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 쉬는 것인가'에 대한 답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목공방에 관한 이야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목공방이 새로 생겼습니다. 두어 해 전,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을 뒤로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 책장을 만들 요량으로 일터 근처 공방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긴 채 작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근 가게에 물으니, 빈 곳이 된 지 몇 달 되었다고 합니다. 걸려 있는 간판만 믿고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무심함과 망설임의 결과는 꽤 씁쓸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아내를 회원으로 등록시키고, 진료실 책상 만들기에 돌입했습니다.

주말에 공방을 찾아 책상의 크기와 모양에 대해 이야기한 뒤 설계를 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모서리를 다듬고 도미노핀을 끼울 홈을 팠습니다. 먼지도 나고 옷에 톱밥도 묻었지만, 나무가 오랜 시간을 두고 품고 있던 향이 흘러나온 공간은 어느 곳보다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서툴면서도 느릿하게 작업하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흘렀지요. 거칠게 다듬어진 목재를 한쪽에 세워 놓고 손으로 작업한 면을 만지니, 잠든 아이의 손을 만질 때 느꼈던 평온함이 스며들었습니다.

▲ <핸드메이드 라이프>(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지음, 피터 포브스 사진, 이한중 옮김, 돌배개 펴냄). ⓒ돌베개
"광폭 손도끼를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은 나에게 여러모로 소중한 것이었다. 먼저 이 일은 내내 신나는 모험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연장이 모양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남들이 만들어주던 것을 내가 직접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내 연장을 직접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그랬다. (중략) 이런 과정은 우리가 얼마나 여러 방면에서 모험을 즐길 수 있는지 실증해주고 있다. 서민적인 도구들에 대한 개념을 확립해 나가는 동안 디자인하는 즐거움, 손을 쓰는 즐거움, 마음을 쏟아 일하는 즐거움을 두루두루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핸드메이드 라이프>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지음, 피터 포브스 사진, 이한중 옮김, 돌베개 펴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몇 시간 동안 나무를 만지며 든 생각은 두 가지였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도구적 인간이 느꼈을 원초적 즐거움을 일깨워 준다는 것과 생존경쟁에서 떨어져 나와 손을 쓰며 일하는 시간이 번잡한 생각과 스트레스로 뜨거워진 뇌를 식혀주는 일종의 명상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머리와 심장에 과부하가 걸려있었던 저에게는 최고의 치유였던 셈이지요.

그런가 하면 제가 나무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저만치에서 다른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딸아이는 샌드페이퍼로 연신 작은 나무판을 문질렀습니다. 아빠가 공방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자기는 학교에서 쓸 책지지대를 만들겠다며 따라나선 참이었지요. 작업을 마친 뒤, 오늘 어땠느냐고 물으니, 만드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올 때는 아빠와 함께 어떻게 만들지 설계도를 제대로 그려서 오자고 했지요. 학교에 새로 들어가 조금은 긴장하고 상처받은 아이에게도 이날의 시간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가정에서는 자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아이들이 가정생활을 통해 배울 기회를 박탈해 버린다. 가족 간의 화목과 연대감을 통한 성장을 돈이나 학교 교육과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중략) 아이에게는 나중에 받을 수 있는 대학교육 보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경험이 더 중요한 것이다. 되도록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도록 하라. 건초도 베고 정원에 꽃나무도 심고 함께 여행도 준비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라."(위의 책 중)

나무판을 갖고 놀다 옆에 와서 질문도 하고 가만히 보기도 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지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못 해도 늘 함께 일했고, 내 일을 할 때도 부모님(가족)은 늘 옆에 함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 아이에게는 그런 시간이 참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사랑이 더 깊어집니다.

ⓒpixabay.com

소수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 우리는 많은 일과 감정에 끌린 채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의 삶이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흐름에서 벗어나 쉴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쉼은 계속되지 않고, 우리는 다시 그 격전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잘 쉬면 조금 더 잘 살아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잘 쉬는 것인가'란 질문에는 수많은 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답으로, 특히 감정과 생각으로 심장과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분들에게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껴볼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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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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