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다시는 깨지지 않을 기록들

[베이스볼 Lab.] 혹은 깨져서는 안될 기록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야구계에 새로운 대기록이 작성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영원히 그 누구도 깨기 힘들 ‘불멸의 기록’이나, 현대 야구에서는 절대 깨져서는 안 될 옛 시절 야구의 기록이 존재한다. <베이스볼 Lab.>이 KBO리그에서 다시는 깨지지 않을, 깨져서는 안 될 기록을 정리해 봤다.
1982년 김성한의 투타 겸업

프로에서 이름을 날리는 선수들은 학창시절 4번타자와 에이스를 겸업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로 레벨에서 투수와 타자 양쪽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의 새로운 괴물 오오타니 쇼헤이가 더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잘 치는 신인이라, 잘 던지는 신인이라서가 아니라 프로 레벨에서도 잘 던지고 잘 치는 신인이기 때문이다.
KBO 리그에서도 잘 던지고 잘 치는 선수가 있었다. 원년 해태의 김성한은 타석에서는 3할을 치면서 리그에서 가장 많은 타점을 올린 타자였던 동시에, 마운드 위에선 26경기에 나와 10승을 따낸 투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야구는 80년대에 비해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기에, 아무리 투타 양쪽에 모두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 하더라도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점수차가 많이 나는 경기에서 어쩌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거나, 타자가 마운드에 오르더라도 김성한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그 어떤 기록보다도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이 아닐까?
1982년 백인천의 타율 .412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브 제이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의 한 챕터를 할애해 왜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사라졌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백인천 프로젝트’를 통해 스티브 제이 굴드가 제시한 가설이 KBO 리그에서도 적용되는지에 대해 알아본 시도가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야구 팬들 사이에서 종종 4할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4할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는 틀린 소리다. 2군에만 하더라도 4할 타자들은 여럿 있다. 리그 수준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뛰어난 선수가 탄생한다면, 나올 수도 있는 기록이다.

ⓒ사진 제공: (주)사이언스북스 / 백인천

문제는 리그 수준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뛰어난 선수가 탄생할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KBO 리그가 좁아 보일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나오더라도, 그 선수가 컨택에만 집중해 4할에 도전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야구에 만약은 없는 법이지만, 일본에서도 .387을 친 이치로 같은 타자가 국내에서 뛰면서 안타 만들기에 집중한다면 딱히 4할을 못 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그처럼 리그 수준을 뛰어넘는 타자가 나오더라도 단타에 집착하기보단, 장타를 노리는 스윙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MLB나 NPB같은 상위리그에서 그런 선수에 눈독 들이지 않을 리가 없다.
1982년 박철순의 단일시즌 22연승
ⓒ박철순
우리보다 야구 역사가 훨씬 긴 미국에서도 단일시즌 22연승 이상을 올린 선수는 없다. 메이저리그 기록은 1936~1937년에 걸쳐 24연승을 거둔 뉴욕 자이언츠의 칼 오웬 허벨이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 뉴욕 양키스의 개막전 선발로 낙점된 마사히로 다나카가 일본 라쿠텐 시절 24연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22연승은커녕 현재 KBO 리그에서는 한 시즌 22승을 거둔 투수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22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2007년 두산의 리오스였는데 그나마도 약물 의혹이 있다. 리오스 이전으로 22승 이상을 올린 투수는 1990년의 선동열. 그 이전의 기록은 모두 80년대에 세워졌다. 올해부터 10구단의 합류로 팀당 경기 수가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늘어났기에 그만큼 더 많은 기록이 세워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22승을 거두는 투수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2연승은 그냥 22승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1983년 장명부의 30승, 36완투, 427.1이닝
깨질 수 없는 기록이기도 하며 동시에 절대 깨져서는 안 될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기록이 깨질 상황이 나온다면 어쩌면 유엔 인권위원위에서 그 팀을 고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선발등판을 한 선수는 옥스프링과 벤헤켄으로 각각 31회 선발등판 했다. 나온 경기에서 전승을 거둬야 가까스로 30승을 뛰어 넘게 된다. 가능성이 없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투구를 보여주면서 선발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완투를 하더라도 장명부의 36완투를 깰 수 없다.

굳이 지난해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KBO 리그 역사에서 한 시즌 36경기 이상 선발등판 한 선수 자체가 1983년의 장명부와 1985년의 강만식 두 명에 그친다. 흔히 구시대적 야구를 가리켜 ‘80년대 야구’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80년대에도 이는 극히 드문 케이스였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시즌 36완투 이상을 거둔 선수를 찾으려면 1946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27.1이닝이라는 기록도 말이 안 되는 기록이다. 1983년 삼미 투수진이 모두 합작한 이닝은 909이닝.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닝을 장명부 혼자서 소화했다는 의미다. 투수 분업화가 나름 정착된 이래, KBO 리그에선 200이닝을 소화한 투수도 매년 나오지 않고 있다. 30경기에 선발등판해 모두 9이닝까지 던지더라도 270이닝 밖에(?) 소화하는 데 그친다. 바다 건너 메이저리그에서도 1908년 이후 4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1908년은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유명한 ‘순종 2년’이다.
1984년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1패
ⓒ연합뉴스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네, 알았심더. 한 번 해보입시더”라는 그 유명한 문답을 탄생시킨 기록. 깨질 수도 없으며, 깨져서도 안 될 기록이다. 확률은 매우 떨어지지만, 한 투수가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굳이 시나리오를 써보자면 한 팀의 특급 불펜투수가 동점이나 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하고, 그때마다 다음 공격에서 팀 타선이 터지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선발’투수가 한 시리즈에서 4승을 거두는 시나리오는 먼 훗날 한국시리즈가 7전 4선승제가 아니라 9전 5선승제나, 11전 6선승제로 바뀌는 경우가 아니고선 상상하기가 힘들다. 거기에 더 대단한 것은 그냥 4경기에 나와서 4승을 거둔 것이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만 5경기에 등판했고 완투패를 기록한 경기도 있다는 것.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의 등판 로그는 다음과 같다. 9월 30일 1차전 완봉승, 10월 3일 3차전 완투승, 10월 6일 5차전 완투패, 10월 7일 6차전 구원승, 10월 9일 7차전 완투승. 6차전의 구원승도 1~2이닝을 소화하면서 따낸 구원승이 아니라 무려 5이닝을 던진 결과물이다. 10일에 걸쳐 5경기에 나와 40이닝을 던지는 ‘혹사’의 결과는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사실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의 미친듯한 활약에 묻힌 기록도 두 개 있다. 당시 상대팀이었던 삼성 김일융도 시리즈 2,4,5차전에 승리를 거두고 7차전에 나와 패전을 기록했다. 만약 7차전 승리팀이 삼성이었다면, 한국시리즈 4승의 기록은 최동원이 아닌 김일융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최동원은 프로야구 출범 이전, 1981년 실업야구 한국시리즈에서도 6경기에 모두 등판해 42.1이닝을 던지면서 롯데를 우승시킨 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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