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가른 58초? 불행은 대기 중이었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④]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참사 피해자 가족 송은영 씨 下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역할 수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외부에서의 '특위 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특위 활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시안>은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이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참사 피해자 가족 송은영 씨다. 송 씨로부터 참사 이후 소회,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1)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세월호 시작도 안 했다"
(2) "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3) "세월호 한 달 뒤...내게도 재앙이 왔다"

▲불에 탄 고양 종합터미널 내부 모습. ⓒ고양시

작은 불꽃 하나가 화마(火魔)로

2014년 5월 26일 오전 9시께.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날도 고양 종합 터미널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층 매표소와 승차장에선 300여 명이 버스를 기다리거나 차에 분주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상 5∼7층 영화관에선 50여 명이 영화를 보고 있었고, 지하 2층 마트에선 직원들이 개장 준비 중이었다.

그 시각, 지하 1층에선 CJ푸드빌 푸드코트 인테리어 작업 현장이 한창이었다. 80여 명의 인부가 이곳 점포 내 각 칸막이에 도시가스 주 배관을 연결하기 위한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고는 순간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천장에서 용접하는 도중 가스 배관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를 처음 목격한 작업자 장모 씨는 황급히 소화기를 가지러 바닥에 내려왔다. 그러나 불을 끄려 다시 사다리에 올라탔을 땐 이미 주변 천장 보온재에 불이 10미터 이상 옮겨붙은 뒤였다. 천장은 생각보다 높았다. 소화기로 진화하는 것은 무리였다.

"불이야!"

인근에서 용접 작업 중인 성모 씨와 조모 씨에게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더 큰 화재를 막기 위해선 가스 중간 밸브를 꺼야 했다. 그러나 중간 밸브가 도통 어딨는지 찾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 황급히 주 밸브를 잠갔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천장 우레탄에 옮겨붙으며 발생한 유독가스는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지상 2층 대합실까지 퍼졌다. 불과 58초 만이었다.

화재 초기 진화의 관건인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가스 배관 공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기 위해 1층 스프링클러 배관의 물을 빼놓은 탓이었다. 방화 셔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와 연결된 지하 1층 공사장 에스컬레이터의 미관 보호를 위해 사방에 샌드위치 패널(가연성 스치로폼 내장)로 가림막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화재 연동 장치는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바뀌어 있어 화재 경보와 대피 방송이 늦어졌다.

그 사이, 체험학습을 가기 전 비상약을 사러 학생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교사 박성린 씨는 폭발 소리와 함께 학생의 손을 놓쳤다.

사고 신고 접수 후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 대원들은 곧바로 화재 진압 및 피해자 구조를 위한 현장 수색에 나섰다. 27분 만에 화재 진압은 비교적 신속하게 끝났다.

소방 대원들은 건물 내부에 있던 300여 명에게 대피를 유도했고, 부상 가능성이 있는 42명의 경우는 직접 구조했다. 그러나 이미 유독 가스가 빠르게 번지는 바람에 사망자 발생을 막을 순 없었다. 끝내 9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의 부상재가 발생했다. 재산 피해도 500억 원에 달했다. 그렇게 작은 불꽃 하나가 큰 화를 불렀다.

ⓒ고양시

무허가 공사에 기간 단축, 화재는 필연이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가스 배관 작업자가 다른 작업자가 밸브를 밟아 배관에 가스가 차 있는 것을 모른 채 용접기를 들이댄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그 이전에 발주에서 시공까지 거의 전 과정마다 관련 법규가 어긋나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류 제출 미비로 대수선 착공 신고와 수리 통보가 늦어졌음에도 관련 업체들이 2014년 7월 1일로 예정된 푸드코트 영업 개시일을 맞추기 위해 허가 이전 공사를 무리하게 개시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한 게 가장 큰 화근이었다. 무리하게 가스 공사와 소방 공사 등 각종 공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화재 발생에 취약한 상태를 만든 것.

발주 업체인 CJ푸드빌은 공사 계획 가운데 안전 조치를 마련하지 않고 안전 관련 경험이 없는 업체에 맡긴 데다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줄인 혐의를 받았다.

CJ푸드빌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업체 동양공무는 면허를 빌려 공사를 따낸 뒤 소방시설 시공을 진행했으며, 가스배관공사업체 명인ENG에서는 용접기능사 무자격자를 작업장에 내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다국적 투자사 맥쿼리 자산운용으로부터 의뢰받아 2014년 3월부터 건물·시설 관리를 위탁받은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업체도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스프링클러 퇴수, 방화 셔터 전원 차단, 화재 자동 연동 장치 차단 등을 승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에 따라 용접 작업자, 하도급 업체, 시설관리 업체 담당자 등 7명을 구속기소하고, 발주 업체 및 관련 업체 담당자 1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1심 재판부는 용접 작업자, 현장 소장 등에만 징역 2년 6월 실형을 선고했다. 발주 업체인 CJ는 무죄를 받았다. 하도급 업체 및 시설관리 업체 등 5개 업체는 150만~700만 원 상당의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참사 피해자 가족 송은영 씨. ⓒ프레시안(최형락)

일용직 용접공은 실형, 발주 업체는 무죄… "기업 책임은 어디에?"

박 씨의 아내 송은영 씨는 이같은 재판 결과에 대해 "세월호와 똑같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도 해경 123정장만 실형을 받았습니다. 123정장이나, 용접공이나 그저 총알받이 아닌가요. 불을 낸 건 용접공이 맞습니다. 처벌을 피해갈 수는 없을 거라 저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였어요, 개인만 떠안을 문제일까요. 그보다 위험 상황을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한 기업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발주 업체는 무죄에 건물 관리 업체는 벌금형이라니 화가 납니다."

송 씨는 기업과 국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업은 책임감 없는 태도로 일관했고, 국가는 나 몰라라 했다.

피해자 보상은 고양시 중재로 한 달여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책임 기업들이 보여준 태도는 매우 무성의하고 고압적이었다.

"맥쿼리의 경우 여러 설득에 못 이겨 합의 테이블에 앉았을 땐 아주 사장님 자세였어요. 뭘 잘못했느냐는 식이었죠. 사람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소비자로만 보는 것 같아요. 휴대폰을 살 때, 휴대폰 기능이 어떤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휴대폰이 인체에 문제를 가져다주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게 기업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제 기업의 시설이나 물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아랑곳없더라고요."

피해자 가족들은 먼저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물었다. 피해자들은 처음엔 공중파 방송에서의 사과 방송을 요구했지만, 결국 타협 끝에 한 종합편성방송 메인 뉴스 전에 공개 사과문이 나갔다.

▲참사 당시 고양종합터미널 외관. ⓒ연합뉴스

"사고 책임 기업, 파산이라도 해야…"


피해자 가족들은 아울러 기존 사고에 비해 보상 금액을 소폭 올렸다.

"저는 솔직히 책임 기업들이 파산 지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일이 있을 때 기업이 파산할 정도로 돈을 물게 되면 다신 이런 일이 없지 않겠어요?"

송 씨는 이 참사가 합의문 등에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참사'로 명명된 데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느낀다. 기업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사고명에 CJ푸드빌 등 기업 이름이 명시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언론은 왜 기업이나 사회가 사고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식으로 기사를 써요. 그리고 주변 지인들도 '운이 나빴다', '너희가 감내해야 하는 문제'라고들 말해요. 건축법이나 소방법이 잘못 만들어졌고, 또 이윤 창출에만 목을 매 그런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대기업에 의해 죄 없는 개인이 희생된 건데 자신들에겐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회적 참사에 기업이 책임지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선 법이 바뀌어야 하지만, 국가는 요지부동이다.

현행법에선 발주 업체가 대규모 공사를 분리 발주할 시, 구체적 공사 관련 지시 등이 없을 경우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에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대규모 공사의 분리 발주 시 발주자에게 안전관리책임을 부과하는 근거 규정 마련을 건의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건의사항은 법률로 일반화할 경우 발주자의 책임이 너무 과중해진다는 이유로 제도화되는 데까지 이르진 못했다.

▲세월호 특조위 주최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청문회 소감? 앞으로도 재난 참사 또 일어날 것"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참사의 경우, 원인은 분명했다. 송 씨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적어도 사고 이유를 몰라 답답함을 느끼진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다르다. 여전히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이 미궁 속에 갇혀있다.

비슷한 참사 피해자 가족으로서, 송 씨는 그 누구보다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주최한 세월호 청문회도 직접 참관했다. 청문회를 보며, 그는 속이 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대부분의 증인이 입을 맞춘 듯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결국 특조위의 수사권, 기소권 부재의 한계가 드러난 것 같아요. 국가는 나서서 책임자를 찾아낼 의지가 없는데 특조위는 권한이 없으니, 증인들에게 더 캐물을 수 없어 진실에 다가설 수 없고…. 너무나 안타까워요."

송 씨는 이번 세월호 청문회가 앞으로도 재난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고 했다.

"결국 해경 123정장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잖아요. 만약 제가 해경 같은 사고 수습 책임자라면, 이번 청문회를 보고, '제일 먼저 출동한 게 문제구나, 제일 먼저 사고 현장 가서 현장 책임자가 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저도 벌써 그런 생각을 하는데, 진짜 담당자들은 어떻겠어요."

송 씨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통해 그간 짐작만 하고 있었던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의미 부여했다. 그는 특조위가 향후 2차 청문회를 열어, 이번 청문회에서는 다루지 않은 청해진해운 등 세월호 관련 기업의 문제를 낱낱이 알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손발이 다 묶인 채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조위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잖아요. 적어도 우리 사회 전반에 안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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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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