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 매듭의 본뜻? '천천히 해결하자'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단칼에 병을 치료하는 묘약은 없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란 나라가 내란으로 혼란할 무렵,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되리란 신탁에 따라 농부였던 고르디우스가 왕으로 추대됩니다. 왕이 된 그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둡니다. 그리고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란 신탁을 함께 내리지요.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약관의 알렉산드로스가 나타나 단칼에 매듭을 잘라 버립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신탁에 따라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지요.

여기까지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졌습니다. 애를 써도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남들이 생각지 못한 대담한 방식으로 단번에 해결한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죠.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렸기 때문에 매듭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습니다. 정복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33살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알렉산드로스 이후 제국도 이 매듭처럼 3개로 나뉘었습니다.

뒷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살면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 단칼에 이를 끊어버리려는 욕구에 사로잡히기 쉽지만, 우리 삶에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도리어 그렇게 했다가 문제가 더 커지는 수도 있다고 하죠.

결국, 제대로 문제를 풀고 싶다면 매듭이 상하지 않도록 끈기 있게 매달려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푸는 수밖에 없다고 라디오는 말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풀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 골치 아픈 일을 단번에 처리해 주면 참 편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길 더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후폭풍으로부터도 한걸음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영화 속 영웅에 찬사를 보내거나, 현실의 대통령에게 그와 같은 능력을 기대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리려는 생각은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어 간단하게 병을 치료해 주길, 위대한 의사를 만나 단번에 병을 고칠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병이 중할수록 몸은 힘들고, 정신은 흔들리고, 감정은 불안정해져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기 쉽지요. 그런 기대가 현실 속에서 여러 번 부정당하거나 이용당해서 극도로 예민해진 환자조차 늘 일말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문제를 풀고 싶다면 결국 내 손으로 매듭 하나하나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치료법은 늘 최신과 강력함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쉬운데, 본뜻은 그것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는 것, 치료가 몸에 주는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중할수록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때론 치료가 난항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끈기 있게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야 합니다. 그러다 힘든 순간이 닥치면, 그때 필요한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면 됩니다. 다만 언제나 내가 주체가 되어 순리대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는 흐름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이 쌓인다면 조금 더 높은 확률로 나를 상하지 않고 병이란 매듭을 온전히 풀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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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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