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씨 사인을 '병사'라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대병원이 이번에는 '외압' 의혹에 휩싸였다. 백남기 투쟁 본부는 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경찰청장-혜화경찰서장-서울대병원장' 간 연결 고리를 언급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백남기 투쟁 본부는 "경찰 측이 지난 5월 9일 법원에 제출한 문서를 보면 서울대병원, 혜화경찰서장 그리고 백남기 씨를 수술한 집도의 백선하 교수 간 연결 고리를 잘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쟁 본부가 근거로 삼는 문서는 백남기 씨 유가족이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 과정에서 경찰 측이 법원에 제출한 해명 자료다. 유족 측은 지난 3월 22일 정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작년(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때 백남기 씨가 의식 불명인 상태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뒤, 당시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혜화경찰서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것. 이에 혜화경찰서장은 서울대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백선하 교수로 하여금 백남기 씨를 집도케 하도록 했다고 돼 있다.
"무엇이 백남기 씨를 수술하도록 했나"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백남기 씨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를 진단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신경외과 교수까지 포함된 의료진들은 백 씨의 소생이 어렵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백선하 교수가) 나섰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서울대병원장에게 연락을 취한 혜화경찰서장은 이후 청와대로 갔다"며 "이미 의사들이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했음에도 수술을 강행한 배경에는 '혜화경찰서장-서울대병원장-백선하'의 연결 고리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1월, 정용근 당시 혜화경찰서장은 청와대 기획비서로 발령난 바 있다.
조영선 변호사도 "백선하 교수는 밤늦게 등산복을 입고 나타나 유가족에게 수술을 권유했다"면서 "여기에는 의학적 판단을 넘어 제3의 요인이 있었으리라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당시 백선하 교수와 혜화경찰서장 간 대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백남기 씨를 수술하도록 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것이 의혹이 풀리는 첫 단추다"라고 주장했다.
백남기 씨가 쓰러진 그날, 무슨 일이?
투쟁 본부 측이 간호 기록지, 유가족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한 의료 기록을 보면 오후 9시 30분께 백 씨를 진단한 신경외과 조모 교수에게 "가망이 없으니 요양 병원으로 옮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후 10시 5분께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10시 30분께 등산복을 입고 병원을 찾은 백선하 교수가 손가락에 반응이 있다며 수술을 하자고 유가족을 설득했다. 이후 10시 35분께 백 씨는 수술장으로 이동, 3시간 50분 동안 수술을 받았다.
백남기 투쟁 본부는 모든 의료진이 가망이 없다고 했던 백남기 씨를 뒤늦게 찾아온 백선하 씨가 굳이 수술을 한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
백 씨의 사고 당시 CT 소견서를 보면 오른쪽 뇌 부분에 급성경막하 출혈이 있었고 하도 질겨서 '경막'이라고 불리는 막이 찢어져 여기저기 공기 방울을 보였다. 그리고 뇌를 둘러싼 뼈는 오른쪽으로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리고 뒤까지 골절을 보였다. 눈을 둘러싼 부위에도 금이 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백 씨의 당시 상황을 두고 수술을 안 했으면 곧 사망했을 거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당시 집도의인 백선하 교수는 백 씨의 생명을 연장하는, 즉 뇌압을 낮추는 수술을 진행했고, 이후 백 씨는 열 달 동안 병상에서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지난 25일 사망했다.
이를 두고 고인이 곧바로 사망할 경우, 자칫 당시 민중 총궐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흥분하게 할 수 있다는 경찰의 판단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투쟁 본부, 서울대병원에 사망 진단서 정정 요구..."정정해온 관행 있다"
한편, 백남기 투쟁본부는 서울대병원 측에 고인의 사망 진단서 정정을 요청했다. 이들은 "실제 사망 진단서 작성자는 3년차 레지던트"라며 "만약 그가 자신의 소견과 달리 백선하 교수의 지시에 따라 사망 진단서를 병사로 작성했다면 이는 허위 진단서에 해당한다"며 "작성자에 있어서 백 교수의 지시는 외압"이라고 설명했다.
투쟁 본부가 공개한 사망 당일인 25일 병원 의무 기록에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해 사망 진단서 작성함"이 적시돼 있다.
이들은 "이제까지 사망 진단서는 정정해 온 관행이 있으며, 사망 진단서 작성의는 백 교수가 아니라 다른 의사(레지던트)라는 점에서, 서울대병원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망 진단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정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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