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외 노동자 vs. 파독 광부·간호사, 똑같다!"

[강주원의 '국경 읽기'] 북한 해외 노동자의 의미

파독 독일 광부와 북한 해외 노동자

영화 <국제시장>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다루었다. 1963~1977년까지 독일에 간 광부는 7932명, 간호사는 1만226명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두 분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그의 표현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이 압축되어있다. 역사책 혹은 방송을 통해서 그들을 배우고 접한 나 역시 동의하는 내용이다.

홍 지사는 "더 일찍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며 "두 분이야말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이국만리 낯선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생명을 담보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이어 "파독 광부·간호사분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긴 채, 고국으로 송금한 외화가 있었기에 포항제철을 세우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문화일보> 2015년 2월 11일)

<국제시장>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또 다른 존재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 해외 노동자'이다.

중동, 러시아, 몽골, 터키, 동남아, 아프리카에 진출한 북한 노동자의 규모가 알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 전체가 아닌 중국 단둥에만 2015년 현재 연인원 약 2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다. 약 15년 동안 독일에 간 광부와 간호사의 규모와 비슷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주요 시각은 어떤 모습일까?

"북한 해외 노동자 노예 노동 개선 국제 사회 나서야", "북한 해외 노동자 노예 생활 신음", "북한 해외 노동자 파견, 정권의 주요 외화 획득 수단", "북 해외 노동자 6만여 명 노예처럼 일해", "유엔, 해외 파견 북 노예 노동자 실태 조사 방침"

최근 기사들의 제목을 들여다보면, 한국 언론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노예 노동"이라는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파병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을 북한 해외 노동자와 단순하게 비교 할 수 없고 맥락이 조금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존재와 의미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지하 갱도에서 3년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64년 12월 첫 유럽 방문에 나선 박 대통령이 루르 탄광을 방문했을 때 환영식장이 울음바다가 됐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는 박 대통령의 연설에 광부들은 "아이고, 아이고"라며 울음으로 답했다. (<동아일보> 2015년 9월 19일)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북한 해외 노동자의 작업 환경과 조건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권'이라는 렌즈로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해외에서 일하는 아버지 혹은 누이는 어떤 존재일까?', '그들이 북한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해외에서 그들의 손을 통해서 만들어진 옷과 농수산물은 한국 사회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일까?'

개성공단이 북한의 유일한 현금 박스?

한 대학 교수는 북한의 이중적 행태에 대해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진행 중인 지금 개성공단은 북한의 유일한 '달러 박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월 말 현재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는 5만3397명이다. 월평균 임금 144달러를 적용하면 연간 90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북한 당국에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경제> 2013년 3월 28일)

한국의 연구자와 언론은 개성공단이 "북한의 유일한 달러 박스" 혹은 "남측에서 들어오는 유일한 달러 박스"(<국민일보> 2013년 3월 31일)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최근에도 "북한 역시 달러 박스인 개성공단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서울신문> 2015년 8월 22일) 관측 혹은 개성공단 임금 갈등과 관련되어 "현금이 급했기 때문"(<연합뉴스> 2015년 8월 18일)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2015년 아니 지난 5년 동안 개성공단이 남측에서 공식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달러 박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유일한 현금 박스는 아니다." 북한은 개성공단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현금 박스 역할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 2007년 한국방송(KBS)도 북한 해외 노동자의 현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1990년대 이후 '해외에서의 외화 벌이 사업'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후 현재까지 북한은 중국, 러시아, 중동 등 전 세계 45개국에 2만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노동 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 2007년 9월 9일)

우선, 중국 단둥의 북한 노동자만 생각을 해보자. 2012년 1만여 명이었던 그들의 규모는 2015년 현재 약 2만 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들의 월급은 개성공단의 3~4배에 해당된다. 단순히 월급만 계산해 보아도, 개성공단의 연간 9000만 달러와 비슷하다. 즉 인건비로 지급되는 소위 현금 박스만 놓고 볼 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개성공단과 단둥은 다르지 않다.

이는 단둥 25개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약 1000여 명의 북한 복무원의 월급(약 1000달러)과 도강증으로 중조(북-중) 국경을 넘나들면서 단둥에서 일하는 일용직 북한 노동자의 경제 활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외에도 단둥에서 북한의 외화 소득원은 북한 식당의 수익, 북한 무역 일꾼(약 3000명 이상)들의 무역 행위와 북한으로 가는 중국 관광객의 여행 비용 등이 있다. 그렇다면 단둥은 "북한의 또 하나의 개성공단이자 현금 박스"라고 인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단둥에만 북한 노동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중동, 러시아, 몽골, 동남아, 터키 그리고 아프리카에도 그들이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5~6만여 명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러시아 노동부의 발표에 의하면, 러시아에만 북한 노동자가 4만7000명이 넘는다(<연합뉴스> 2015년 4월 30일) 이를 감안한다면 북한 해외 노동자의 수는 더 많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각과는 달리, 북한은 해외에 몇 개의 개성공단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될까? 이를 통해서,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 북-중 국경을 넘나드는 방법은 여권 이외에 통행증이 있다(2013년). ⓒ강주원


▲ 북한 무역 회사 영업 허가증. 뒷면의 업종에는 상품 수출과 수입으로 적혀 있다(2013년). ⓒ강주원

▲ 중국 단둥에서 경제 행위를 하는 북한 사람의 여권이다(2015년). ⓒ강주원

한국 사람과 북한 노동자

김진향은 <개성공단 사람들>(내일을여는책 펴냄, 2015년)을 출판하고 나서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속옷의 70%가 개성공단에서 나오죠.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의 30%는 개성공단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휴대폰 부품도 상당수가 개성공단에서 조립되고 있어요." (<한겨레> 2015년 6월 11일)

2013년 기준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3개 가운데 섬유 관련 기업은 72개이다. 개성공단의 노동자 5만여 명 모두가 옷을 만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옷장에 개성공단의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김진향의 설명을 다시 읽게 한다. 여기에 나는 그의 의미 있는 분석에 두 가지 그림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 사람은 개성공단에서 만든 옷만 입고 지내지 않았다. 옷의 라벨(원산지)만 보고 북한과 한국이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나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2013년)에서 "지난 20년 동안 평양에서 만든 옷이 어떻게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이런 옷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중국 제품으로 알고 입게 되는지,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안 팔린 옷이 어떻게 다시 북한으로 수입되어 평양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웃 친구들이 만든 옷을 중국 제품으로 알고 입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5.24 조치 이후, 개성공단이 아닌 평양 혹은 신의주 등에서 생산된 옷들이 북한산 라벨을 달고 공식적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그들이 만든 제품이 중국산 라벨을 달고 한국에 판매되는 구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둥의 약 2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 가운데 약 70%가 종사하는 중국의 봉제 공장에서 생산한 합법적인 중국제 옷들이 한국 사회에 수입되고 있다.

▲ 2013년 북한 화교가 찍은 평양의 봉제 공장(2013년). ⓒ강주원

▲ 단둥, 북한 사람이 차에 귀국 물건을 싣고 있다(2015년). ⓒ강주원

이처럼 단둥은 "또 하나의 개성공단 현금 박스" 역할 이외에도 "단둥에 북한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의미"가 더 있다.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중국산으로 표시된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왔고 살고 있다. 개성공단, 평양, 신의주 그리고 중국 단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옷들을 입고 지내고 있다. 더 들여다보면, 중국 연변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든 옷들도 있다. 우리들의 옷장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되지 않을까!

북한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방식은 더 복잡하지만 농수산물도 마찬가지이다. 며칠 전 단둥에 거주하는 대북 사업가인 한국 사람 A와 한국에서 술 한 잔을 했다.

"5.24 조치 이전, 북한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은 대부분 북한산으로 한국으로 수출하였지. 요즘은 특히 수산물의 경우 대부분 단둥의 중국 공장을 거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형편인 것은 강 박사도 알지! 그런데 요즘 웃지 못하는 상황을 보았네. 최근 한국에서 인기 있는 약초 가운데 중국과 북한에서 모두 생산되는 것이 있는데. 중국산은 재배하기 때문에 모양이 좋아. 그런데 북한산은 야생이기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져. 예전에는 그래도 북한산으로 광고하고 자연산으로 설명하면 한국에서 중국산보다 비싸게 팔 수 있었지만. 5.24 조치 이후, 북한산으로 판매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양이 안 좋으니까 한국에서 중국산 가운데 B등급으로 판매되고 있다네."

소주 한잔을 마신 그는 한마디를 더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모양은 안 좋지만 야생에서 채취한 북한산이라고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야. 광고 멘트가 생각나네. 참∼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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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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