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년의 과정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억세력'과 '망각세력'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싸움은 치열했고, 지금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거대한 망각세력은 지금도 열심히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인 지난해 4월을 생각해 보자.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행령을 갑작스럽게 발표하고, 세월호 인양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거부하던 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거액의 보상금을 주는 것처럼 하면서 문제를 덮으려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삭발을 하며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등 4월 내내 싸움을 벌이자, 시행령 일부를 수정하고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거액의 보상금으로 세월호 문제를 끝내려던 정부의 의도는 파탄 나고 말았다.
이후에도 정부의 세월호 덮기 작업은 그칠 줄 몰랐다. 계속되는 방해로, 세월호 특조위는 8월이 되어서야 겨우 조사관을 배치하는 등 구성을 마쳤다. 그 뒤에도 해수부 장관까지 연루된 문건을 작성해 여당 측 위원들을 배후 조종했다. 특조위가 청와대를 조사하는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막지 못할 경우 사퇴해 특조위 결정에 흠집을 내라고 했으며, 해수부 파견 공무원은 보수단체를 시켜 특조위 위원장과 유가족을 고발하는 치졸한 짓을 거듭했다. 심지어 특조위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에게 답변 연습을 시키는 등 특조위의 독립적인 조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여당은 이에 부응해 특조위의 예산을 6월까지만 배정, 기존안의 3분의 1로 뚝 잘라 버렸다. 거기에 종편 방송의 일방적인 유가족 헐뜯기를 생각하면, 망각세력은 거대한 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금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진실이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거대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단지 자신들의 입장과 달라서는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면 무너질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러므로 진상 규명은 단기적인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힘을 기억세력이 가질 때만 가능한 장기적인 과제로 성격이 변했다.
망각세력들은 국가의 지배세력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장악한 정부, 국회, 사법부를 생각해 보라. 검찰의 수사가 졸속으로 끝난 이유, 처벌받은 공무원은 오로지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뿐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 '국민안전처'가 생겼다고 하지만,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콘트롤타워는 또 실종됐다. 오로지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졸렬한 행태만 목격했을 뿐이다.
대참사에 대한 처벌이나 사후 조처가 이렇게 미약한 이유는 망각세력들에게 희생자 304명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명권력'이라고 명명된 권력의 행태를 보인다. 생명권력은 '규율권력'과 함께 신자유주의 통치세력의 본질이라고 하지 않는가. 보호해야 할 국민과 버려도 좋을 국민을 구분해 놓고, 그에 맞게 정책을 사용하는 권력이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권력이고, 지배세력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런 점을 확인했다. 또한 앞으로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 망각세력에 맞선 기억세력은 어떨까? 지난 3월 12일 2차 총회를 가진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의 단일 조직인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이후 자발적으로 움직여 온 시민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만든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이다. 2년이 다 되도록 전국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지속적으로 활동한 단체는 보기 힘들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대학살 이후, 이런 싸움(5.18민주화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조직된 학생운동이 중심이었고, 시민들은 구경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전국을 다니며 시민들을 만나고, 특조위 방청을 하고, 동거차도(세월호 사고 해역)에까지 가서 인양 작업을 감시한다.
시민들은 어떤가? 매일, 매주, 매월 부단히 움직인다. 서명을 하든, 피켓을 들든, 리본을 만들어 나누어 주든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실천한다. 전국에 100여 곳에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해외동포들도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망각세력의 힘에 의한 강제적인 망각의 흐름에 맞서는 힘은 평소에는 조용히 흐르는 물과 같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힘이 모여서 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유가족이 처음 제기한 특별법 서명운동이 두 달 만에 350만 명을 넘었다. 2014년 5월 유가족들은 2000명의 시민과 함께 서명지를 들고 국회로 행진, 입법청원을 했다. 비록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졌지만, 그해 11월 7일 국회에서 특별법 통과된 순간을 기억한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할 때 릴레이 단식에 참가한 사람이 수만 명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로 돌아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망각세력의 외곽을 형성하는 '이제 지겹다'는 시민들도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또는 '보상받을 만큼 받았으니 그만 해라'라는 그들의 심리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무관심과 조롱, 모욕으로 유가족을 비난하는 혐오세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억세력은 그런 혐오를 이겨 내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힘을 구축하고, 그들의 힘으로 지역부터 바꿔 간다면 2014년 4월 16일 이전과는 다른 정치,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분명히 새로운 시민세력의 출현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좌절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망할 일이 아니다. 아마도 망각세력이 바라는 건 기억세력이 지치는 것일 게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조금 하다가 제풀에 지쳐 떨어져 가고는 했으니까, 저들은 자신할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도 다른 사안처럼 대충 하다가 놓아 버린다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에서 확인한 지옥이 우리 사회의 본모습이다. 학생들은 그런 지옥에서 친구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조끼를 양보했다. 그러기에 소설가 박민규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그들이 만들어 준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이제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로지 기억세력의 힘으로, 기억세력의 강화로만 찾을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시민'의 출현이다. 이들과 함께 정치도 바꾸고, 국가도 바꾸어야 한다. 누가 대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2년 동안 확인했고,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2주기는 기억세력의 존재를 확인하고, 앞으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다짐해야 하는 시기다. 앞으로 닥쳐올 망각세력의 총공세에 맞서 특조위 활동을 연장하고, 세월호를 인양해 미수습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사고 당시 상황을 정밀 조사해 세월호를 영구 보전하는 일. 이 일이야말로 올해 하반기 중요한 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운동도, 우리 마을과 지역부터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을 새롭게 전개하는 일도 시작할 때다. 전국의 기억세력을 보다 긴밀하게 엮어내고,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4.16운동'에 참여하게 하면서 보다 넓어지고 보다 강해지는 기억세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기억세력의 성장과 강화를 위한 실천이 곧 시작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고, 무척 험난할지라도 마지막 기회이므로 끝까지 가야만 한다. 이런 다짐을 하는 2주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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