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과 함께 '신세대 문화'는 막을 내렸다!

[프레시안 books]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

199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 돌이킬 수 없는 전환을 가져왔던 시기다. 경제적 고도성장이 절정에 달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90년대 전반까지 흘러넘쳤다. 반면 1997년 맞은 외환위기는 평생직장, 사회적 안정, 중산층 신화라는 기존까지의 사회적 공식이 모두 무너지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대를 열었다.

90년대는 한국 농업이 세계 대자본과 직접적인 경쟁 체제를 시작하면서 기존 사회의 바탕을 이뤘던 농가의 몰락이 시작된 시기, 풍요로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겪은 'X세대'가 출현해 기성세대와 본격적인 세대 갈등을 겪은 시기, 학생 운동이 몰락하고 대중 운동의 실마리를 연 시기, 민주주의 정부로의 평화로운 권력 교체가 일어난 시기, 대중문화의 폭발기이기도 했다.

전례 없는 격변은 긴 시간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혼란을 줬다.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은 개개인의 삶의 축을 뒤흔들었다. 모든 구성원의 가치관이 흔들리던 시기였기에, 이 시대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상징체계를 꼽을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난 2008년 10월 2일 사망한 고 최진실을 그 자리에 놓았다.

▲故 최진실의 1990년 모습. 90년대 최진실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연합뉴스


최진실 사망 7주기에 맞춰 나온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심우일 외 지음, 문화다북스 펴냄)은 10명의 필자가 고 최진실을 다방면으로 분석한 결과물을 묶은 인물평론집이다. 대중문화 비평 웹진 <문화 다>의 필진이 공동으로 만든 출판물이다. 비슷한 내용의 분석이 지루함을 주기도 하고 개별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구성이 아쉬움을 일으키지만, 대중문화 비평의 토양이 매우 척박함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시도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고 최진실을 여러 방면에서, 총론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그의 평범하지 않았던 삶의 궤적을 훑는 한편, 그에게서 다양한 의미를 뽑아내 우리 사회에서 최진실이 어떤 상징체계로 자리했는가를 살펴본다. 2장은 최진실이 출연한 영화를 중심으로 그를 분석하고, 3장은 그가 출연한 텔레비전 드라마에 집중한다.

열 명의 비평가들이 다각도에서 분석한 최진실은 1990년대의 상징이었다. 이는 그가 출연한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이나 서태지와 아이들, 허재 등을 압도한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같은 단순 수치 때문이 아니다. 최진실이 당시의 복잡한 시대정신을 모두 한 몸에 아우른 복합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이 주목한 최진실을 대표하는 작품은 "남편 퇴근 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유행어로 대표되는 삼성전자의 VTR 광고,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그리고 드라마 <질투>와 <별은 내 가슴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이들 작품에서 최진실은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성이었던 가부장제에 순종적인 여성은 물론, 여성 인권 향상에 따른 한 사람의 독립적인 여성성까지도 동시에 체현한 스타였다. 비평가들은 온전히 새로운 여성성만을 품지도, 그렇다고 전통적인 수동적 여성성만을 가지지도 않았던 최진실이 가치관의 혼란기 한가운데서 기성세대와 청소년 모두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유추해냈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의 한가운데에 그가 출연한 두 작품 <별은 내 가슴에>와 <그대 그리고 나>이다. 이들 작품에서 최진실은 스스로가 X세대의 대표격이 된 트렌디 스타에서 미래를 잃어버린 가정의 억척스러운 캐릭터로 급격히 전환하며 한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도 그는 '줌마렐라' 신조어를 상징하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 심우일 외 지음, 문화다북스 펴냄. ⓒ프레시안
비평가들은 최진실은 물론 그의 주변 인물 5명이 모두 이른 죽음을 맞이한 그의 비극적 삶에서도 서사를 읽어내, 독자에게 그의 온전한 삶 모두를 고민거리로 던진다. 이를 통해 독자는 '수제비'로 대표되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한국 최고의 스타가 된 그의 서사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유효했던 우리의 중산층 편입에의 희망을 읽어내고, 그의 비극적 죽음에서 한 시대의 신화가 끝을 맺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대중문화 비평은 잡지의 몰락, 태부족한 비평 수요, 전문 비평인의 안정적인 생활 유지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쉽게 소화되기 힘든 분야다. 이는 훌리거니즘마저 전문 문학 분야의 하나로 자리 잡고, 뮤지션의 한 음반에 대한 비평서가 활발히 만들어지는 영국을 부러워하기조차 힘든 오늘날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다.

반면 90년대는, 적어도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다. 학생운동권에 투신했던 젊은 지식인들이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지식인들이 X세대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물에 큰 관심을 쏟기 시작한 시기였다. 오늘날 영화계의 거장, 새로운 대중음악 창조자들 대부분이 90년대에 가능성을 꽃피우기 시작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진실은 이 척박하지만 풍요로움의 가능성을 보였던 시대에 가장 높이 솟아오른 인물이었다. 아울러 시대의 혼란과 모순을 한 몸에 모두 끌어안은 채, 젊은 나이에 산화한 아까운 사람이었다. 저자로 참여한 박우성의 말대로, 그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감수성을 갖춘 동세대 감독의 시선에서 재발굴 된 최진실의 스타 이미지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는 "한국 영화계의 큰 손실"로 남았다. 성장 신화의 종언, 나아가 혼란의 시대를 맨몸으로 뚫어낸 우리가 가졌던 신세대 스타의 이른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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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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