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혁 가로막는 김무성, 글렀다

[전진한의 알권리] 사회적 약자 아우를 비례 대표제 확대

정보 공개 운동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가장 반응이 뜨거운 기관은 '국회'다. 국회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매체들은 앞다투어 1면에 보도하고, 댓글도 가장 많이 달린다. 몇 년 전 국회의원 겸직 현황 실태를 공개했더니 공천을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모 의원이 무려 9개의 겸직을 하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타고 인터넷판에서 1주일 이상 재생산되며 기사화되었다. 기사마다 댓글들도 수천 개씩 달리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19대 국회의원회관 신축 및 리모델링 비용으로 2212억 원이 들어갔다는 것을 정보 공개 청구로 밝혀낸 적이 있다. 이 보도는 삽시간에 거의 모든 언론에 주요 기사로 인용되었고, 독자들의 국회에 대한 질타도 넘쳐났다. 이런 반응들은 다른 기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국회에 대한 시민적 불신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신은 국회가 자초한 면이 크다. 불법 정치 자금을 대가로 각종 은밀한 거래가 드러나 시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국회를 본질적으로 개혁하자는 논의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국회 해산'이라는 구호만 시민들의 귀를 자극한다. 국회에 대한 혐오와 조소는 넘쳐나는데 본질적인 개혁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묘한 모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 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직능별 권리를 대표할 '비례 대표제 확대'와 사표 방지를 위한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이다. 이는 대부분의 정치학자와 시민 사회가 공히 주장하는 것이다.

지난 21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원회)가 20대 국회 총선의 지역구 수를 244∼249개 범위에서 정할 것을 발표했다. 획정위원회의 발표대로 된다면 비례 대표는 현 19대 국회처럼 54석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34석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기로 하면서 빚어진 문제이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농어촌 출신 의원들은 이마저도 반대하고 오히려 비례 대표 규모를 훨씬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국회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면서 비례 대표 숫자를 유지 및 축소한다면 향후 국회 및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필자 주위에서도 비례 대표제 확대와 정치 개혁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현재 국회는 소상공인, 예술인, 전업주부, 청년, 대학생, 장애인 등의 권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아예 없거나 아주 적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청년은 인구 전체의 35%이지만 국회에서는 0.7%밖에 되지 않는다. 수백만의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아예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소상공인과 청년들의 현실은 점점 나빠져만 가고 있다.

일례로 요즘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면 가장 힘든 것이 상대 평가이다. 본인도 지난 몇 년 간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기말고사가 끝난 뒤 반드시 학생 몇 명에게 C, D 학점을 줘야 한다. 단 한 명도 수업을 빼먹거나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저 학점은 무슨 기준으로 줘야 하는지 난감했다. 저런 낮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취업 및 대학원 진학에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많은 교수가 객관식 시험, 괄호 넣기 시험 등 중·고등학생 수준으로 시험을 평가하고 있다. 명확한 점수가 나와야 낮은 점수를 강제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학 강의를 포기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대학 교육의 질을 하락시키고 원인이 되고 있다. 상대 평가 수업의 피해자가 학생뿐만 아니라 강사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포함해 대학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책임지고 문제 제기할 의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소 상인은 어떠한가? 새벽 출근길에 식당 앞을 지나가다 보면 눈을 비비며 고기를 굽고 있는 식당주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새 일을 해도 식당들은 높은 임대료와 치열한 경쟁으로 투자한 돈을 모두 소진한 채 23년 만에 폐업한다. 실제로 KB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치킨집 개업 이후 3년 미만에 폐업하는 비율이 50% 육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완해줄 입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실태가 학생과 중소 상인밖에 없겠는가? 이 사회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문제로 비례 대표제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제도의 사표 방지이다. 현 우리나라 투표 제도는 1등만 당선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 정당들만 그 혜택을 보고 나머지 작은 정당들은 원내에 입성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시민 사회에서는 독일식 비례 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정당 지지율이 의석수로 나타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할 수 있고,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소수 정당이 국회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이런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정치권이 국회 개혁을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 20대 국회는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계층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출하는 과정에서 개혁이 필수적이다. 승자독식 방식의 국회를 구성하고 국회의원들을 욕해봐야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사회적 약자와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비례 대표제 확대와 독일식 비례 대표제 도입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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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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