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영화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기고] 철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

한국철도의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한국철도가 갖고 있던 문제는 운영기관의 독점문제가 아니라 국토부의 철도 정책 독점이 문제였다. 국토교통부는 전 세계 모든 철도운영 국가가 직면해야 했던 철도적자 문제를 운영기관의 비효율 문제로 규정하고 철도공사와 그 임직원들을 부실의 주체로 몰아세웠다.

이 바탕에는 국토부의 공적체제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철도가 국영체제였을 때에는 공무원 마인드로는 절대로 경영혁신을 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인 국토부 정책담당자들은 혁신과 담쌓은 무사안일주의가 공무원 조직의 특성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대안은 시장경쟁이었다.

민간의 창의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하고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게 된다면 철도는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었다. 철도민영화는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여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민영화 로드맵을 밟던 철도청은 공적체제인 철도공사(코레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보와 자료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들은 언제든 민영화의 길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해외사례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현실 문제를 특정한 프레임으로 구성해 법을 만들고 제도화 했다. 그 결과 100년 독점체제의 낡은 한국철도를 경쟁체제 도입으로 회생시킨다는 명제가 만들어졌다.

재벌 친화적 보수 정권 시대에 철도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수술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방아쇠가 된 것은 평택-수서 간 신설되는 고속노선이 되었다. 한국철도의 고질적 문제인 수송용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던 60킬로미터 남짓의 신선을 철도민영화의 트로이 목마로 밀어 넣은 것이다. 용인시를 파탄 내고 의정부시마저 민자 철도의 수렁에 밀어 넣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국책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부의 청부해결사로 앞장섰다. 교통연구원의 이데올로그들은 수서고속철도 민영화는 한국철도가 도달할 유토피아로 그려냈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박근혜 정권은 취임 첫해 수서고속철도를 코레일로부터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민영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적자금이 투자되었지만 지분매각금지 법제화는 절대 안 된다는 국토부와 새누리당의 고집으로 이사회에서 정관만 바꾸면 언제든지 민간회사가 될 수 있는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현재 개통 6개월이 지난 SRT(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언론들은 6개월 만에 850만의 승객을 실어 나른 SRT가 코레일과의 경쟁체제를 안착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SRT가 기록한 850만의 승객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던 철도 인프라가 신설되면서 선로용량이 증가하고 이용객이 늘어난 것이다. SRT가 운영했든 코레일이 운영했든 확장된 고속철도망이 이룰 수 있는 성과이다.

경쟁체제가 아니라 통합운영구조에서는 수서역에서도 포항, 마산, 진주 까지 운행구간을 늘려 수서역 이용객들의 편의성도 늘어난다. 승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코레일이 보유한 20량 편성의 고속열차 투입이 가능해 더욱 많은 좌석을 공급할 수도 있었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구현된다면 더 많은 이로움이 창출된다. 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은 철도의 공공성을 확장시키는 지렛대다.

국토부나 교통연구원이 경쟁체제의 효과라며 선전하는 것들이 경쟁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라면 철도경쟁체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경쟁효과는 통합구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반면 경쟁체제의 부정적 영향은 한국철도의 기초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고속철도운영 수익으로 그나마 영업적자를 벗어났던 코레일은 또다시 만성적자의 늪으로 유도되고 있다.

경쟁에 내몰린 코레일은 비용절감이 화두가 되다 보니 인력감축이나 외주화의 손쉬운 길을 택하게 됐다.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 보듯 외주화는 만성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나쁜 일자리이며 인간 경시 풍조를 만연시킨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하던 광운대역의 철도공사 정규직 노동자는 작업 중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코레일은 가뜩이나 적자기업의 오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적자를 양산하는 지방선의 운행을 줄이려 시도했다. 열차운행이 줄면 당연히 이용 환경이 악화되고 이용자가 외면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수송분담률 상승 자체가 사회적 이익이 되는 철도가 지역에서부터 부실화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역과 역으로 이어지던 지역의 공동체와 문화, 역사가 소실되는 것이다. SRT에서 시작되는 나비효과의 결과이다.

15일 열린 국토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많은 의원들이 김현미 장관 후보자에게 SRT관련 서면질의를 했다. 안호영 의원은 수서고속철도 운영을 SRT에 맡긴 것이 공공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장관 후보자는 SRT 경쟁도입으로 인해 요금인하 등 긍정적인 측면과 철도공사 경영악화 등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행 경쟁체제가 공공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현미 후보자가 국토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면밀히 검토할 측면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정적인 측면이 현행 체제로 극복이 가능하다면 SRT 경쟁체제를 지속시키면 된다. 반대로 코레일로의 통합 구조가 부정적인 면을 상쇄하고 긍정적인 면을 유지 할 수 있다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구조가 부실을 영구화 시키는지 판단하면 된다. 현재의 구조를 설계하고 집행한 여러 이해집단의 방해와 견제가 만만치 않겠지만 사회적 유익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다면 철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이다.

다행인 것은 김현미 장관 후보자가 코레일과 SRT의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철도가 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다시 태어나는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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