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국산 '커피믹스'를 제일 무서워한다?

[강주원의 '국경 읽기'] 단둥, 한 걸음 더 들어가기 ④

북한 사람은 단둥에서 한국을 20년 넘게 만나고 있다

단둥 지인이 사는 아파트 옆집에는 북한 가족이 산다. 두 가족은 TV와 노트북으로 한국 방송을 함께 보기도 한다.

한 때 단둥에 가면 지인의 집에서 밤을 새곤 했다. 북한 가족과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단둥에 갈 때마다 신세를 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조선족 거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에 투숙을 한다. 그곳에 가도 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 로비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끊임없이 북한 사람들이 호텔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텔 예약을 해 준 조선족 혹은 북한 화교가 그들을 마중하기도 한다. 그들 손에는 다양한 간식거리들이 한 아름이다. 얼핏 보아도 한국 컵라면과 과자가 섞여 있고 한국 소주도 눈에 보인다.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 내리곤 한다. 방에는 한국과 북한 방송이 함께 나오는 TV가 있다. 위화도가 비치는 객실 창 앞에서, 오늘 마주친 북한 사람들의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본다.

단둥에 가면 평소 즐기지 않는 아침을 호텔 식당에서 먹는다. 일부러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만두를 먹다보면, 하나 둘 북한 사람들이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시작한다. 금방 주변에는 40~50명의 북한 사람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는다. 한국 사람은 나 혼자일 때가 많다. 옆 테이블에 있던 북한 사람들은 빠져 나가고 다른 북한 사람들이 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주로 젊은 북한 무역 대표들이 애용하는 호텔이지만 때로는 단둥이 아닌 다른 중국 도시의 북한 식당에 근무하면서 정기적으로 신의주에 갔다 오는 북한 여성들도 보인다. 엄마아빠와 함께 중국 방송을 보면서 아침을 먹는 북한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TV에서 미국과 한국 소식이 나와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아침을 먹은 뒤, 나는 북한 사람들이 최근에 자주 간다는 다른 호텔로 옮길 준비를 한다. 그곳은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 종업원들이 조식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특징이 있다. 비즈니스호텔보다 급이 높다. 이미 호텔 밖에는 북한 사람들이 한 사람당 제법 큰 여행 가방 2~3개를 자가용에 싣고 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조선족 거리를 걷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북한 사람들이다. 몇 년 사이에 자가용을 운전하는 북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옆에서 같이 걷던 조선족 H는 "요즘 북한 사람들 가운데 큰 손이 많기 때문에 중국 쪽 대방(사업 파트너)들이 그들에게 자가용을 빌려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족 H는 나에게 "저기 보이는 북한 사람들 가방에 있는 물건들의 금액은 얼마나 될까?"라고 묻는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부피가 작은 물건일수록 비싼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사장님이 북한 아줌마들에게 판매하는 한국산 귀금속은 부피가 얼마 안 되잖아요? 참 지난 번 동대문 액세서리를 도매로 구입하기 원했던 북한 아줌마들은 평양으로 돌아갔나요?"

그는 웃는다.

▲ 단동의 기차역, 북한 사람들의 귀국 보따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2015년). ⓒ강주원

▲ 북한 여권에서 국경 넘나들기의 횟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북한에 갈 때마다 맨손으로 가지 않는다(2015년). ⓒ강주원

한국의 '커피믹스'가 북한을 변하게 할까?

나는 조선족 거리 바로 옆, 기차역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북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귀국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표와 함께 가방 무게를 검사를 하는 곳은 기차역 2층이다. 어른은 36킬로그램이고 아이는 15킬로그램까지 허용한다. 1킬로그램 초과의 벌금은 중국 돈 100위안이다. 북한 사람들은 짐이 가벼운 조선족과 북한 화교에게 서로 부탁을 한다. 평양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주면서 소포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단둥 사람들이 언급하는 문구를 떠올린다. 그들은 북-중 무역의 진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세관과 기차역에서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를 "개미떼 이사"라고 표현한다.

북한 사람뿐만 아니라 북한 화교와 조선족도 공식 무역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 행렬에 동참을 한다. 그들의 이사 그러니까 국경 넘나들기 횟수는 제한이 없다. 기차역을 빠져나온 나는 벤치에 앉아 그들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를 상상해본다.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량과 짐 보따리에는 각종 한국산 제품도 많습니다. (…) 이들이 주로 구입하는 한국산 물건은 전기밥솥과 화장품, 구두, 염색약, 믹스커피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채널 A> 2015년 12월 2일)

중국 단둥의 전자제품점, 한국 제품점의 주요 고객은 북한 사람이다. 최신 아이패드와 노트북, 한국산 밥솥과 국수 기계 등을 마음대로 사 가고 있다. (<중앙일보> 2015년 11월 19일)

부쩍 단둥을 통해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한국산 물건'이 있다는 보도와 함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장마당'의 활성화에 주목한다. 결론은 자연스럽게 "장마당 세대"가 "북한의 시장화 첨병" 혹은 "김정은 체제 위협" 등의 진단을 한다.

(KBS <명견만리>(2015년 8월 14일)에서 영국 출신 북한 전문 기자 앤드루 새먼은) 최근 북한 경제는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자본가 계급과 '장마당 세대'의 출현으로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더 이상 정부가 통제하는 경제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향신문> 2015년 8월 12일)

한국 언론과 연구자들은 북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면서 북한으로 '한국산 물건'이 유입되는 양상을 최근의 변화로 간주한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단둥페리가 인천에서 단둥으로 한국 물건을 대규모로 운반한 역사가 1998년부터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 17년 동안 단둥을 통해서 한국 물건을 소비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아닐까?

장마당에서 자본력을 갖춘 북한판 자본가, 즉 돈주들은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터전인 장마당이 유지되는 것을 원할까? 아니면 장마당이 없어지는 북한의 변화를 원할까?

학창 시절 '잘사는 한국 사회를 알게 되면 북한 사회는 붕괴 된다'는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답을 구하기 힘든 우문이다. 하지만 단둥의 조선족 거리에는 북한 사람들이 한국 물건과 음식 그리고 한국 소식을 접한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 단둥의 조선족 거리의 약도이다. 이곳에서 북한 사람은 한국을 만난다(2015년). ⓒ강주원

▲ 2000년부터 북한 사람이 애용하고 있는 한국 가게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2015년). ⓒ강주원

언제까지 황금평의 모내기 이야기를 할까?

'한국산 커피믹스' 이외에도 단둥에는 북한의 변화와 북-중 관계를 진단하는 단골 소재가 있다. 대표적으로 압록강의 북한 섬 황금평이다. "황금평 특구엔 볏단만 가득"과 "허허벌판"이라는 신문 제목은 황금평을 바라보는 한국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황금평 부지의 대부분은 농토나 황무지로 방치된 상태였다. 추수를 끝낸 논에 쌓아둔 볏단만 가득했고 북한 농민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을 뿐, 구획 정리나 기초 공사 등이 이뤄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앙일보> 2014년 10월 21일)

국경을 구분 짓는 철조망 건너에 북-중 공동관리사무소가 건설되고 있었지만 드넓은 황토색 평야와 볏단만이 보여 황금평 사업이 본격화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한국일보> 2015년 11월 13일)

황금평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다. 하지만 이 풍경을 보고 "멈춰선 북-중 경협" 혹은 "북-중 관계 냉각"이라는 진단을 하는 것은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분만 보고 내린 결론이다. 2011년 6월 착공식을 한 뒤에도 여전히 모내기를 하는 황금평만 바라보기 때문에, 바로 뒤 단둥의 북-중 경협과 교류의 현장들을 놓치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고개만 돌리면 되고 더 궁금하면 차로 10분만 돌아다니면 된다. 황금평 너머 중국 지역도 2010년 이전에는 논밭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5년 동안 볏단이 하나 둘 사라지고 개발 바람이 불었다.

황금평 근처에 '신압록강대교'가 있다. 한국 언론은 개통을 하지 않는 사실에 주목을 하고 있지만 2010년 12월에 건설을 시작한 다리는 완공이 되었다. 황금평 너머 인천 송도 규모의 단둥 신시가지에는 건물들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2010년 전후부터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는 황금평 경제 특구에서 희망하는 북한 노동력 제공과 중국 자본 투자 방식의 경제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북한의 황금평은 아니지만 황금평 너머 중국 단둥 지역에서 북-중 경협이 진행되고 있다.

황금평에 가면 그곳만 바라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단둥 신시가지를 보는 안목도 필요하지 않을까!

▲ 한국 사회는 황금평의 모내기만 이야기를 한다(2014년). ⓒ강주원

▲ 황금평만 바라보지 말고 단동 신시가지의 북-중 교류를 주목하자(2013년).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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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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