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3일, 한국 프로야구 삼성과 롯데의 경기가 끝난 후 올라온 기사를 그대로 소개한다.
삼성 12:4 롯데
롯데는 23일 열린 2015 프로야구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4-12점으로 크게 패하며 홈 팬들을 실망시켰다. 롯데는 이상화를 선발로 등판시켰고 삼성은 차우찬이 나섰다. 삼성은 최형우가 맹활약을 펼쳤다. 최형우는 1회 초 0아웃에 맞이한 타석에서 2점을 뽑아내며 삼성의 8점차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롯데는 김현우를 끝까지 공략하지 못하며 안방에서 삼성에 8점차 승리를 내주었다.
이 기사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 연구 팀이 개발한 기사 작성 로봇이 썼다. 작성된 기사는 곧바로 프로야구 뉴스로봇(k_baseball_bot)이 자동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기사 작성부터 발행까지, 사람의 손이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색하긴 한가? 일부 '손보면 좋을' 부분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 로봇이 '일등공신'이니, '맹활약'이니 한다. 로봇이 기사를 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기껏해야 석 줄짜리 단순 기사이리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워드스미스(Wordsmith)라는 기사 로봇은 2013년 한 해 동안 300만 건의 기사를 작성했단다. 관련 직종 근무자로서 이건 아니다 싶다. 내 일자리가 진짜 위협받게 생겼다.
로봇의 위협에 직면한 일자리가 한둘이 아니란다. 약사의 영역이던 처방전 조제는 이미 로봇이 더 잘한다. 실수가 제로에 가깝다. 변호사의 몸값도 떨어질지 모르겠다. 판례 자료 조사를 로봇에 맡긴 회사는 기존보다 훨씬 싼 값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단다. 한 예측 결과에 따르면 법을 집행하는 판사의 자리마저 로봇에게 위협받고 있단다. 빅 데이터의 시대, 정보 기술의 시대가 뭔가 했더니 우리 일자리를 뺏는 시대였다. 로봇이 단순 노무는 물론, 서비스 영역, 창조의 영역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 망할 로봇아!)
이러다 인간의 노동 영역은 예술·정치 분야 정도로 협소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미국 리싱크로보틱스의 로봇 백스터가 유튜브 영상을 보고 파스타를 따라 만들었다. 소프트뱅크가 공개한 페퍼는 현재 일본 네스카페 매장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한다. 수줍어할 줄도 안다. 2050년이면 로봇과의 섹스가 일상화되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미 올해 영국에서는 섹스 로봇 금지 캠페인이 시작됐다. 영화 <저지 드레드>나 <그녀>, <아이, 로봇>의 얘기가 아니다. 벌써 우리의 일상에 로봇의 마수가 뻗쳤다!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라도 누구나 과학을 공상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본 미래가 실재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고, <바이센테니얼 맨>의 감성을 느낄 날이 다가오리라 짐작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디오크러시>에 나온, 인류 전부가 바보가 된 미래가 올 지도 모르지. <매드 맥스>가 그리는 황폐한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고,) 상상은 언제나 재미있는 법이니까.
<로봇 시대, 인간의 일>(구본권 지음, 어크로스 펴냄)은 상상의 영역이 어디까지 현실화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한겨레> 기자이자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인 저자가 지난해 낸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어크로스 펴냄)에 이어 두 번째로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담았다.
책에는 다양한 로봇이 소개된다. 카이스트의 휴보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안드로이드 형 로봇만이 나오지 않는다. 무인 자동차를 움직이는 로봇, 번역하는 로봇, 검색 엔진 로봇, 기사 쓰는 로봇 등이 다채롭게 이야기된다. 모두 현재 우리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나쁜) 놈들이다. 앞서 소개한 로봇이 쓴 기사도 이 책에 인용된 사례다.
책이 뛰어난 점은, 이 과학의 세계를 인문학적 사유로 훑어간다는 데 있다. 무인 자동차 시대를 이야기하며 "사람의 운전은 너무 위험해서 금지될 것"이라는 미래 전망과 함께, 사고 발생에 대비해 로봇에게 어떤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할 것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무인 자동차가 직진하면 한 살 어린아이를 치고, 꺾으면 다섯 명의 어른을 치는 상황이 올 때 이 자동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우리가 프로그래밍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다.
이처럼 이 책은 현대 과학이 우리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 고민을 다방면에의 고증과 자료를 바탕으로 독자에게 제시한다. 자동 번역 프로그래밍으로 언어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책은 문화를 꺼낸다. 지식이 공유되는 사회를 이야기하며 사회학적 고찰을 담기도 한다. 철학, 인류학, 경제학, 인문학, 심리학적인 사유를 로봇이라는 주제에 녹여냈다. 로봇 이야기에 아널드 토인비의 말씀이 딸려 나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이 묻어난다.
책에 실리는 로봇 기술의 현재를 보면, 무서움마저 든다. 구글이 개발한 무인 자동차는 160만 킬로미터를 무사고로 달렸다. 이미 로봇은 사람의 감정까지 추측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감정 추정 알고리즘은 사람의 감정을 93% 정확도로 예측한다. 이성의 영역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람의 감정마저 알아차린다니! 이러다 사람보다 로봇과 대화하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과학이라고는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밖에 모르는 (나 같은) 이라도 이 책을 통해 진지한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책은 모든 장마다 이런 물음을 배치해뒀다. 반려견 형태인 반려 로봇을 발로 차는 건 괜찮을까? 로봇과 정말 사랑에 빠져버린다면 어떡하나?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다 대체해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뭘 해야 하나?
과학은 미래를 만든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고민과 사회학적 탐구의 결과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을 법한 진지한 물음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한다. 읽는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뛰어나고, 현대 로봇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짚고 넘어가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도 훌륭하며, 무엇보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책에 소개된 미국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의 말 대로 "세계 지도에 테크노폴리스라는 국가가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국가의 시민이고, 좋든 싫든 우리 자신이 인간 역사의 새로운 질서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로봇과의 공존은 현실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아아, 과학자가 숫자를 휘갈긴 칠판 사진(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사진 같은 것)만 봐도 머리가 아파지는 나로서는 그저 두려울 따름이지만, 어찌되었든 기술 세계의 시민으로서 이 책에 나온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취할 입장은 미리 정리해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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