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뒤이어 그로 인해 공석이 된 국회의원을 뽑기 위한 보궐선거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 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준 사법적 결정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온데간데없다. 다시 한 번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과 같은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대해 그 전제와 조건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직접적으로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는 사법권력은 사회적 다원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여야 하고, 권력행사 절차의 적정성과 논증의 엄정성을 구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법권력이 정치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그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박탈은 이러한 최소한의 전제와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필자)
2014년 통진당 해산 결정, 2015년 4.29 보선, 그리고 정치의 사법화
2014년은 세월호 참사에 이어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결정이 있었던 해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무능한 국가, 황폐해진 사회, 무기력한 시민이라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한국 사회의 성찰을 촉구했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2015년 봄의 한국정가는 정당 해산 결정의 부산물인 국회의원 보선으로 어수선하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의 자격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박탈한 헌재의 결정으로 공석이 된 지역구 국회의원 세 명과 선거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의원직을 상실시킨 지역구 국회의원 한 명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한창이다.
국민대표를 뽑는다고 시끌벅적하지만 왜 선거를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은 온데간데 없다. 이번 보선은 사법기관에 의해 국민의원직이 박탈된 데 따른 것이다. 국민에 대하여 직접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사법기관이 어떤 근거와 권위에 기초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또 국민의 대표를 뽑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범죄에 대하여 법원의 의원직 박탈이라는 극약처방이 다반사가 된 것은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선거구획정 위헌 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 중요한 정치질서에 관한 결정이 헌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민주공화국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할 정책이나 질서가 사법기관에 의해 처리되는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 한다. 전통적으로 정치문제로 간주되어 오던 국정현안에 대하여 사법권력이 법의 논리체계에 바탕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이 한국사회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본질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최근의 대표적 사례인 통진당 해산 결정의 경우를 소재로 정치의 사법화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도록 한다.
정치의 사법화의 의의와 본질1)
원론적으로 볼 때 정치의 사법화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 먼저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력의 오남용을 헌법이 통제하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 정치적 권력행사가 헌법에 근거하고 헌법정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요구하는 입헌주의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하거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작용을 무효로 선언하는 헌법재판제도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현행 헌법은 고위공직자의 탄핵, 정당의 해산까지도 헌재의 판단에 맡기고 있어 입헌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가 꼭 긍정적으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정치의 사법화가 지나치면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독재인 사법적 전제(judicial tyranny) 내지 제왕적 사법지배(Imperial Judiciary),2) 즉 법의 중립성을 가장한 정치적 소수자들이 다수의 민주적 결정을 뒤집는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민주적 정치과정이 왜소화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법판단의 기준이 되는 헌법이 명확하게 한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도록 규정되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정치과정이 최대한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음에도 헌법의 문구를 임의로 확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정치적 자율성을 훼손할 수 위험성이 있다. 이런 위험이 극단화된 경우는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사항을 헌법으로 간주하고 위헌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이다.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선언하면서 대선공약이었으며 국회에서 다수결로 의결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사법 자체가 정치화되는 극단적인 경우가 초래되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의 전제와 한계
결국 양면성을 가지는 정치의 사법화 문제는 어떻게 그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그 긍정적 측면을 최대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부정적 측면은 헌법에 대한 독단적 해석론에 따라 정치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고, 긍정적 측면은 정치권력의 오남용을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사법화를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은 정치적 해결의 필요성이 높은 사안은 가급적 정치과정의 자율에 맡기고 정치의 자유로운 결정을 방해하는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는 정치적 결정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법권력이 정당하게 정치과정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조건이 있다.3) 첫째, 그 구성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국회처럼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에 필요한 만큼의 강도와 내용을 갖춘 민주성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제한적이나마 사법과정 속에서 정책적 판단을 행하는 일종의 국가권력인 사법권력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구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정치의 사법화는 다수결에만 의존하는 정치과정의 편협성을 보정하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억압을 위한 권력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4)
더구나 그러한 사법기관의 결정은 국민의 복종과 승인을 얻어내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사법과정은 강한 융통성이 발휘될 수 있는 정치과정과는 달리 법이 정하는 적정한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야 한다. 요구되는 절차의 엄격성 정도는 관련 사안의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데 민주적 정치질서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클수록 그 절차는 더욱 엄격하여야 한다. 만일 허술한 절차로 정치적 효과가 큰 사안을 소수의 재판관들이 결정할 경우 그 결정은 사법적 결정으로서의 신뢰도가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사법적 결정은 권력행사의 요건이나 방법이 매우 엄격해야 한다. 사법적 결정은 아무리 정치적 성격을 가진 판단을 하더라도 법적 요건의 발견과 그 적용이라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오로지 그 논증의 엄격한 합리성에 의해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논증의 합리성이 약한 사법적 판단은 설득력이 약하고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기 보다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잉태할 뿐이다.
2014년 통진당 해산결정의 경우 - 극단적 사법의 정치화 사례
민주공화국에서 정당의 설립과 유지는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되는 목적이나 활동의 주체인 정당은 ‘민주주의의 적’이므로 헌법이념상 용인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당해산제도가 도입되었다. 한편 그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정당의 해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당해산제도는 함부로 정당의 존속에 국가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장치이기도 하다. 그런 정당해산제도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쉽다. 결국 '양날의 칼'인 정당해산제도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고, 정치의 사법화에 요구되는 전제와 조건 - 결정기관의 민주적 정당성, 절차의 적정성, 논증의 엄격한 합리성 - 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 점에서 일찍이 정당해산의 정치도덕적, 법적 전제와 조건을 발전시킨 유럽평의회의 베니스위원회(Venice Commission/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5) 정당해산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의 정당해산에 관한 판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인권헌장(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제11조에 의해 보장되는 결사의 자유가 특별한 정치적 결사인 정당의 자유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실현에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이 중요함을 고려하여 그 어떤 결사보다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그 해산이 정당화됨을 확고히 하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오로지 압도적으로 확고한 논거에 의해서만 정당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으므로"(only convincing and compelling reasons can justify restrictions on such parties’ freedom of association) 비례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6)이 엄격하게 적용되며 정당해산의 논거는 "그 관련성이 충분하여야 한다"(relevant and sufficient)고 보았다. 또한 터키 헌재의 정당해산사건을 여러 차례 심판하는 과정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정당해산이 오로지 "긴절한 사회적 필요성"(pressing social need)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고, 이 필요성은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첫째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이 "충분히 급박"(sufficiently imminent)해야 한다. 둘째로 정당의 지도자나 구성원의 행위가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전가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정당에게 책임을 전가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가 "민주사회"(a democratic society)와 양립할 수 없는 사회모델을 분명히 추구하고 있어야 한다.
8대 1이라는 압도적 차이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헌재는 과연 이러한 헌법적 전제와 조건에 충실하였는가? 헌재의 다수의견은 베니스위원회나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정립된 정당해산에 관한 보편적 법 원리를 상당부분 수용하면서도 그 실질적 보장의 관건이 되는 중요한 법원칙이나 전제조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 그러면서 남북대치상황이라는 현실이 이러한 중요한 판단기준의 왜곡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변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은 구체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현존성'(sufficient imminence)이 필요한데 헌재의 다수의견은 이를 무시하였다. 사회적 필요성도 단순한 필요성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정당해산의 극단성에 비추어 ‘긴절한’(pressing) 필요성이어야 함에도 그 긴절성을 요건에서 애써 배제하였다.
보편성을 상실한 법원칙을 적용하는 논증의 과정마저도 적정한 절차와 엄정한 논증을 거친 것으로 보기에 역부족이다.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증거들 사이에서 위험성을 완화하는 증거는 배척되고 위험성을 인정하는 증거가 채택된 이유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정당 전체의 행위로 책임이 전가될 수 있는 주도세력의 범위를 충실히 제시하지도 못하여 심지어는 결정 후에 주요한 사실관계를 고치는 수모를 자초하기도 했다. 북한 추종성을 정당해산사유로 간주하는 논리비약 앞에 최고헌법기관에 요구되는 논증의 엄정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의 주장 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우리 헌법에 대한 가치판단을 북한에 내맡기는 황당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에 대한 추종성이 우리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와 연계하여 이루어지는 활동의 여부에 의하여 오로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개별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정당해산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이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사법적 결정의 가장 근원적인 기초인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정치질서에 대한 사법적 결정이 정당화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전제와 조건을 갖추지 못한 탓에 헌재의 정당해산결정이후 헌재의 구성이 사회의 다원성에 기초한 민주적 정당성을 구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50대 중후반, 남성, 특정대학출신이 압도적인 가운데 법조인들로만 구성된 헌재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당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정당해산과 국회의원직 박탈을 결정할 수 있는 정당성이 무엇으로 확보될 수 있는지 답해야 할 의무가 헌법재판관들에게 주어져있다.
사실 정당해산이라는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된다면 그 결론은 헌법에 의하여 정당화될 것이다. 1인 소수의견이 웅변하듯이 헌재는 당 차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이나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조사와 심리를 더욱 엄정히 진행하는 한편 정당해산으로 초래된 헌정질서와 법체계의 문제점을 국회가 자율적으로 정비할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 또한 선거과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혹여나 있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주권적 심판의 기회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헌재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극심한 이념대결을 극복할 수 있는 숙고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이 독재체제인 북한과 달리 민주공화국인 것은 오로지 정치의 사법화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질서에 필요한 국가권력의 절제와 균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결정이 과연 이러한 민주공화국의 체제수호제도로서의 본질에 충실하였는지 아니면 극단적인 사법의 정치화의 사례를 보여주었는지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다.
1) 이에 대하여 자세히는 김종철, "'정치의 사법화'의 의의와 한계 - 노무현정부전반기의 상황을 중심으로", 공법연구 제33집 제3호(2005.5), 235-238쪽 참조.
2) Frank R. Strong, Judicial Function in Constitutional Limitation of Governmental Power (Durham: Carolina Academic Press, 1997), 157.
3) 김종철, 앞의 논문, 245-246쪽 참조.
4) 김종철, "헌법재판소구성방법의 개혁론", 헌법학연구 제11권 제2호(2005.6.), 18-20, 26-30쪽 참조.
5) 베니스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된다고 하여 베니스위원회로 불리는 이 위원회는 법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관한 정책연구과 국제협력을 위한 유럽평의회 소속의 자문기구이지만 유럽외의 국가에도 회원자격이 인정되고 있고 우리나라 헌재도 가입하고 있다.
6) 법치주의 원리에 기초하여 인권제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함 범위 내에서 엄격한 법익균형 하에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인권을 규제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우리 헌재는 과잉금지원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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