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시대' 끝나면 '북한 오보' 사라질까?

[강주원의 '국경 읽기'] 제재로 북한 식당 폐업? 거짓말!

2016년 한국 사회가 그린 남북 관계의 자화상과 상상화


2016년 달력도 한 장 남았다. 한국 사회는 2016년 어떤 그림 달력에 둘러싸여 살아왔을까? 특히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은 지난 11장의 달력에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새해 벽두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 사회는 대북 제재로 달력의 첫 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개성공단용 초코파이는 일반 판매용보다 3g 가벼웠다. (☞관련 기사 : 갈 곳 잃은 개성공단 초코파이…산처럼 쌓인 재고) 그렇지만 십 년 넘게 한국의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모습은 남북 만남의 상징적인 그림이었다. 또한 이 공간에서의 통일과 관련된 만남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한국 정부는 2월의 달력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소재로 회화를 그렸다. 북한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들은 "대북 제재"의 명분에 동참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밑그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번 제재는 2010년 5·24 조치와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비해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 이유는 제재가 포괄적일 뿐 아니라 중국이 동참할 확률도 커졌기 때문이다. (…) 만약 무역으로 떼돈을 벌던 권력층과 시장 활동을 통해 겨우 살아가던 주민들이 제재로 인해 이 기회를 상실하면 불만이 비등할 것이다."(<중앙일보> 2016년 3월 10일자)

위의 신문 사설에서 김병연(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은 "지금은 가야 하는 이 길(제재와 압박)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로 마무리한다. 이 문구에 말문이 막히고 어떤 우문현답을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대북 제재 효과"를 강조한 상상화만으로 가득한 갤러리들이 한국 사회에 1년 내내 성황이었다.

도대체 "북한 붕괴론" 그림은 누가 무엇을 위해 기획했을까? 한국 사회의 누구를 위한 작품이었고, 누구를 위해서 그린 것일까? 반대로 대북 제재를 반대하는 한쪽에서는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 만남을 미래로만 상정하는 작품에 의미 부여를 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통일 미래"를 논하는 학술대회와 강연들의 개최 날짜들은 봄·여름·가을 달력에 계속 표시되었다.

▲네 집단(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 거리에서 장기를 두고 구경도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미래 혹은 상상속의 통일 풍경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현실에 바탕을 둔 그림으로 바라볼까? ⓒ강주원

2016년 남북은 여전히 만나고 있다

3월에 접어들면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해외에 산재한 북한식당 출입 자제를 한국 국민들에게 권고했다. 연이어 매월 단둥의 "북한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촛불 집회가 광화문과 전국을 밝히는 11월에도 "제재 여파로 中 단둥 대표적 북한 식당 폐업"(2016년 11월 1일자)이라는 기사가 신문 혹은 방송으로 보도됐다.

문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에 있다. 단둥의 북한 식당들은 대북 제재 때문에 폐업한 곳이 없다. 그렇다면 2016년뿐만 아니라 2010년 5.24 조치 이후, 한국 사회에는 남북 관계 혹은 만남과 관련되어 "상상화"와 "통일 미래 이야기"만이 가득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나는 한 장의 그림을 컴퓨터에 그려보았다. 소재는 "2016년 여름, 단둥의 조선족 거리에서 북한 사람과 조선족이 장기를 두고 있고 북한 화교와 한국 사람이 구경"을 하는 모습이다. 이 풍경화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를 두고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림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은 상상과 미래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 내가 2016년 8월 단둥에서 촬영한 사진을 밑그림으로 활용하였다.(이 때의 현지조사 내용들은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눌민출판사 펴냄 2016년) 참고)

5.24 조치 이후에도 중국 단둥에서는 한국어를 공유하는 네 집단의 사람들이 장기를 두는 이웃사촌으로 지내면서, 삼국(중국, 북한, 한국)을 연결하는 경제 교류를 현재진행형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공간이 단둥이다.


▲ 2016년 한 여름, 단둥의 조선족거리에서는 조선족과 북한사람이 장기를 두고 네 집단의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통일 이후엔 이런 장면이 쉽게 연출될 것이다. 단둥에서는 이미 현실 그 자체로 벌어지고 있다. 단둥은 그런 곳이다(2016년).ⓒ강주원

국경의 개념이 없던 압록강변의 삶

1997년 단둥을 포함한 북·중 국경 지역의 생활 문화를 연구했던 인류학자 김광억(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은 압록강변의 문화를 "(단절의) 국경 개념이 없이 다녔던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민(조선족)의 대부분은 원래 관전현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관전은 평북 삭주에서 바로 압록강 건너 있는 곳이다. 삭주는 수풍댐이 있으며 압록강 반대편에는 랍고초라는 마을이 있어서 일찍부터 국경 개념이 없이 다녔던 곳이라 한다."(<중국 요녕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국립민속박물관 펴냄 1997))

비록 압록강 너머이지만 북한의 삭주를 바라볼 수 있는 중국 지역은 단둥시 내에서 차로 달려 약 한 시간 넘게 걸린다. 2016년 11월 11일 나는 그곳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유람선에 홀로 몸을 실었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변화가 눈으로 확인되는 삭주 지역을 카메라에 담기에 분주했던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단둥의 대북 사업가인 조선족 지인이 한족인 부인과 함께 서 있었고 부부 주변에는 그들과 함께 온 배지를 단 북한의 남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그와 악수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의상 그들 모임을 카메라에 담지 않고 나의 눈과 카메라는 삭주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귀는 그들의 대화에 가 있었다.

유람선 위에서 한국 사람인 나는 갈 수 없는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단둥 사람들은 평양 출장 경험을 말하면서, 평양이 고향인 북한 무역일꾼들은 중국 사람들과 새롭게 모색하는 북·중 사업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고향 산천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는 평양발 국제열차를 타고 단둥에 5시에 도착할 예정인 다른 북한 무역일꾼들도 합류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남녀 모두 찜질방에 가자고 말을 했다. 20여 년 전 인류학자의 눈으로 기록한 단절이 아닌 교류가 녹아 흐르는 압록강의 풍경이 2016년에도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국경의 개념이 없이 다녔던 곳, 북한 삭주와 수풍댐 주변의 압록강변(2016년).ⓒ강주원
▲ 압록강 하구 단교 주변의 유람선 코스(2016년).ⓒ강주원

2016년 11월 광화문 촛불집회와 단둥 풍경화 사이에서

다음 날 아침 8시, 나는 압록강변을 따라 압록강 단교까지 걸어가면서 단둥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일정을 잡았다. 10년째 반복되는 현지조사 과정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압록강과 휴전선을 넘어 이날(12일) 밤 예정되어있던 광화문 촛불 집회에 가 있었다. 한국 뉴스와 다른 일상의 모습을 보이는 북한 식당들의 아침 풍경은 나의 마음을 더 착잡하게 만들었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 단둥에 있는 북한 식당 가운데 폐업하는 곳이 속출한다면서, 특히 북한이 보이는 압록강변의 송도원과 옥류관마저 매출 감소를 못 이겨 최근 폐업했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11월 1일자 <와이티엔>)

단둥에서 1000여 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 식당 앞에서는 여러 명의 북한 여종업원들이 근무 기간이 끝나 귀국하는 동료의 대형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식당에서는 옆 중국 식당에서 울리는 "아아∼, 깊어만 가는 서울의 밤이여"라는 한국 가요를 들으면서 유리창을 청소하고 있었고, 조금 걷다가 마주친 북한 식당 앞에서는 택시에서 내려 2층으로 북한 여종업원들이 총총히 걸어가고 있었다. 참 이 식당은 폐업했다고 한국 매체가 4월에 언급한 식당이다.


▲ 2016년 해외의 북한식당은 대북제재 효과를 증명하는 소재로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최소한 단둥의 경우 “대북제재 여파로 북한 식당 폐업”은 오보이다. 물론 폐업한 북한식당은 있다. 이를 두고 단둥사람들은 대북제재의 여파로 말하지 않는다(2016년). ⓒ강주원

마지막으로 발걸음이 멈춘 북한 식당은 "송도원"이다. 한국 언론들이 불과 10일 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내놓은 뒤 한국 정부가 관광객들에게 북한 식당 이용 자제령을 내리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설명하면서 폐업했다고 언급한 바로 그 식당이다. 하지만 이 식당도 영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최순실 시대가 끝나면 이런 오보도 멈출까!"이다.

하루 일정을 소화한 뒤, 단둥의 지인들과 나는 최근 북한 사람들이 부쩍 애용한다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옆 테이블에서는 북한 화교와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메뉴인 철판 두부를 먹고 있었고 대화 내용의 소재도 너무나 똑같았다. 북한 화교가 묻고 한국의 상황을 북한 사람이 알려주는 모양새였다.

"(북한 화교 왈) 최순실은…! 광화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북한 사람 왈) 광화문에 100만 명이 모였다네!"

그날 늦은 밤 나는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국 사회의 어떤 이들은 대북 제재와 압박이 가득한 상상의 길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2016년 그림 달력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힌 사람들 한명, 한명은 2017년 달력에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림을 하나둘 채우고 감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될까?

"압록강의 물결은 흐르고 흐르다 황해에서 대동강과 한강에서 흘러나온 물과 섞인다. 유구한 세월 동안 그런 흐름을 멈춘 적이 없다.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압록강을 보면 남북이 더불어 살아오며 일군 교류와 평화의 강줄기가 보인다. 한국 사회의 '희망적 사고'와 달리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눌민 출판사 펴냄 2016) 중에서)


▲ 단둥에서는 매년 증가하는 북한여성무역일꾼들을 볼 수 있다(2016년). ⓒ강주원
▲ 2016년 한국의 대북제재 그림 달력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북·중 교류의 상징인 중조우의교 바로 옆에 한국 삼성 핸드폰 광고도 있다(2016년). ⓒ강주원
▲ 압록강은 새들만이 넘나들 수 있는 장벽의 쳐진 국경이 아니다(2016년). ⓒ강주원

(이 글의 일부는 (사)어린이어깨동무의 <피스레터> 12월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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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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