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지배하는 '4강 보존의 법칙'

[베이스볼 Lab.] '내팀내', '야잘잘'에 이른 제3의 법칙

‘설레발’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2015 KBO리그에서 지난해 하위권 팀들의 초반 돌풍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감독을 바꾸고 선수단 분위기가 확 살아난 KIA와 롯데는 연전연승 중입니다. 타이거즈는 KIA로 구단 이름을 바꾼 뒤 처음으로 더그아웃에 웃음꽃이 활짝 핀 모습이고, 롯데의 팀 분위기에서는 흡사 로이스터 시절의 냄새가 느껴질 정도죠. KIA와 롯데 둘 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팀입니다.

여기에 시즌 전 대부분 전문가가 상위권으로 예상한 SK와 두산도 지난해는 5, 6위로 부진했던 팀이죠. 두 팀 다 현재 3승 3패로 공동 5위이니, 시즌 출발이 나쁘지는 않은 편입니다. 2014시즌 9위에 그친 한화 이글스도 김성근 감독 부임으로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강 후보’ 내지는 ‘2위도 가능하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만약 KIA와 롯데가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SK와 두산에 대한 평가가 적중하며, 한화에 대한 몇몇의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시즌 4강 팀이 모두 포스트시즌에 탈락하고, 하위권이던 5개 팀이 한꺼번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프로야구 순위의 대격변이 일어나는 셈이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지난 수 십 년간 KBO리그에서 나온 기록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KBO리그 8개 구단 체제가 시작한 1991년 이후 지난 24년 동안, 하위 4팀과 상위 4팀이 다음 시즌 한꺼번에 자리를 맞바꾼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전년도 4강 팀은 대부분 다음 시즌에도 그대로 4강 자리를 유지했고, 새로 4강에 진입하는 팀은 대개 1팀, 많아야 2개 팀에 불과했습니다. 이름하여 ‘4강 보존의 법칙’인데요, 이를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와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에 더해 KBO리그 3대 법칙에 포함해도 될 것 같군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베이스볼 Lab.>은 1991년 이후 모든 시즌의 4강 진출팀 변동 내역을 조사했습니다. 다음 표를 살펴보시죠.


시즌별 4강팀 중 직전 시즌 4강에 들었던 팀과, 전년도 하위권이던 팀의 숫자를 나타낸 것입니다. 24차례 시즌 중 상하위 4개 팀이 한꺼번에 바뀐 시즌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4팀 중 3팀이 교체된 시즌은 단 1차례(1996년) 뿐이고, 4팀 중 2팀이 바뀐 시즌은 11차례였습니다. 4팀 중 1팀만 교체된 시즌은 11차례, 4팀 모두가 살아남은 시즌은 한 차례(1992년)가 있었습니다. 평균을 내 보면 4강 팀 중 2.5개 팀이 다음 시즌에도 4강 자리를 지켜냈고, 하위권 중 1.5개 팀이 다음해 새롭게 4강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0년을 기점으로 기존 4강팀이 자리를 지키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겁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을 놓고 보면 기존 4강 중 평균 2.2개팀이 자리를 지키고 하위권 중 1.8개 팀이 다음해 4강에 들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매년 순위표에 2개씩의 새로운 팀이 4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겁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하위권 팀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있는 편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2001년 이후로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시즌 동안 기존 4강 중 이듬해 자리를 지킨 팀은 평균 2.6개팀, 전년도 하위에서 상위로 상승한 팀은 1.4개 팀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4강으로 가는 문턱이 좁아졌다는 얘기죠. 특히 2008년부터 최근 7년만 떼어놓고 보면, 2013년 한 해를 제외한 나머지 6시즌 모두 기존 4강 팀 중 3개 팀이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잘하는 팀은 계속 잘했고, 못하는 팀은 계속 못했습니다. 순위표가 고착화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팀들이 전년도 하위권에서 다음해 상위권 진출에 성공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991-2014 연도별 신규 4강팀의 직전 시즌 성적을 순위와 승률별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다음 표를 살펴보세요.


전년도 최하위(8위) 팀이 이듬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건 4차례 나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1993년 8위에서 1994년 2위로 올라간 태평양, 1995년 8위에서 1996년 3위로 올라선 쌍방울, 1998년 8위에서 1999년 준우승팀으로 치고 올라간 롯데 등 대부분 2000년도 이전 사례들입니다. 2001년 이후로는 2005시즌 8위에서 2006년 4위로 순위가 상승한 KIA가 유일했습니다. 4할 이하 승률팀의 이듬해 4강 진입도 1991년 롯데(1990년 0.383), 1994년 태평양(1993년 0.293), 1996년 현대(1995년 0.397), 1996년 쌍방울(1995년 0.366), 2001년 한화(2000년 0.391), 2006년 KIA(2005년 0.392) 등 6차례에 불과했습니다.

꼴찌팀의 반란이나 기적보다는, 오히려 아깝게 4강 진출에 실패한 팀이 이듬해 4강에 올라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전년도 5위 팀 중 9개팀이, 6위팀 중에는 11개 팀이 다음해 4강에 들었습니다. 또 승률상으로도 전년도 5할 이상 승률팀(4강 실패) 중 3팀이, 4할5푼이상~5할이하 중 14팀이 다음 시즌 4강에 진입했습니다. 하위권팀 중에서도 어느 정도 승률을 올리면서 가능성을 보여준, 기본적인 선수 자원이 갖춰진 팀들이 상위권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신규 4강팀 중에는 비록 직전 시즌 성적은 부진했지만, 그 이전 시즌에는 4강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제 1991-2014 기간 신규 4강팀의 직전 2년간 시즌 성적을 살펴본 결과, 이 중 5개 팀은 불과 2년전만 해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리그 최강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준우승을 했던 팀도 6개 구단, 3위 5팀과 4위 3팀으로 신규 4강 37팀 중 이전 2년 이내 4강에 들었던 팀은 총 19팀에 달했습니다. 이는 전체 신규 4강팀 중 51%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구해본 신규 4강팀의 이전 2년간 평균 순위는 5.3위, 평균 승률은 0.458에 달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살펴볼까요. 1994년 7위에서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올라선 OB 베어스가 대표적입니다. OB는 1994년 당시 ‘선수 집단 이탈 파문’ 속에 하위권으로 추락했지만, 1993년에는 승률 0.545로 리그 3위에 오를 정도로 팀 전력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임 김인식 감독이 침체된 팀 분위기를 확 바꾸고 노장들이 분전한 결과 7위에서 1위로 순위가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죠. 이는 1996년 창단과 함께 준우승을 차지한 현대도 마찬가지. 태평양 시절인 1995년 7위에 그치긴 했지만, 1994년 태평양은 짠물 야구를 내세워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좋은 팀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신화’가 시작된 2002년 LG 트윈스도 비슷한 예입니다. 2001년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LG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들고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강팀이었습니다. 이상훈, 유지현, 김재현 등 베테랑 선수들과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등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죠. 2007년 우승팀 SK 역시 2년 전인 2005년에는 리그 3위, 2003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만만찮은 팀이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신화’도 없었습니다. 원래 좋은 선수들을 보유한 좋은 팀이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자기 자리를 되찾은 것 뿐이죠. 너무 재미없고 인간미 없게 느껴질지 몰라도,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최근의 KBO리그는 하위권 팀의 반란이나 꼴찌 팀의 ‘기적’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KBO리그가 단일리그에 한정된 수의 팀이 한정된 자원을 갖고 치르는 폐쇄적인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로야구가 고도로 진화하고 산업화된 2000년대 이후로는 혁명이나 전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리그를 확 뒤집어 엎을 만한 신인 선수는 거의 나오지 않고, FA 선수도 대부분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로 팀 전력에 큰 플러스 알파 요인이 되지 못합니다.

프런트 야구가 주류가 되면서 구단 운영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팀은 ‘지속 가능한 전력’을 구축해서 강팀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반면, 구단 운영이 허술한 하위권 팀들은 어쩌다 한 두 번 상위권에 들어도 좋은 전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합니다. 구단 운영과 선수층이라는 상수는 워낙 공고해서 FA 영입이나 외국인 선수, 반신반인 감독 같은 변수만으로는 순위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KBO리그에서 한 번 강팀은 영원한 강팀, 한 번 약팀은 계속 약팀이 된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2013-2014시즌 새롭게 4강에 가입한 넥센-LG-NC는 교훈을 줍니다. LG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끔찍한 암흑기를 경험했습니다. 그 사이 수 없이 많은 감독을 바꾸고, 선수를 영입하고, 구단 수뇌부를 물갈이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상위권 진입을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퓨처스팀에 투자하고 구단 운영을 바로잡은 결과, 마침내 2013시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습니다. 우승제조기 감독 하나 영입했다고, FA 두 명 데려왔다고 단번에 꼴찌에서 4강팀이 되는 기적은 없었습니다.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야 4강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최근 KBO리그에 참가한 넥센과 NC는 대기업 위주의 리그에서 새로운 구단 운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드래프트와 스카우트에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통계를 팀 전력 구성에 접목한 결과 빠른 시일 내에 리그 상위권 팀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구태의연한 강훈련 대신 효율적인 훈련 방식을 택했고, 80년대식 감독 중심 팀 운영이 아닌 프런트가 주도하는 야구를 했다는 게 특징입니다.

교훈은 간명합니다. 요즘의 프로야구에서 약팀이 강팀으로 올라서려면 남들보다 끈질기게 인내하거나, 남들보다 월등하게 앞서가야 가능합니다. 또한 하위권 팀 중에서도 어느 정도 선수 자원이 갖춰진 팀, 비교적 최근까지 상위권 성적을 냈던 팀이 새로 4강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 시즌은 어떨까요. 10개 팀으로 재편한 2015시즌에도 3팀은 남고, 1팀이 바뀌는 ‘4강 보존의 법칙’은 여전할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즌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는 삼성과 넥센, LG를 확실한 4강 후보로 거론했습니다. 세 팀 다 지난 시즌 상위권에 들었던 팀들이죠. 여기에 자주 거론되는 SK와 두산은 지난 시즌 5, 6위로 4강이 사정권인 팀들입니다. 두산은 불과 2013년만 해도 리그 2위, SK는 2012시즌 리그 2위로 최근 성적도 괜찮았습니다. 또 2014년 팀 분위기 때문에 7위로 가라앉기는 했지만 2013년 승률 0.532로 5위를 했던 롯데도 올라올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 올해부터는 와일드카드 도입으로 4강 문이 5강으로 확대된 만큼, 2팀 이상이 새로 상위권에 올라서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앞서 야구의 몇 가지 법칙을 소개하면서 빠뜨린 법칙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야구에는 ‘만약’이 없다는 법칙과, 야구에는 ‘절대’가 없다는 법칙입니다. 맞습니다. 야구에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도 없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과거 사례로 볼 때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KIA와 한화가 보란 듯 4강에 진입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지. 아니면 신생 kt가 신생구단 최초로 5강에 진입하는 ‘기적’을 연출할지. 야구에 ‘절대’가 없다는 사실은, 갈수록 상하위 팀간의 격차가 커지고 상위권 진입 문턱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KBO리그 경기를 보게 되는 이유일 겁니다. 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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