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정치를 창조하는가, 정치가 현실을 창조하는가.
이 오래된 질문을 문학적으로 바꿔보면 이런 질문이 된다. 정치는 현실을 재현(모방)하는 거울인가? 즉, 정치인은 현실의 반영인가, 아니면 정치인이 현실을 만들어가는가. 혁명의 시대에는 후자에 끌리지만, 고도의 관료 시스템이 확립된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에선 주로 전자에 동의하게 된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실패는 고도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을 간과한 데서 기인한다.
윤석열이 불법 계엄을 저지르자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아마 그는 이미 한물 간 정치평론가 출신 고성국 같은 극우 유튜버들의 조언을 충실히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은 12월6일 고성국에게 다섯 차례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같은 날 고성국은 유튜브 채널에 나와 한동훈이 정치인 체포 괴담에 넘어갔다고 맹비난하며 계엄 정당화의 '밑밥'을 깔았다. 그리고 12월 12일부터 윤석열의 언어가 달라진다.
윤석열은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 누구입니까?"라고 적반하장의 대중 선동에 나선다. 야당을 비난하며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윤석열 지지율'은 오르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일탈에 우왕좌왕하던 지지자들은 윤석열의 질 낮은 '선동'을 받아들였고 탄핵 반대, 계엄 지지 시위는 격화했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 단 한 번의 선거에서 이겼다는 알량한 운을 실력으로 착각했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바꾸는 대신,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관철해야겠다는 왜곡된 몽니를 최악의 방법을 이용해 실현하려 했다. 모든 건 착시였다. 윤석열이 탄핵된 후 극우 인사들의 '돈벌이 수단'이 된 집회 인파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윤석열은 선동을 통해 '대안적 현실'을 직접 구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당에서 쫓겨났고, 대선은 참패했다.
군중의 요구와 정치인의 욕망이 일치할 때 변혁이 일어난다. 다만 그 요구와 욕망은 타당해야 한다. 동시대의 상식을 반영해야 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망상으로 일군 욕망을 군중에 강요해 상황을 뒤집으려 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윤석열은 민주 사회에서 파시스트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
이준석은 '20대 남성'이 억압받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본다. 스스로 '20대 남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을 일종의 '해방자'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남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20대 남성 외에 다른 모든 연령층 유권자가 이준석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 20대 남성에서도 고작 37%(6월 3일 방송사3사 출구조사 기준)만이 이준석을 지지한다.
4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이준석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많게는 5.3%에서 적게는 1.0%다. 평균 득표율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준석은 정말 '새로운 미래'인가? 그렇다면 이준석이 특정 성별, 그리고 특정 연령층만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 속에 내재된 소외감에 따른 분노, 그리고 혐오 정서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설명이 더 합리적이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공통점은 자신이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확증편향에 빠져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를 영원히 속이거나, 모두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지만,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윤석열과 이준석이 구축한 세계 밖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쯤 되면 윤석열, 이준석은 자신이 만들어낸 망상적 세계관이 잘못됐고, 그에 근거한 선거 전략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상을 여전히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한다. 이쯤 되면 '확신범'들이다. 컬트적 추종자들을 세뇌해 자신의 성채를 쌓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은 정치라고 부를 수 없다. 사이비 교주의 생존 전략일 뿐이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이 다음 선거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윤석열이 구축한 세계, 이준석이 보여준 미래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닿는 일이 첫 번째다. 실패한 방식을 고수하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이 없다. 둘째,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윤석열의 사적 욕망에 굴종해 온 친윤계를 해체하고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 홍준표 말대로 병든 숲은 불태워야 한다. 아마도 내란 특검, 채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이 이 작업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용병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장외에서 캐스팅한 윤석열로 재미를 본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10여년간 국민의힘 밖에서 떠돌았던 극우 정치인 김문수를 선택했다. 거기에 평생 관료로 살아온 한덕수를 얹으려고 했다. 제대로 된 대선주자조차 키울 수 없는 땅, 그게 국민의힘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의힘은 이제 중도를 향해 영점을 옮겨야 한다. 거칠게 말하면, 영남을 버리고 '수도권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수도권 기반 정당으로 변모했고 경북 안동 출신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국민의힘은 호남 출신 대선 주자를 당선시킬 수 있는가?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정치란 정치인과 유권자의 합리적 상호작용이다. 정치인이 바뀌고 당이 바뀌면 민심은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지금 보수세력에 침투한 전광훈(윤석열)과 이준석은 '마약'과 같다. 마약은 당장 효과가 좋아보여도 장복하면 중독으로 몸을 망친다. 마약을 끊고 보수 정당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다가가야 한다.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닿지 못하면 지금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에서 말하고 있는 개혁과 혁신의 구호는 말짱 헛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