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그로 흥한 중국, 스모그로 망한다?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중국의 정치 위기 불러오는 스모그

1년 전 베이징의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APEC blue'라고 불린 작년 11월 초 베이징의 청명한 하늘. APEC 회의에 참가한 해외 관계자뿐만 아니라 베이징 시민을 놀라게 만들었다.

1년 후 겨울 초입에 접어든 베이징. 언제나처럼 다시 스모그가 짙게 내려앉아 먼지에 뒤덮인 은둔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결국 베이징 시당국은 8일 오전 7시부터 10일 낮 12시까지 스모그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적색 경보 발령으로 유치원과 초중고는 휴교했고, 자동차는 2부제(홀짝수제) 운행에 들어갔으며, 오염 물질 배출 공장과 공사장의 조업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베이징 시당국의 강제 적색 경보 이행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 PM2.5 농도는 1세제곱미터당 200~300마이크로그램에 달했고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기준치로 제시한 PM2.5 기준치 25마이크로그램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스모그가 심해지면서 시민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스모그 방지용 방진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고, 공기 청정기를 찾는 소비자도 부쩍 늘었다. 외출을 자제한 탓에 시내는 움직임이 부쩍 줄어든 공동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도시는 적막했고, 사람들은 침울했으며, 정부는 그저 비가 내리고 북풍이 불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스모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다양한 반응

고관대작이 사는 중난하이(中南海)나 일반 시민들이 사는 후퉁(胡同)이나 모두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희뿌연 미세 먼지로 덮어주니 중국이 그래도 평등하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중국의 스모그는 중국이 개혁 개방 과정에서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부의 위기 대응과 관리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스모그와 같은 이러한 재해가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나라에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물론 있다. 반면,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사느니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탈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베이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주하고 싶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수도 시민이라는 자긍심보다는 스모그 도시라는 오명에 휩싸인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와 이에 대해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의 경제 성장은 환경을 매우 주의 깊게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어 왔다. 성장 제일주의 속에서 환경은 부차적인 문제였으며,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당과 국가 또한 성장과 발전에 올인 했으며, 환경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한 이후에 생각해도 충분하다는 일반화된 공감대가 있었다.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공장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제품을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유해 가스는 점점 늘어갔으며 도시는 분진을 발생시키는 거대한 공사장이 되었고, 늘어나는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쉼 없이 뿜어댔다. 석탄을 이용하여 공장을 가동하고, 특히 겨울철 난방을 시작하면서 베이징의 하늘은 이미 분진으로 덮이는 스모그가 일상으로 반복되어 왔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베이징의 뿌연 하늘만큼이나 인민의 당과 국가에 대한 신뢰 역시 스모그마냥 점차 혼탁해지고 있다.

중국은 당국가 체제이다. 당이 국가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여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사실상 당이 국가를 통치하는 시스템이다. 혹자는 당이 국가이고, 국가가 당이라고 말한다.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국가의 위기는 바로 당의 위기로 연결되고, 당의 위기는 바로 국가의 위기로 연결된다. 그래서 스모그에 대처하는 베이징 시당국의 조치에 대해 베이징 시민들은 베이징 시당국의 조치를 국가의 조치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조치는 바로 당의 조치로 이해한다.

당국가 체제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사고의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모그에 대한 여러 가지 조치에 대해서 인민들이 가지는 다양한 불만은 결국 당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이러한 불만은 당연히 당에 대한 인민의 신뢰의 위기를 부를 것이고, 이는 바로 중국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부식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인민의 두터운 신뢰를 기반으로 존재의 정당성과 통치의 합리성을 지탱해 왔다. 창당 후 30여 년은 식민지 반제 반봉건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민족 국가를 건설했으며, 건국 후 전반기 30여 년은 사회주의 혁명의 지속을 위한 이데올로기 우선 전략을 취하면서 존망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개혁 개방은 이러한 존망의 위기에 처한 중국공산당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 주체로 우뚝 서서 그 집권의 정당성을 다시 되살린 기간이었다. 결국 중국공산당은 혁명을 완수하고 민족 국가를 세웠다는 역사적 정당성, 그리고 인민을 배부르게 먹여 살렸다는 경제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인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스모그, 중국에 정치적 위기 불러온다

스모그 문제는 중국공산당의 이러한 집권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인민의 신뢰를 밑에서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위기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 파리에서 개최된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여 온실 기체(온실 가스) 감축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하고 2020년까지 석탄 연료 사용 감소를 공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스모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석탄 연료 사용 비율은 채 20%도 되지 않는다. 30% 이상은 공장이나 도시에서 배출하는 연기와 분진이다. 그 다음은 자동차 배기가스이다.

겨울철 난방은 어쩌면 계절적인 요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석탄 사용 감소를 공언하고 있을 뿐 더 심각한 스모그 발생 원인이 되는 공장 가동이나 자동차 배기가스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절박성이 스모그를 줄이기 위한 실천의 문제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인민들은 이러한 실천의 문제에서 진전을 보이지 않는 당과 국가에 대해서 점점 더 신뢰를 거둬들이고 있고 특히 젊은이들은 도시 탈출의 기회, 국가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중국 당국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예전 모 언론에서는 스모그로 덮인 희뿌연 도시가 오히려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거나 스모그 관련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여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했다가 희화화된 적이 있다. 중국에서 이제 스모그는 우스갯소리로 잠시 고달픔을 모면하거나 임기응변으로 덮어질 문제가 아니다.

스모그의 퇴치도 중요하지만 스모그 문제를 둘러싸고 국가와 인민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초래되는 신뢰의 균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막아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중국공산당의 집권의 정당성은 인민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집권의 정당성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스모그는 환경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이미 정치의 영역에 깊이 들어와 있다. 스모그 문제가 이제 그 자체로 정치적 신뢰와 정당성의 문제와 연동되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모그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는 경제적인 고려가 아니라 정치적인 고려에 입각해서 처리되어야 한다.

중국공산당 집권의 절차적 정당성이 매우 박약한 현실에서 인민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집권 정당성은 근저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스모그로 뒤덮인 중난하이(中南海)의 지도자들이 시급히 스모그를 걷어낼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 국가, 인민, 그리고 이웃 국가가 함께 공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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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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