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보 이선애, 인권위에서 무슨 일 했나

[기고] "헌법재판관에 필요한 소양은 국가 권력에 대한 합리적 의심"

인권은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것이 바로 인권의 출발점이다. 인권이 국가 권력을 겨냥했던 이유는, 국가가 권력을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을 괴롭히고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천부인권, 자연권을 주장했다. 인권은 태어날 때부턴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라는 것이다. 국가가 생기기 전부터, 헌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권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인권의 뜻을 받들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천명하였다.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등등. 헌법은 일차적으로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명시하였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인권을 침해할 때 헌법재판소가 이를 잘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헌법에 들어온 것은 1987년이다. 87년 민중항쟁을 바탕으로 새로이 헌법을 개정했을 때 국가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헌법재판소 규정을 신설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될 때, 법률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이 헌법에 위반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에도 그 위법함을 선언할 수 있다. 국가 권력으로 하여금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게 하는 기관이 바로 헌법재판소다. 헌법재판소처럼 독립적인 기구로서 국가 권력을 통제할 기구를 둔 나라는 많지 않다. 당장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도 헌법재판소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이 자부할만한 제도다.

헌법재판소의 막중한 역할은 헌법재판관 9인이 지고 있다. 헌법연구관, 사무처 구성원 등을 감안하면 헌법재판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지만 오로지 헌법재판관 9인(공백이 생기면 그 수는 더 적어진다)이 헌법 심판을 담당한다.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헌법재판관들이 원내 정당을 해산시켰고,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법재판관의 소명은 이렇게 막중하다.

며칠 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선애 변호사를 지명했다. 양 대법원장의 결정으로 이 내정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연임된 지 불과 50일만의 일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선애 변호사를 지명한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 향상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 향상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 증진에 기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내정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에 있다.

안타깝게도 이 내정자의 국가인권위원 활동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동, 장애인, 여성 등의 차별 사안에서 이 내정자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결정들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인권침해자로 국가가 지목되었을 때에는 국가 권력을 편들었다.

예컨대 국가인권위원회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을 때, 이 내정자는 일부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수사의 필요성을 고려해 볼 때 수사기관은 법원의 영장 없이도 통신자료를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정자는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에 대한 서울구치소의 강제 속옷 탈의 검신이 문제된 사안에서도 증거가 없다며 서울구치소의 인권 침해 사실을 부인했다. 강제 속옷 탈의 때문에 당시 유흥희 분회장은 온 몸에 멍이 들었다.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먹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피해자의 말에 증거가 없다며 가해자를 편들었다. CCTV가 없는 탈의실에서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은 외면하였다. 수사기관, 교도소. 공교롭게도 이 내정자가 편들었던 국가 권력은, 인권 침해의 논란이 자주 발생하는 조직이다. 이 내정자의 이러한 태도는 국가 권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직책보다도 헌법재판관에게 필요한 소양은 국가 권력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다. 헌법재판관이라면,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국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도 합리적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 권력이 정당하고 선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후임 역시도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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