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원전지대,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함께 사는 길] 경주, 지진 그리고 원전·①

지난 9월 12일 규모 5.1과 5.8 지진에 이어 19일 오후 8시 34분경에 경주시 남남서 쪽 11킬로미터(㎞) 지점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존 진앙지와 3㎞ 안팎의 차이로 양산단층이 또 움직인 것이다. 월성원전으로부터 27㎞가량 떨어진 곳이다.

기상청은 지난 9월 12일 밤에서 19일 밤 9시까지 총 378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는데, 그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발표했다. 여진이 잦아들어 안정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간 순간이다. 1차 지진의 좌표를 기상청이 수정한 결과를 반영하면, 진앙지가 양산단층대임이 더 명확히 보인다.

기상청 등은 이 지진을 여진으로 축소하려고 하지만, 여진은 모두 합쳐도 본(本) 지진 에너지의 5%를 넘지 않는다는 통계를 볼 때 19일 발생한 지진은 여진(餘震)이 아니라 새로운 지진이다. 나아가 더 큰 지진의 전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규모 5.8의 강진 발생 이후 370차례가 넘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초유의 일인데, 규모 4.5의 지진까지 발생했다는 것은 지진을 일으킨 응력(應力, 스트레스)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남부 지역의 활성단층대가 활동을 시작한 상태에서 응력 해소(스트레스 드랍)가 되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진이 발생한 후의 대처는 소용이 없다. 선제적인 대응, 가장 보수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는 부족해 보인다.

ⓒ함께사는길(이성수)

걱정스러운 정부 대책

지진 발생 이후 월성원전 4기의 수동정지를 한 과정에서 3시간 반 동안 지진응답 스펙트럼을 계산하느라 정지 결정이 늦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안일한 대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진앙지가 월성원전과 떨어져 있고 월성원전 내진설계가 지진가속도 0.2g(지 : 중력가속도)이므로 원전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소속 윤종오 의원실에 따르면, 월성원전 1호기에 전달된 최대지반가속도는 0.098g였고 월성원전 부지의 최대지반가속도는 0.12g로 수동정지 설정치 안팎의 값을 보였다. 절차서 상에는 4시간 이내에 정지 결정을 하라고 되어 있지만 더 큰 지진이 올지 모른다는 당시의 상황에서 위험시설을 운영하는 자세로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지진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원전 및 방폐장 등 주요시설 지진방재대책을 점검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후속대책의 내용은 기존 원전의 내진성능을 보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조기 실시하며(월성과 고리원전은 2017년 말까지 완료), 방폐장은 외부 전문가와 합동점검단을 구성해 종합 안전점검을 수행하면서 설비보강과 지진가속계를 추가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연휴 끝에 발 빠르게 지진후속대책을 내어놓기는 했으나, 땜질식 처방에 면죄부 주는 부실대책이라는 점은 면하기 어렵다.

먼저 원전의 내진설계 상향조정을 일부 계통에만 적용해서는 실질적인 내진설계 보강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내진설계를 얼마까지 보강해야 할지는 원전 인근 최대지진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동남부지역인 월성과 고리원전 인근의 대규모 활성단층대인 양산단층대가 재활성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그에 걸맞은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 지역에는 양산단층을 중심으로 양쪽에 8개의 대규모 활성단층대가 분포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 확인된 활성단층만 60개가 넘는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 차원에서 추정하는 최대지진 규모 7.5 평가가 나온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최대지진규모 평가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반적이고 실질적인 내진설계 보강, 노후화를 감안한 내진설계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全)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는 자칫 원전 안전성 홍보용으로 면죄부만 주고 돈을 낭비하는 부실평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월성원전1호기와 고리원전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는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나리오만을 임의적으로 선택했다. 극한 상황 상정도 부실하고 그에 대한 대처도 자의적이며 내재적인 문제점을 애써 간과했으며 무엇보다도 독립적인 평가에 큰 문제점이 있었다.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와는 달리 제대로 평가를 해야 한다. 현재 전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 평가 지침을 마련하는 단계인데 관련 지침은 비공개로 하면서 연말까지 끝내버린다는 것은 월성1호기와 고리1호기 때보다 더 부실하게 평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전하다' 주장 말고 정보 공개해야

경주 방폐장의 종합안전점검 대책도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경주 방폐장 부지에는 ‘방폐장 부지 단층’이라는 이름의 활동성 단층을 비롯해 활성단층과 비활성단층까지 8개의 단층이 부지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런데 핵폐기물을 직접 저장하는 사일로를 제외하고는 내진설계가 대부분 0.11g로 낮은 상황이다. 게다가 사일로가 지하수에 잠겨있는 것에 더해 해수까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부지조사보고서가 공개된 후 촉발된 논란이 단 열흘 만에 '종합적'으로 점검될 리 만무하다. 경주 방폐장 부지 내에 있는 활성단층, 활동성 단층에 대한 평가와 안전성 평가를 독립적으로 제대로 진행하는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산업부는 방폐장 주요 시설물의 안전상태와 점검 결과를 언론, 주민 등에게 즉각적으로 공개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원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월성원전은 물론이고 지진 영향을 받은 고리원전에 대해서 지진 발생 즉시 안전 관련 정보를 인근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즉각 공개했어야 했다. 또한, 내진설계 이하의 지진이라도 내부는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비(比) 안전계통의 배관이나 밸브, 노즐 등은 금이 가거나 뒤틀리거나 어긋날 가능성이 있고 이를 통해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원전 주요시설의 방사선량의 변화를 통해 누설량을 감지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원전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으니 산업부는 '안전하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특히 지난 7월 5일 울산 앞바다 지진 이후 안전점검을 했다는 월성원전 2호기에 대한 조사보고서가 아직도 제출되지 않았다. 왜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조사 보고서 제출 전에 월성2호기는 왜 가동을 재개했고 그 월성2호기가 이번에 발생한 더 큰 지진에 의해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지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함께사는길

동남부 일대 원전 중지하고 안전점검해야

현재는 비상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동남부 일대의 가동 중인 원전을 정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가을의 최대전력수요는 70기가와트(GW)에도 미치지 못한다. 총 발전설비 100GW에 비해 30GW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현재 가동 중지 중인 월성원전 4기와 현재 운영 중인 신월성 2기, 고리 4기, 신고리 2기는 총 7.14GW 정도다(현재 고리2호기와 신고리2호기는 중단하고 계획예방정비 중). 총 10GW 원전을 전력망에서 제외하는 것은 현 발전설비 상황으로 무리가 없다. 겨울 전기난방 수요가 오기 전에 한시적으로라도 원전을 중단하고 안전 점검하는 비상대처가 필요하다. 안전점검에는 기존에 원전 주변에 강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 원자력계 전문가들이 아닌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지역 주민이 참여토록 해야 한다.


앞으로 큰 지진이 발생할지, 아니면 그 이상의 큰 지진이 오지 않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보수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원전 안전을 상향조정하는 것과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안전 대책은 지진 다발 지역으로 활성단층이 몰려 있는 월성과 고리의 원전 수를 줄여가는 것이다. 위험 자체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대책이다. 곧 폐쇄될 고리원전1호기와 함께 가장 노후한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 그리고 신고리5, 6호기 건설을 취소하고 가동 중인 원전은 단계적으로 폐쇄해야 한다. 이는 전력수급에도 전혀 지장이 없는 대책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사회를 위한 선택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나 가스발전으로 대체하면 전기요금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대 최고 최대전력수요인 8518만 킬로와트를 기록한 8월 12일에도 예비율 8.5%로 7.2GW가 예비전력으로 남았다. 예비설비량은 15GW로 각각 원전 7기, 15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전력거래소 가격은 80원이었다.

발전단가는 원전 50원대, 석탄발전 60원대, 가스발전 120원대, 태양광 발전 120원대, 풍력발전 80원대이다. 원전과 석탄발전단가가 싼 이유는 발전단가에 환경비용, 사회적 비용 등의 외부 비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거래가격은 원전과 석탄 비중이 높으면 낮아지고 2015년 한국전력공사의 영업이익 10조 원처럼 한국전력공사의 이익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반면 원전과 석탄의 비중을 늘리게 되면 미세먼지, 온실가스, 핵폐기물, 원전사고 위험 비용은 늘어나고 이 비용은 국민들이 안게 되는 구조다.

주택용 전기요금체계로 보면 우리는 이미 원전이나 석탄이 아니라 태양광, 풍력, 가스발전으로만 공급해도 전기요금에 큰 영향이 없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단계는 kwh당 1단계는 60.7원, 2단계는 125.9원, 3단계는 187.9원, 4단계는 280.6원이기 때문이다. 94.3%가 4단계 이하에 몰려 있다.

다만, 일반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은 100원 안팎(고압, 저압용, 계절용 차별)이라 약간의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 2011년 전기 많이 쓰는 기업 3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전기요금은 5685억 원이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1조 7000억 원으로 10~20% 정도의 인상은 큰 부담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싼 전기요금으로 영업이익을 챙기는 기업의 경우는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안전하고 깨끗한 사회를 위한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당장의 비상 대처와 위험요소를 줄이는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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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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