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재벌과 벨기에 남작, 18년형 선고 받다!

[구보타 쇼크 10년, 한일 석면 문제 대해부 ②]

(☞관련 기사 : ① 열도 뒤흔든 '구보타 쇼크'는 끝나지 않았다)

악성중피종이라는 암이 있다. 폐를 둘러싼 막에 종양이 생겨 평균 생존 기간이 1년이 채 안 되는 치명적인 암이다. 이 병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의사들도 많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암이다. 발병 원인의 85~95%가 석면 노출이다. 석면에 노출된 후 평균 20~40년의 잠복기를 거친 후에 발병한다. 나머지 5~15%는 다른 질병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의료계는 악성중피종을 대표적인 석면 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 부모와 형제 2명 등 직계 가족 4명을 모두 악성중피종으로 잃은 사람이 있다. 유럽연합(EU)이 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거주하는 에릭이다.

에릭은 5남의 장남이다. 그의 아버지 피에르는 60세인 1987년에 사망했고, 13년 뒤인 2000년에 어머니 프란치스가 67세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3년 뒤인 2003년에 에릭의 첫째 남동생 피에르 파울이 45세에 사망했다. 다시 5년 뒤인 2009년에 셋째 남동생 스테판이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22년 동안 가족 7명중 4명이 석면 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에릭의 가족은 아버지가 건축 자재를 만드는 회사 '에터니트(Eternit)'의 기술자로 공장 옆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다. 에터니트는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일본,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곳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면 시멘트 제품 회사다.

시멘트에 석면을 혼합하여 수도관, 슬레이트 지붕재 등을 생산했다. 에터니트의 제품은 매우 단단하여 내구성이 강하고 열에 강해 내화 건축재로 널리 사용됐다. 문제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다량의 청석면과 백석면을 사용하면서 작업 현장과 주변 환경이 오염되어 공장 노동자들과 인근 주민들이 석면에 노출된 것이다.

어릴 적 에릭은 동생들과 집 주변에 널려있는 석면 수도관을 들락거리며 놀았다. 어머니는 석면 공장에 다니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작업복을 늘 세탁했다. 작업복에 뭍은 석면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된 것이다.

나는 2010년 9월 영국에서 열린 산업보건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벨기에의 에릭네 집을 방문했다. 에릭은 벨기에의 석면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피해 대책과 석면 추방 활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의 안내로 에터니트 공장과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었고 잡초와 나무만 무성했다.

공장 주변에 수도관 불량 제품과 폐기물들이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집터 주변의 도랑을 살피다가 시멘트 파이프 조각을 여럿 찾아냈고 손톱만한 크기의 시료를 채취했다. 귀국하여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해보니 7개 시료 모두에서 석면이 검출되었다. 모두 백석면이었는데 그중 3개는 청석면도 섞여있었다. (참고로 석면의 종류는 모두 6개인데 그 중에서 청석면은 발암 위해도가 가장 높아 각국에서 가장 먼저 사용을 금지했고 한국도 1998년에 사용을 금지했다.)

에릭이 살던 집터에서 발견된 한 시료에서는 백석면이 21%, 청석면이 20%가 나왔다. 무려 41%의 높은 농도였다. 조사 결과를 받은 에릭은 깜짝 놀랐다. 공장 인근의 마을 주민들에게서 100명이 석면 질환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에터니트 공장과의 직접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에릭은 조사 결과를 정부 당국에 제시하며 환경 정화를 요구했고, 이후 정밀 조사를 거쳐 석면에 오염된 토양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가족 4명을 석면암으로 잃은 에릭(왼쪽)이 살던 집터에서 석면 함유 의심 파이프 조각을 찾아냈다. 분석 결과 백석면 21%, 청석면 20%가 검출되었다. ⓒ최예용

최근 에릭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다. 에터니트 회사를 상대로 어머니의 석면 암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에릭의 승소는 노동자가 아닌 주민 피해를 인정하는 판례여서 벨기에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를 계기로 에릭 동생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다른 주민 피해 유족들도 회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에릭은 자신과 남은 두 동생에게도 언제 석면 암이 찾아올지 몰라 걱정을 안고 산다. 폐 검사 결과 에릭도 석면 노출의 증거로 여겨지는 흉막판(plaque)이 검진되었다. 화물 비행기 조종사로 직업상 세계 각국을 방문하는 에릭은 틈만 나면 여러 나라의 석면 추방 운동가 및 피해자들과 교류한다.

일본의 석면 피해자 모임이 개최한 지난 6월 27일 구보타 쇼크 10주년 국제 심포지엄장에서 에릭은 일본의 에터니트 석면 피해자를 만나 한참동안 껴안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세기의 석면 소송

일본의 구보타와 유럽의 에터니트는 모두 석면 시멘트 제품 제조 회사로서 수많은 석면 피해를 발생시킨 환경오염 기업이다. 구보타 쇼크 10년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에 이탈리아의 에터니트 피해자들이 보고한 석면 피해 내용은 끔찍했다.

눈 덮인 알프스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 북서부의 몬페라토 카살레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에터니트 석면 시멘트 공장이 1907년부터 1986년까지 80년간 가동되었다. 카살레와 더불어 아탈리아 전역에 있는 4개의 에터니트 석면 공장으로 인해 그동안 3000명의 노동자와 주민이 석면 질환에 걸렸고 이중 2200명이 사망했다. 석면 공장이 30년 전에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매년 50명씩 거의 한 주에 한 명꼴로 석면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석면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단체 등 모두 6000명이 원고로 참가해 에터니트의 책임자 2명을 상대로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회사가 석면의 위험성을 1930년경부터 알았지만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많은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석면으로 죽게 했다며 살인죄로 처벌을 요구했다.

이 재판은 '세기의 대소송'으로 불리며 유럽 전역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검사는 스위스와 벨기에 국적의 에터니트 소유자 2명의 피고에게 법정 최고형인 20년을 구형했고, 2012년 2월 토리노의 1심 재판부는 피고에게 16년 징역형과 함께 사망자 2200명 1인당 평균 3만 유로 총 6600만 유로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음해인 2013년 5월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에 2년을 추가해 18년 실형을 선고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석면 마피아 처벌받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영국 BBC는 '스위스 거부와 벨기에 백작 두 사람에게 석면 피해 유죄가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피고 가운데 한 사람인 스위스 출신의 슈미트하이니는 자신을 은행가이자 환경 철학을 지난 기업가로 선전하여 1990년 유엔환경회의 경제 분야 최고 자문관으로 지명되었고 1992년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에서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를 설립하여 자신이 명예회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 'Rio+20'에 슈미트하이니가 참석한다는 소식에 브라질 석면 추방 운동가들은 "슈미트하이니는 수천 명의 노동자와 주민을 죽인 살인자다"라며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 참석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세기의 대소송'은 2014년 이탈리아 대법원이 3심에서 공소 시효가 지났다고 판결하여 허무한 결과를 내고 말았지만 세계 곳곳의 석면 관련 기업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불멸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 아스베스토스(asbestos, 석면)를 통해 회사 이름처럼 '영원한(eternit)' 번영을 추구했던 석면 회사 에터니트는 문을 닫았고 최고 경영자는 살인죄로 법정에 서야 했다. 석면 문제로 오염되고 피폐된 이탈리아 몬페라토 카살레 지역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난 석면 추방 피해자 운동은 '사회 정의, 환경 회복 그리고 공정 조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지구촌 시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몬페라토 석면 피해 집단 소송 과정에서 석면 회사의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석면 회사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낱낱이 밝혀졌다. 토리노의 법정 기록은 회사 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감추고 조작하려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회사는 적어도 1931년부터는 석면의 유해성과 석면폐 발병에 대해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회사 내부 서류가 공개되었다. 이 사건은 기업인들에게 '잘못된 결정과 경영을 하게 되면 응분의 사회적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경고를 남겼다.

2015년 한국 사회는 142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많은 소비자를 희생시킨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생산하고 판매한 회사는 영국계 레킷벤키저(RB)코리아다. 그리고 롯데, 이마트, 삼성, GS 등 대기업이 연루되어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해외 수입 제품을 제외한 모든 국내 생산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를 제공한 SK케미칼이 살균제의 호흡 독성에 대해 1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은 과학적 불가지론으로 제조 기업의 면책을 은근히 옹호했다.

대한민국에는 파렴치한 기업인들과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관료들이 판친다. 우리가 이탈리아 석면 대소송을 자세히 살펴보아 그들이 살인 기업을 어떻게 단죄했는지 보고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예용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으로도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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