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을 만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중국인들의 '만들어진' 체면

중국 쓰촨(四川)에는 '변검(變臉)'이라는 독특한 가면극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의 색과 표정이 상황에 따라 변해서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 관객들이 실감할 수 있는 연극이다. 변검이 유명한 이유는 관객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너무나 순식간에 얼굴의 모양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얼굴만 보고 있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변검의 검(臉)자는 얼굴 검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글자이지만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쓰는 글자다. 안색이 안 좋다거나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등 주로 개인적인 성격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쓴다. 예를 들어 '띠우 리엔(丢臉)'은 잘못을 저질렀거나 능력이 모자라서 창피하다는 뜻이다.

중국에는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가 또 있다. 남들이 보는 나의 얼굴 혹은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이 있다. 얼굴 면(面)자인데 아들 자(子)를 붙인 면자(面子)는 중국어 발음은 '미엔즈'인데 체면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거나 존중받을 때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게이 워 미엔즈(給我面子)"는 "내 체면 좀 세워주세요"라는 뜻이다. 이렇듯 중국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창피함을 느끼는 얼굴과 위신을 보이는 얼굴, 이 둘은 어떨 때는 비슷하게 또 어떨 때는 다르게 중국인의 삶과 그들의 인간관계를 좌지우지한다.

오래전 제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은 나라를 지탱하는 네 가지 덕목(四維)으로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강조했다. 예는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고, 의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염은 사악함을 몰래 감추지 않는 것이며 치는 잘못을 좇지 않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예와 의는 사회적 규범의 준수이고, 염과 치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체면의 근원은 예의이고, 창피함의 근원은 염치일 것이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은 체면을 아는 사람이고, 염치를 아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사회 지도층이 되면 나라가 안녕할 것이라는 게 관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체면이 서고 창피함을 감추고 들키지만 않으면 염치를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때로는 서로가 창피함을 덮어주고 체면을 세워주면서 서로의 위신을 과시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염치없는 사람이 성공하면 결과가 좋으니 그의 창피한 행동을 장점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 변검을 공연하고 있는 배우. ⓒwikimedia.org

항우와 유방, 너무도 달랐던 체면의 기준

천하쟁패를 하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창피함과 체면을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나라의 항우는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고향으로 도망갈 수 있는 배를 탈 수도 있었지만 자살을 택했다. 수많은 병사를 죽이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전쟁에서 다 승리하고 오로지 그 전쟁에서 한번 패했는데 죽을 만큼 창피해서 목숨과 체면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정적 유방은 예전에 항우를 피해 도망갈 때 수레의 무게가 무거워서 빨리 못 간다고 그의 어린 아들을 수레 밖으로 던져버렸던 인물이다. 창피함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가 아끼는 장수인 한신(韓信)도 동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갔던 경험이 있던 만큼 그들끼리 느끼는 창피함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유방이 결국은 천하를 차지했다. 귀족 가문 출신 항우와 반건달에 가까웠던 유방에게 있어서 창피함과 체면의 기준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런 고관대작들의 체면만 소중한 것은 아니다. 루쉰(魯迅)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큐(阿Q) 역시 체면의 화신이다. 아큐는 이름도 성도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가족도 없는 그저 동네 머슴이다. 세상을 아전인수 격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정신 승리법이라는 것도 타인들로부터 받을 수 없는 존중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큐정전>에 등장하는 몇 개의 에피소드만 보아도 아큐가 얼마나 체면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어느 날 아큐는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옷을 벗어서 이를 잡고 있는 왕털보를 보고 자신도 이를 잡기 시작한다. 왕털보와 이 잡기 시합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왕털보는 잘도 잡아서 이빨로 톡톡 깨물어 죽이는데 자신은 옷을 새로 빨아서 그런지 잘 잡지도 못하고 어쩌다 잡은 이를 깨물어도 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아큐는 부아가 치밀었고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별 시답지 않은 일에 체면의 손상을 느낀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동네 머슴에 불과한 아큐가 혁명군을 가장한 강도로 몰려 사형을 언도받았을 때다. 평생 처음 쥐어본 붓으로 판결문에 서명을 해야 했던 아큐는 글자를 모르므로 동그라미를 그려야 했다. 그런데 그 동그라미를 오이처럼 찌그러지게 그린 것이 창피하고 속상했다. 자신의 죽음보다 체면이 더 중요했다. 그리곤 사형장으로 호송되어 갈 때 여느 영웅 호걸처럼 노래라도 멋지게 부르리라 생각했지만 그 마저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못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멋지게 보여서 존중받고 싶었지만 마지막 체면마저도 세우지 못하고 허무하게 처형되고 만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체면은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예의염치의 본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보다 예의염치를 갖춘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른바 사람구실 하는 위인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을 대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그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은 외교적 행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인과 교류를 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공개적으로 타인을 비판하거나 창피를 줘서는 안 된다. 초대를 거절한다거나 선물을 거절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타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체면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독립적이어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으려는 것도 상대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자신의 위신을 과시할 기회를 안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체면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큐에게도 체면은 중요한 문제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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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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