컵만 안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 있는 걸 자기 전에 수거해 왔다"라는 두 여성의 대화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산후 우울'의 배경을 알 것이다. 신생아를 키우는 내내 아이 안고 볼일 봤다는 말 뒤에 아이 용품과 산적한 가사 일로 분주하고 너저분한, 그러나 결국 그것이 최선이었을 집안을 그려 낼 수 있는 사람들만 '산후 우울'을 안다. 남녀를 불문하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집안일이 바깥일보다야 편하지, 여유롭지'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거나 아이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할 수 있는 말이 한 가지밖에 없다. "미쳤구나." 이 말 뒤에 "그걸 못 참고"라는 말을 내뱉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인식이 얼마나 노골적인가 은밀한가의 차이만 있을지 모른다.

맞다. 나도 미쳤었다. 다만 사람들이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한 여성에게 이 말을 사용할 때와 내가 사용할 때 의미는 다르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인한 파괴적 결과를 비난하는 것일 테다. 나는 산후 여성의 상태를 표현할 방법으로 이 단어밖에 몰라서 쓴다.

ⓒpixabay.com

'산후 우울' 진단 테스트를 해 보기도 했다.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분노했다.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수면하기 힘들다.' 애가 2시간에 한 번씩 젖을 찾는데 당연하죠. 몸이 수유 패턴을 기억해서 자고 싶어도 잘 수도 없는데요?

'필요 이상으로 나 자신을 책망했다.' 애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 탓으로 해석되는데 어떻게 나를 책망하지 않을 수 있죠?

'일상적인 일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자신하는데, 내가 감당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대변도 애기 일정이나 기분 맞춰 누던 시기에 일상적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냐고 묻다니….

'비참한 기분입니다.' 아닐 수도 있나요?

'자해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네네네. 나라도 파괴해야지 싶던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기분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인지는 모르지요?

'산후 우울증' 테스트에 체크를 하면서 얻은 것은 격분뿐이었다. 보건소나 의료 기관들에서 제시하는 예방법들도 대부분 우스웠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세요.' 애가 규칙적이 되면요.

'술과 담배를 멀리하세요.' 산전, 산후 너무 오랫동안 금했더니 고문당하는 것 같던데요. 시원한 맥주 한 잔만 줘도 극단적인 생각은 안 해요.

'균형 있는 식단을 짜세요.' 짜면 누가 와서 차려 주나요?

'자주 걷고 자주 웃으세요.' 매일 아이와 산책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웃으면서 딸랑이 흔들기만 몇 시간인 줄 아시나요? 팔자 주름 생겼어요.

'실컷 우세요.' 웃으랬다 울랬다. 게다가 엉엉 우는 와중에도 세탁기 속 빨래가 생각나서 꺼내 널어 본 적 없죠?

전문의가 보기에는 심각한 수준의 산후 우울증이었으려나? 그럼 나도 자살하거나 아이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었을까? 없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그러나 페미니즘 물 좀 먹어 본 나로서는 당시 전혀 다른 진단과 예방법을 내리기로 했다. 이 우스운 테스트에 자문자답한 후, 원인 하나만큼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서 찾아오는 우울은 없다. 의사들이 말하듯이 남편을 소환했다.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라고 했으니. 다만 나는 그들의 조언대로 남편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진 않았다. 이해 따윈 필요 없다. 아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당장 집안일을 하라고 했다. 이 많은 일을 해야 이해 근처라도 오겠지 싶어서. 그가 해낸 일은 내가 하던 것의 5분의 1 정도였으나, 나는 드디어 살만했다.

산후 우울증도 병이라고, 호르몬의 변화이니 일시적으로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도 산후 우울증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무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산후 우울에 대한 인식들이 오로지 의학적 담론으로만 유통되는 것도 달갑지 않다. 병이라고 진단이 내려질 정도가 되어야만, 그리고 누군가 파괴적 결론을 내려야만, 여성들이 놓인 상황이나 그녀들에게 지워진 책무, 그녀들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일명 '독박 육아'의 시간에 갇힌 여성들의 상황을, '우울'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 내는 것, 탐탁지 않다. '우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섞여 있고 스쳐 지나갈까. 짜증, 분노, 비극적 예감, 좌절, 박탈, 배신, 두려움, 위협, 억울함, 불안, 무력감…. 정말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인이 확실하면, 정말이지 약을 먹으면 그만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그러나 호르몬의 영향 이외의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도 죄다 그 단어 안에서만 해석하고 풀어내고만 있다면 약을 처방받는다고 될까?

아이를 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여성, 그리고 아이의 숨을 멎게 한 여성의 소식이 실린 신문 기사 앞에서 수없이 질문을 던져 본다. 미리 우울증 약을 먹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까? 남편이 훨씬 더 많은 가사노동을 했다면 괜찮았을까? 둘 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현재로서 나는 그녀들의 결론 앞에 그저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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