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최순실, 카메라 셔터 소리 끝나자 '귓속말' 시작

첫 공판서 나란히 선 '국정 농단 3인방'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보름 만에 다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최순실 씨는 여전히 '오리발'이었다.

"억울한 부분이 많다. (재판부가) 밝혀주길 바란다."

이날 법정에서 그가 밝힌 유일한 메시지였다.

최순실 '부인', 안종범 '부인', 정호성 '조건부 인정'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최순실 씨-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 대한 첫 번째 공판기일이 열렸다.

'국정 농단'의 주역 3인방이 처음으로 나란히 법정에 입장했다. 지난달 19일 첫 공판 준비기일에는 최 씨만 출석했다.

최 씨는 옅은 옥색, 안 전 수석은 풀색, 정 전 비서관은 하늘색 수의를 각각 입었다. 비교적 덤덤한 표정의 두 사람과 달리, 최 씨는 피고인석으로 걸어오는 내내 입을 가렸다.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책상 아래로 푹 수그린 채로 있었다. 사진 기자들이 최 씨를 향해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고개 숙인 채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최순실 씨. ⓒ사진공동취재단

이윽고 재판장이 사진 기자들에게 퇴정을 알리자, 최 씨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변론을 맡은 이경재 변호사와 귓속말을 나눴다.

최 씨는 지난번 준비기일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이날 K스포츠-미르재단 설립 과정 모금 의혹, 증거 인멸 교사 등 11가지 혐의에 대해 40여 분간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했다. 재판장이 이에 대한 인정 여부를 묻자 이 변호사는 "피고인은 대통령, 안 전 수석과 공모한 일이 없다"며 "16개 대기업에 대한 집단 출연금 모금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 재단(K스포츠-미르재단)으로부터 금전 등 어떠한 이익도 취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씨는) 자신의 처지는 고사하고 피고인의 딸마저 2017년 벽두부터 덴마크에서 구금돼 어떤 운명 처할지 모르는 험난한 운명에 놓였다"며 "(이를) 감수하고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를 바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최 씨 또한 "억울한 부분이 많다"며 재판부에 사실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마이크를 대고 말했지만 청중석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공동취재단

안 전 수석 역시 박 대통령과의 공모 혐의를 부인했다. 홍용건 변호사는 "전부 부인한다"며 안 씨가 한 행위는 모두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취지로 변론했다.

홍 변호사는 "문화 체육 활성화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었고, 대통령이 말할 때 그 연장선에서 이해했다"며 "그래서 피고인은 전경련 이승철에게도 대략적인 사업 규모만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씨를 겨냥하듯 "사적 이득을 취하기로 한 사람과는 법적 평가에서 명백히 구별돼야 한다"고 말하며 '공적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강조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사진공동취재단

정 전 비서관은 지난 번 준비기일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나 그 전에 '최순실 태블릿PC'의 진위가 확인되어야 한다는 '조건부 인정' 기조를 유지했다. 정 씨 측 차기환 변호사는 이날도 재판부에 태블릿PC에 대한 감정을 신청하며, '최순실 태블릿PC'를 입수했다고 보도한 JTBC 기자 2명을 증인석에 세울 것을 요청했다.

차 변호사는 아울러 특검팀이 정 전 비서관을 지난 3일 압수수색한 데 대해 항의했다. 그는 당시 정 씨가 변론 내용 등을 정리한 메모를 압수당했다며 "변론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에 압수된 정호성) 메모지를 확인한 뒤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에 검찰 측은 "정호성에 대한 입장은 변호인과의 접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최순실 씨(오른쪽)와 이경재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국격 생각해서 공소장에는 최소한만 기재"

이날 공판에서 이경재 변호사는 최 씨에 대한 공소 사실 등을 두고 검찰 측과 수시로 부딪혔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 영장 실질 심사에서는 재단 설립과 모금에 대통령 제외되고 피고인과 안 전 수석 둘이 공모한 것으로 돼 있다"며 "그런데 공소 사실에서 검찰은 피고인과 안 전 수석 간의 공모가 구성이 안 되자, 대통령을 공모의 중재자로 설정했다"고 했다.

이어 "재단을 만든 목적도 영장 실질 심사에서는 사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라고 했으나 공소장에는 공적 목적을 추진하는 의도로 돼있다. 상호 모순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적 이익 추구에 대한 입증 자료가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한숨을 내쉬며 "사적 이익 부분이 빠졌다고 하는데, (이 변호사가) 이 사건 수사 기록이 방대해 검토를 못 한 것 같다"며 "최순실 자신이 운영하는 더블루케이나 플레이그라운드, 장시호가 운영하는 더스포츠엠 등에 대해 속된 말로 어떻게 빼먹으려 했는지가 다 자세히 나와 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공소장을 기재할 때 국격을 생각했다. 나라의 격을 생각해 최소한만 기재했다"며 "'대통령 공모' 부분이 끼워맞춘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대통령이 공모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증거 조사를 위해 검찰이 가져온 서류는 1만 쪽에 달했다. 검사는 "법정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언론 보도를 증거 목록에 추가할지를 두고서도 양측은 설전을 벌였다. 검찰이 증거 조사 초반부 TV조선 기사를 증거로 제시하자, 이 변호사는 "언론 기사출력물은 증거로 동의한 적 없다"며 "증거 목록에 끼워 넣느냐"고 했다. 이에 재판장은 "동의한 걸로 명시돼있다"고 확인했다.

검사는 "이제 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이냐"며 격분하자, 이 변호사는 "법정에서 '뚱딴지같다'는 식의 비속어를 안 썼으면 좋겠다"며 증거 목록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증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증거 목록을 변경할 수 있는 방침 탓에, 결국 언론 보도는 증거 목록에서 빠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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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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