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15년 12월 12일, '제21차 기후변화협정 당사국총회(COP21)'가 극적으로 마무리되고 파리기후변화협정이 96개국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인류의 화석 시대가 이날로 점진적 종언을 고했다’고 외신들은 썼다. 이 '신 기후체제'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2℃이내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 주요 국가 대부분이 참여하게 된다.
장면 2. 지난 29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의 베이징, 인도 뉴델리와 함께 서울은 '세계 주요도시 중 3대 오염 도시'로 꼽혔다"고 전하면서, 한국 정부가 오염의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려왔지만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했다는 따가운 지적을 내놓았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대기 오염이 유지되면 2060경에는 한국인 900만 명이 대기오염에 의해 사망할 수 있으며 이런 수치는 고소득 국가 중 최악이다. 신문은 미세먼지의 주범을 석탄발전소로 봤다. 그러나 산업자원부는 석탄발전소의 생산능력을 오히려 확대할 계획이다.
장면 3.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전원이 중단되면서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3월 12일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4월 12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 수준을 레벨 7로 격상했다. 레벨 7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든 0~7까지의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중 최고 위험단계로다. 아직도 그곳은 '죽음의 땅'으로 버려진 상태다.
기후변화 위기의 심화,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 원자력발전 밀집지역이자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5월 대선에서 차기 지도자들이 내놓을 에너지 정책은 어떨까. 정의당이 에너지 정책 대전환 필요성에 가장 먼저 호응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30일 국회에서 정의당,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 가스기술공사지부는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와 정책 협약도 맺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송유나 정책연구실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는 주목할만 하다.
제안된 정책 과제를 요약하면, 민간기업의 전력시장 진출 및 초과이윤을 제어하고, 원자력 및 석탄화력을 계획적으로 축소하고, 발전공기업을 민주적으로 재편하고,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에너지 전환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5개 발전공기업의 재편 등 에너지 정책 전환의 '로드맵'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론을 통해 제안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송 실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단기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인 전력·가스 민영화·시장화 정책의 전면 중단, 박근혜 정부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었던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 정책을 백지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5개 발전공기업과 한수원의 주식상장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석탄과 원전을 고수하여 수익성 경쟁을 강화하는 체계, 그 수익을 사유화하는 체계로 전락시킬 것이다. 나아가 전력산업의 안전성·안정성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가스산업의 직수입과 도시가스법 시행령 개정 등 편법을 동원한 시장화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5개 발전 공기업과 가스공사 간 공적 협력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이 주체가 되어 에너지 전환을 선도해나가야 하며 전환의 비용을 공기업 수익을 통해 마련하는, 비용의 사회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에너지 공기업들은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채 반석탄·탈핵의 '적대적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불통적·관료적 조직질서를 혁신하면서 시장에서가 아니라 공적으로 에너지 전환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송 실장은 구체적으로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전력거래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발전사들이 고수익을 누리도록 돼 있는 시장은 '민영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요 발전사들이 모두 공기업임을 감안하면, 공기업 발전소와 공기업 한전간 '거래시장'을 둘 이유는 크지 않다. 결국 발전사 민영화 등을 전제로 시장이 조성돼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송 실장은 "현재 한국의 전력거래 시장은 민자 발전에게 가장 유리하며, 석탄과 원자력 등 '전통적인' 기저발전이 고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민자 발전 회사들이 석탄화력에 진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과 재생 에너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간발전사들의 누리는 고수익을 제한하고, 민영화를 전제로 만들어진 전력거래시장은 근본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소의 신규 건설은 백지화해야 한다. 특히 6~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재벌들에게 허가된 민간 석탄화력 건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 실장은 "원자력과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을 2025년까지 50% 이하로 축소하는 발전량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두 전원의 비중은 70%를 상회한다. 반면에 신에너지를 제외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1%에 머물러 있다. 단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그러나 가능한 한 빠르게 전원의 비중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송 실장은 장기적으로 "2025년 이후에는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를 기저전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발전 공기업의 재편이다. 한수원과 5개 발전공기업이 나뉘어져 서로 경쟁하는 현재의 체제에서는 공공 주도의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 송 실장은 "현재의 발전공기업들을 지역과 에너지믹스를 고려하여 3개로 재편하고, 발전공기업의 최우선적 사업목표를 '에너지 전환'에 둬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고, 석탄과 원자력을 축소하는 과정이 한 공기업 단위 내에서도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송 실장은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 기구의 신설이 필요합니다. 기업과 관료들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시민들과 노동자, 지역주민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공평하게 참가해서 에너지 전환의 목표와 방법을 논의하고 조절하는 에너지 전환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호응해야 한다. 5월 대선 이후 차기 정부는 그간 추진해왔던 '에너지 민영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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