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로봇의 '아버지', 인류의 미래 '대예측'!

[SF 걸작의 숨결을 맛보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파운데이션'

'로봇 3원칙' '세계 3대 SF 작가'로 잘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전 7권)가 2013년 가을 황금가지에 의해 '완전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이 화제의 출간이 갖는 의미, 읽기 전에 알면 좋은 저자 아시모프와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관한 배경 지식을 SF 작가 김창규의 글로 전합니다. 글 마지막, <프레시안> 조합원들에게 파운데이션 완전판 세트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안내합니다. <편집자>

미국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와 그의 대표작을 소개하려면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보다는 소주제별로, 또는 그에게 붙어 다니는 꼬리표별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시모프는 아주 다재다능했으며 방대하고도 폭넓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여타 작가를 소개하듯) 처음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꿰다가는 오히려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 그러니 다소 기계적으로 단락을 나눈 것처럼 보이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고전 SF의 3대 거장 (Big Three)

1953년 10월호. ⓒvinylzart.com
영미 SF의 3대 거장을 논하려면 'SF 황금기'라는 용어부터 알아야 한다. SF 황금기는 편집자 존 캠벨이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Astounding Science Fiction)>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영미의 대표적인 옛 SF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약하던 때부터 시작한다. 물론 SF로 분류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영미권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황금기'라는 명칭 자체는 자화자찬격인 느낌이 있다. 게다가 SF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융성했다는 개념 자체도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기는 하다.

어쨌든 내용면에서 보자면 SF 황금기란 존 캠벨과 그의 잡지에 실린 작품들이 추구했던 방향성, 즉 과학 발전의 비전과 긍정적이거나 명쾌한 작가의 시선과 인물성의 부각 등을 갖춘 작품/작가들이 대량으로 출몰했던 시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명확히 선을 긋기는 힘들지만 1940년대에서 50년대를 거쳐 서서히 끝난다. 그래도 조금 껄끄러운 '황금기'란 용어를 인정해줄 수 없는 이유는, 이 시기에 SF의 여러 특징들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특징인 'SF의 경이감'도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황금기를 대변하는 SF 작가들에는 폴 앤더슨, 필립 딕, 프레드릭 폴, 시어도어 스터전, 레이 브레드버리 등 다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를 꼽아서 3대 거장이라고 일컫는다 (일반적인 황금기를 '캠벨식 황금기'와 구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아서 클라크를 빼고 A.E. 반 보그트를 넣기도 한다. 본 소개글에서는 일반적인 세 사람만을 언급하겠다)

▲ 로버트 하인라인.
세 사람의 개성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무엇보다도 작품에서 엿보이는 작가의 시선이 큰 특징이다. 하인라인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의지가 굳건하며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모든 난관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 결국 해결에 다다른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물리적인 대결이나 충돌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해결되며, 그 덕분에 오락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거장 셋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사람이 바로 하인라인이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시각이 있다. 이런 특징들은 <낯선 땅 이방인>(한국어판 장호연 옮김, 마티(곤조) 펴냄) <여름으로 가는 문>(김혜정·오공훈 옮김, 마티(곤조) 펴냄) <스타십 트루퍼스>(강수백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안정희 옮김, 황금가지 펴냄), <미래사 시리즈> 등에 고루 드러나고 있다.

▲ 아서 클라크. ⓒPA PHOTOS
하인라인의 경우 미래의 기술과 그로 인해 새로이 펼쳐지는 세계는 인물들이 활약을 하는 무대이자 배경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에 아서 클라크에게 있어 과학과 기술과 세계는 거시적인 사유의 대상이다. 하인라인 소설의 주인공들은 문자 그대로 독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핵심이다. 하지만 클라크의 주인공들은 상대적으로 그 존재감이 약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 원대한 상상력, 세세한 과학적 정밀성을 제시하는 도구인 경우가 많다. 아서 클라크의 대표작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펴냄) <라마와의 랑데뷰>(박상준 옮김, 옹기장이 펴냄) <유년기의 끝>(정영목 옮김, 시공사 펴냄) <도시와 별>(나경문화 펴냄)에는 바로 그런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제 아이작 아시모프를 소개할 차례다. 3대 거장을 두고 특징에 따라서 위치를 그려보자면, 세 사람은 거의 정확히 정삼각형의 꼭짓점에 각각 위치한다. 아시모프는 끝이 없을 것처럼 솟아나는 아이디어가 주무기인 SF 작가이다.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의 작중 인물들은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펼치기 위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활약도 지적인 추리를 대화의 형태로 풀어놓는 것이 전부일 때가 많다. 반면에 SF적인 아이디어는 종횡무진 사방으로, 한계를 긋기 힘들 정도로 먼 곳까지 펼쳐진다.

▲ 아이작 아시모프. ⓒMarty Lederhandler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를 현란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아시모프야말로 현란한 SF 작가일 것이다.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간 저작의 수만 해도 그가 얼마나 현란한 작가인지 보여준다. 그는 생전에 500여 권의 책을 썼고 단편도 수백 편에 이른다. 그 500여 권의 저서는 SF, 교양과학서를 비롯해 판타지, 추리, 각종 비평서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있다.

하인라인을 이야기꾼, 클라크를 과학자이자 철학자 같은 작가라고 본다면 아시모프는 기술과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결합시켜 짧고 굵은 효과를 이끌어내는 초기 SF의 1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작 : 파운데이션 시리즈

일반적으로 어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특색이 도드라지는 작품들만이라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대표작'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를 소개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아시모프를 두고 본격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려면 최소한 (시리즈 포함) 장편 열일곱, 단편 여덟 편을 소개해야 한다. (언젠가는 한 번쯤 해보고 싶으나) 이 지면에서는 두 개의 시리즈와 기타로 나누어볼까 한다.

▲ 2013년 가을 완전판으로 한국 팬들을 다시 찾아온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1권 <파운데이션>, 2권 <파운데이션과 제국>, 3권 <제2파운데이션>, 4권 <파운데이션의 끝>, 5권 <파운데이션과 지구>, 6권 <파운데이션의 서막>, 7권 <파운데이션을 향하여>(모두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대다수가 주저 없이 꼽는 아시모프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SF에서만 가능한 '미래 역사' 이야기이다. 사실 SF는 시간상으로, 그리고 상황상으로 특정 조건의 미래를 그리는 장르이며, 아주 관대하게 얘기하자면 모든 SF는 미래 역사이다. 하지만 하인라인의 미래사 시리즈와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미래 역사 SF'라고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미래 인류의 흥망성쇠를 서사적으로 그리겠다고 기획하고 만들어낸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아시모프가 역사저술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영감을 받아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 <로마 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여기서 잠깐,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경계가 어디인지 논해보자.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작품 속 시간 순서와 출간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출간 연도에도 도중에 커다란 공백기가 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핵심이 되는 것은 <파운데이션 (1951)>, <파운데이션과 제국 (1952)>, <제2파운데이션 (1953)>으로, 이 셋을 묶어 파운데이션 3부작이라 부른다. 한편 명시적으로 파운데이션 '시리즈'라고 부르는 작품은 3부작을 포함해 총 7권이며, 3부작 이후 약 30년 뒤인 1982년부터 1993년에 걸쳐 나머지 네 권이 발표되었다. 그 중 두 권은 3부작 시기 이전을 다루고 나머지 두 권은 3부작 시기 이후를 다룬다.

하지만 파운데이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시모프는 자신의 다른 대표작들, 즉 '은하 제국 시리즈'와 '로봇 시리즈'를 파운데이션과 연계시켜 그 영역을 더욱 넓히려 했다. 그리고 일설에 따르면 완전히 독립적이었던 단행본 <영원의 끝>(김창규 옮김, 뿔 펴냄)까지 넓은 의미로 파운데이션과 연결 지으려 했다고 한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완독하는 분들께서는 그런 작가의 의도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이다.

▲ <영원의 끝>(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창규 옮김, 뿔 펴냄). ⓒ뿔
시리즈 전체에 등장하는 각 인물과 사건들은 커다란 축 하나를 중심으로 삼아 움직인다. 그 축이란 '인류의 미래를 수학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작품상의 이론이다. 작중 인물인 해리 셀든은 그 이론으로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을 창설한다. 심리역사학은 먼 미래를 예측하고, 당시 인류가 이루고 있던 거대한 제국이 결국 멸망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연히 제국 측은 그 결론에 불만을 품게 되고, 셀든과 그의 지지자들은 제국의 변방인 터미너스 행성으로 쫓겨나 인류의 기술과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든다. 백과사전을 만들면 그로 인해 인류의 암흑기를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다는 예측 때문이다.

시리즈 일곱 권의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주 규모의 스포일링이 되는지라 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의미를 정리하는 선에서 멈추는 게 적당할 것이다. 이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는 독자들의 최대 궁금증은 과연 셀든의 예측이 적중하는지, 그가 세운 대비책이 성공을 거두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하지만 아시모프의 포석은 그보다 더 먼 곳에 놓여있다. 각 권을 읽어나갈수록 문화적, 사회적, 정신적 세계의 멸망이라는 두루뭉술한 개념의 재앙은 사실 인류의 궁극적인 미래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흘러나간다. 여러 등장인물은 사실 그 미래 (또는 해답)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탐험가들이며, 그 노력은 인물이 바뀌어도 꾸준히 계승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아시모프는 후기 저작을 통해 그의 여러 시리즈들을 (특히 파운데이션과 로봇을) 하나로 엮으면서 일생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미래 이야기를 완성했는데, 그 방향성과 스케일만은 최근 영미 SF계를 주름잡는 고급 스페이스 오페라들과 견주어도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

말하자면 파운데이션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인류의 다음 모습을 펼쳐 놓은 작품 세계의 결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허점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파운데이션에는 아시모프의 고질적인 단점들 역시 고스란히 모여 있다. 무엇보다도, 명색이 7권에 걸친 자칭 미래 '역사'이건만 대중의 의지나 구체적인 사회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가장 크다. 그리고 역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아주 개인적인 갈등과 작은 사건들이 전체를 이끌고, 일관성이 부족한 결론으로 성급하게 마무리 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심리역사학의 결론이 절대적인 계시처럼 취급된다는 것도 현대 SF의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면과 큰 차이를 보여 아쉽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나치게 머리가 좋아 뜬금없이 올바른 해답으로 도약하는 아시모프식 주인공들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 하겠다. (물론 직관형 탐정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겠지만)

대표작 : 로봇 시리즈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모프의 대표작은 '파운데이션 시리즈'이지만 필자는 '로봇 공학 3원칙'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일련의 시리즈와 단편들이야말로 아시모프 고유의 특징을 잘 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로봇 공학 3원칙이란 무엇일까. 이는 아시모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원칙이다. 우선 그 내용부터 확인하자.

1원칙 :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으며,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
2원칙 :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단 1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는 예외이다.
3원칙 : 로봇은 1,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 중 <로봇과 제국>(Robots and Empire) 표지.
혹시 로봇 공학 3원칙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3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이 간결 명료한 아름다움에 감동해주셔도 좋겠다. 이 세 가지는 '공학'적인 원칙답게 그 자체적으로 '로봇'의 기능과 한계를 정의하고 있다. 1,2,3 원칙에 공통되는 암시가 있으니, 로봇은 도구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로봇 제작자가 로봇의 머릿속에 반드시 심어 넣어야 할 원칙이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로봇이 등장하는 SF 이야기를 만들려면 이 3원칙을 반드시 넣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만큼 아시모프가 멋진 원칙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 3원칙은 로봇 때문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드라마는 한계와 불완전함에서 출발하지 않던가? 아시모프는 이 점을 십분 활용해서 로봇과 인간이 겪는 온갖 상황들을 대량으로 생산해냈다. 그리고 로봇이 등장하는 아시모프의 단편들은, 세 줄에 걸친 단서를 주고 사건의 진상을 풀어보라고 독자에게 도전하는 추리물이자 지적 놀이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네 권의 장편이 있다. 아시모프의 여러 작품을 폭넓게 읽어본 독자라면 인물과 이야기의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로봇 시리즈는 그런 비판을 제법 피해간다고 봐도 좋다. 특히 첫 번째 로봇 장편인 <강철 도시>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이야기의 서사성을 제대로 갖추며 균형을 잡고 있다. 3원칙이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어지는 장편 세 권은 <강철 도시>의 두 주역, 일라이어 베일리와 대니얼 올리버가 겪는 일과 그들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 <파운데이션>(파운데이션 시리즈 1권,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파운데이션'은 인류의 미래 이야기이다. '로봇'은 우리 인류가 만든…… 굳이 고풍스러운 단어를 끌어온다면 피조물의 이야기이다. 아시모프의 작품 세계에서 인류와 로봇은 모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SF적인 상상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로봇 공학 3원칙에 숨어있는 커다란 모순(또는 커다란 잠재성) 하나를 알아채셨을 것이다. 그 세 개의 원칙은 로봇이 인간과 그 외 존재를 구분할 수 있으며, 인간이 해를 입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혹은 알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위해를 구분하고 수많은 마네킹과 인간형 로봇들 속에서 진짜 인간을 가려낼 수 있는 인식체계라면, 그걸 두고 지능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지능이 있다면 지성이 생겨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아시모프가 후에 추가한 0원칙을 보면 그런 의문이 더 커질 것이다.

0원칙 : 로봇은 인류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인류가 해를 입도록 방관해서도 안 된다.

인류가 해를 입는 경우를 완전하게 나열할 수 있을까? 적어도 필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완벽한 목록을 만들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로봇 역시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직간접적인 상황을 즉흥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지능, 그것도 아주 우수한 지능일 것이다.

그리고 아시모프는 '파운데이션'과 '로봇'을, 달라진 인류와 성장한 피조물을 하나로 모았다. 두 시리즈 11개 장편을 읽고 나면 아시모프가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려 했는지 알게 된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둘을 맞붙이기 위한 작위적 설정과 시간상의 불일치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책을 손에서 내려놓고 잠깐 하품을 하며 생각해보면, 적어도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된다. 그런 SF 작가가 얼마나 되는지 떠올려보면 아시모프가 누군가에게 왜 그리 칭송을 받는지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아이, 로봇>

로봇 공학 3원칙의 아름다움은 인지했으나 수많은 단편과 장편 넷으로 이뤄진 로봇 시리즈 속으로 뛰어들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이라면 마침 두 편의 영화가 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과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이다 (<아이, 로봇>은 <다크 시티>를 만든 알렉스 프로야스가 연출했다). 전자는 아시모프의 원작을 고스란히 영상화했고, 후자는 아시모프의 여러 로봇 단편을 기반으로 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로봇 공학 3원칙이 기저에 깔려있다.

▲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만약 다른 영화에서 로봇 공학 3원칙의 영향을 보고 싶다면 <금지된 행성>과 <로보캅> 1편을 권하겠다. <금지된 행성>에 등장하는 로봇 로비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로봇 공학 3원칙과 매우 유사하며, 로보캅은 비록 완전한 로봇은 아니지만 그에게 주입된 규칙과 아시모프의 원칙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로보캅>

그 밖에

아시모프는 옛 SF계의 거장인 동시에 논쟁의 여지를 제공하는 작가이다. 혹자는 아시모프의 작품들이야말로 SF의 근본 정신에 충실하다고 평하고, 어떤 이는 아시모프 때문에 SF가 이야기 미학이 부족한 장르라는 편견을 받게 됐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필자처럼 SF에 애정이 있는 사람은 둘 다 맞는 말이며 둘 다 SF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얘기했다가 두 배로 욕을 먹기도 한다.

▲ <흑거미 클럽>(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동서문화사
하지만 아시모프의 단편 명작 <전설의 밤 Nightfall>을 읽어보자. 경이감이 뭔지는 몰라도 등쪽 어딘가에서 전율이 살짝 기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질문>을 읽으면 그가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테고, <익살꾼 Jokester>를 보면 웃어야할지 (그 썰렁함에) 화를 내야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수줍은 이웃 사람들이 사실은 소금인간이었다는 단편을 읽으면 이런 걸 쓰고도 원고료를 받았나 싶을 것이고, <흑거미 클럽>이라는 추리소설을 읽으면 추리작가로도 모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영원의 끝>과 <강철 도시>를 읽으면 사실 아시모프의 진짜 대표작은 이 둘이라는 평에 (필자처럼) 동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시모프가 쓴 성서해설서 <아시모프의 바이블>은 특정 종교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아시모프는 상상력과 명민함으로 읽는 이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상당히 쾌활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점이다. 따라서 평가는 모두 다를 수 있지만, 그를 3대 (옛날) SF 거장으로 불러도 좋다는 점에는 아마도 모든 이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아, 분노한 특정 종교인들은 빼고 말이다.

김창규 작가의 아시모프를 여행하는 가이드, 잘 따라 오셨나요. 다음의 퀴즈를 풀어 보내주시는 <프레시안> 조합원 중 다섯 분을 추첨하여 황금가지가 펴낸 <파운데이션> 시리즈 완전판 세트(전 7권)을 선물해 드립니다. 작품을 아직 모르셔도 위 글을 정독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조합원 안내 및 가입 신청 페이지)

1. SF 황금기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들 중, 등장인물들의 "낙관적 시선"이 두드러지며 대중적인 "이야기꾼"이라 평가할 수 있는 작가의 이름은?

2. 셀든과 지지자들이 쫓겨난 행성의 이름은?

3. 다음 중 김창규 작가가 파운데이션 시리즈/아시모프와 관련하여 아쉬워한 점이 아닌 것은?
① 7권의 걸친 미래 '역사'이건만 대중의 의지가 없다니
② 심리역사학의 결론이 절대적 계시처럼 취급되다니
③ 로봇 공학 3원칙, 명색이 원칙인데 저렇게 복잡하다니
④ 주인공이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갑자기 해답으로 도약하다니
⑤ 장대한 역사 이야기인데, 개인적인 갈등과 작은 사건들이 전체를 이끌다니

정답만 순서대로 적어 <프레시안> sns 이메일 계정(sns@pressian.com)으로 보내주세요. 이메일의 용이한 확인을 위해 [파운데이션] 말머리를 달아 주시면 좋습니다. 마감은 11월 20일(수), 당첨자는 개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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