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와 이별, 위로도 못 받을까 무섭다"

[기고] 삼성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 위해 싸우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원이 고향이고 대학로에서 자취를 하는 스물여덟 청년 실업자 손성배입니다. 강남 삼성 본관 앞에 있는 반올림 농성장에서 많은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항상 아버지가 누구셨는지, 무슨 병을 앓으셨는지 말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제가 이 농성장에 있는 이유가 설명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소개를 잠시 하겠습니다.

제 아버지는 삼성반도체 화성·기흥 공장 협력업체 관리소장이셨습니다. 약 7년간 일하셨습니다. 2009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아 투병하시다가 얼마 전 돌아가셨습니다. 반올림 피해자 가족들은 처음 만나면 으레 이렇게 가슴 미어지는 자기소개를 먼저 하곤 합니다.

어느덧 반올림 농성장에서 진행하는 '24시간 이어말하기 농성'이 100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이어말하기를 시작할 때는 반팔 면티 한 장을 입고 이 곳을 찾아 왔었는데, 이젠 두툼한 패딩을 입고서도 핫팩을 챙겨야 견딜 수 있는 날씨가 됐습니다. 옷차림이 바뀌는 동안 △ 사과 △ 보상 △ 재발방지 3가지 안건 가운데 재발방지에 대해서만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것도 바로 농성 98일(12일) 만에 말이지요.

▲ 고 손경주 씨 아들 손성배 씨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주최로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 목소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삼성은 언론을 통해 모든 게 다 원만히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직 사과와 보상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삼성은 은밀하고 위대하다 못해 독단적으로 사내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은‧위‧독(은밀하고 위대하다 못해 독단적인)' 사내 보상위원회는 작년, 그러니까 2015년 12월 31일까지 보상 신청을 하라고 피해자들을 압박했습니다. 조정위원회의 조정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임의로 기준을 바꿔놓고 말이지요.

조정위원회에서 아직 논의 중인 와중에 삼성은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시적으로 보상 신청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삼성은 돈 봉투를 흔들면서 피해 가족들에게 심리적 불안과 압박을 가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은 당당히 기업에 보상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피해 당사자들을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일방적인 심사 기준에 '나는 대상이 되나, 안 되나' 가슴 졸이게 했습니다. 정말 치사하죠.

게다가 삼성은 보상 대상 기준도 임의로 바꿨습니다. 명분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바꿨습니다. 조정안대로라면 대상에 포함되지만, 삼성 기준대로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분들이 생겨버렸습니다. 황유미, 이숙영 누나와 함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유방암으로 투병중인 박민숙 님 등이 바로 그런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명분도 없고 정당하지도 않은 보상위원회에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사과도 못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과도 '우리 회사에서 일하던 000님이, 또는 000님 가족이 아프게 돼서 내가 미안해' 이 정도의 편지라고 합니다. 삼성의 사과는 일방통행입니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반쪽짜리 사과입니다.

이런 독단적인 해결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저는 보상 신청을 하지 말자고 그랬습니다. 12월 31일 새벽, 어머니는 제게 쇼핑백으로 두 개가 넘는 신청 서류를 넘겨주시면서 '너 마음대로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 삼성 본관 앞에 설치된 반올림 농성장. ⓒ프레시안(허환주)

정확히 말하자면, 2014년 연말까지만 해도 삼성과의 논의에서 제 아버지는 협력업체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황상기 아버님, 김시녀 어머니를 비롯한 반올림 피해자 가족들이 하청업체 직원도 직업병 피해자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힘써주시고 싸워주신 덕분에 이만큼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솔직히 잘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조금 떨리긴 합니다. 돈이 다가 아니지만, 아버지와의 이른 이별에 대한 위로도, 사과도 받지 못하고 이 싸움이 끝날까 무섭습니다. 저를 믿어주고, 반올림과 함께 하기로 같이 마음을 모았지만, 어머니가 후회된다고 하실까봐 무섭기도 합니다. '그때 신청했어야 했다'고 하실까봐…. 그렇게 후회할 일이 조만간 생기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어느 때보다 확신하고, 믿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을 믿고 삼성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위해 끝가지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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