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조은혜. 성별 여. 나이 31살. IT 업계 근무. 여기까진 평범한 이력이지만, 알고 보면 소싯적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였던 '센 언니'였단다. 그래서 <프레시안>에서도 특별히 모신 바 있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화제가 되었던, 바로 '2030 '센 언니'들의 정치수다' 방담이다.
당시 구석에서 조용히 타이핑만 치고 있던 허모 기자에 따르면, 방담에 참가한 세고 센 언니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분이 바로 조 조합원이셨다는 후문. 예전과 달리 요즘엔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종이 호랑이'가 됐다지만, 방담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왕년의 페미니스트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여성 혐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3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조 조합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솔직히, 그 사건이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어요. 무척 비극적인 일이지만 여성 대상 범죄는 너무 많으니까요. 저는 이전에도 언제든 제가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죽을 때 죽더라도 그것 때문에 쫄지 말자 이런 마인드?(웃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최대한의 저항이라는 게 좀 서글프긴 하네요."
조 조합원은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해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됐다는 점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느껴왔던 공포를 당연시하지 않고 문제로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무척 긍정적이라고 봐요. 아직 여성 혐오나 여성들에 대한 범죄가 '문제'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이제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조 조합원이 여성주의에 눈을 뜬 건 대학 때였다. 학생 자치회에서 젠더 이슈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여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 권익을 증진하자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 가부장적인 언어로 읽고 들었던 모든 세계를 전복적으로 바라보자는 급진적인 학문이더라고요. 그런 매력 때문에 여성학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그에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 이를테면 살이 찌진 않았나, 개념 없이 행동하진 않았나, 내가 '나쁜 년'인가, 혹시 여성 혐오 정서를 형성하는 데 내가 일조한 부분은 없을까. 하지만 이러면 역시 욕해야 여자는 정신 차린다는 말에 지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 순응하면서 사는 걸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것 같아요."
9년 전 시작된 프레시안과의 인연
최근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것은 '센 언니' 방담이었다.
"이런 주제로 얘기해본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학교 졸업하면서 거의 잊고 살았죠. 평소엔 그런 대화를 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 여성주의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프레시안에 고마웠어요."
프레시안과 조 조합원의 인연은 방담이 처음이 아니다. 무려 9년 전인 지난 2007년, 조 조합원은 대학 언론학 수업을 통해 언론사 체험을 하게 됐고, 그때 간 곳이 바로 프레시안이었다.
"3일간 견학했어요. 취재 다니는 기자분들 따라다니면서 국회 구경도 하고 당시 한나라당 당사에서 대통령 지망생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경했지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체험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 10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웃음)."
지금은 잘 나가는 IT 회사의 직원이지만, 조 조합원은 한때 기자 지망생이었다. 주변에 기자 친구들이 바글바글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자 친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휴, 언론사 시험 떨어져서 정말 다행이다!(웃음)"
"클라이밍, 같이 해보실래요?"
조 조합원은 평소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발레, 수영에 지난해에는 스윙 댄스까지 섭렵했다. 여러 취미 가운데 가장 꽂혀 있는 건 클라이밍이다. 벌써 3년 반째 매주 2회 이상 암벽을 타고 있다. 클라이밍의 매력은 뭘까.
"처음엔 살이 쭉쭉 빠진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살은 안 빠지고 울끈불끈한 어깨와 성난 등만 얻었어요(웃음). 벽에 매달려 있으면 너무너무 힘들어서 '빨리 다음 홀드를 잡아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아무리 머릿속이 복잡해도 일단 벽에 매달리면 아주 단순한 사람이 되거든요. 그렇게 땀을 쏟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답니다."
조 조합원은 사실 프레시안 서모 기자의 9년 지기다. 애인이 없는 둘은 종종 주말 찜질방 회동을 통해 서로의 고달픈 인생을 위로하곤 한다. 지난번 연애 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조 조합원은,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상형을 털어놓았다.
"같이 클라이밍 할 수 있는 남자. 쾌활하고 유머 있고 예의까지 바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남자가 있으려나요?"
조 조합원은 올해 초 조합원 원서를 낸 신입 조합원이다. 조합원 모임에 참가한 건 지난 4월 한강 난지 공원에서 열렸던 '돼맥(돼지+맥주)' 파티가 처음이었다. 조금은 어색, 뻘쭘했다는 그는 조합원들에게 "앞으로 저와 재밌게 놀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프레시안>에도 한 마디를 남겼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할게요. 좋은 기사 써주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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